룰에 대한 주의는 잠깐만요!
기본적으로 스태프가 주의를 주고 있습니다. 문제 행위를 일으키는 분을 보셨다면 카운터에 오셔서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어쩔 수 없이 주의를 주는 경우에는 “자신의 룰을 강요하진 않았는지”, “불합리한 일, 심술궂게 하진 않았는지”를 잘 생각하고 화내지 말고 상냥하게 주의를 주세요. 또한, 주의를 받으신 분은 솔직하게 받아들입시다.
요즘 교토 목욕탕 가운데 가장 핫하다고 소문이 난 사우나 우메유サウナ梅湯의 욕실에 붙여져 있는 문구이다. 이는 누시ヌシ와 목욕 매너를 지키지 않는 손님 간의 갈등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붙여 놓은 경고문이다.
마을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목욕탕에는 반드시 누시가 있다
일본의 목욕탕에는 누시ヌシ라고 불리는 단골 중의 단골이 있다. 이들은 목욕 매너를 지키지 않는 손님들에게 서슴지 않고 다가가서 주의를 준다. 몸을 제대로 씻기 않고 욕조에 들어갔다가는 잔소리를 한 바가지로 듣는다. 이들을 목욕탕 수질관리사 또는 목욕탕 군기반장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다. 이렇듯 잔소리를 할 수 있는 분들이니 누시는 나이 드신 분들이 대부분이다. 목욕탕 입구에서 목욕바구니를 옆에 끼고 목욕탕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분들은 십중팔구 누시라고 보면 된다. 그리고 욕실에서 호구조사하시는 분들도 대개 누시인 경우가 많다.
누시를 거북스러운 존재로 여기는 사람도 제법 많다. 이들이 목욕탕을 개인의 소유물처럼 여기고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룰 이외에 자기만의 룰을 주위 사람에게 강요한다는 것이다. “주간SPA!”에 목욕탕 만화 “유유원더랜드湯遊ワンダーランド”를 게재하고 있는 인기 만화가 만슈-키츠코まんしゅうきつこ에게 누시는 고마운 존재이면서도 껄끄러운 존재이다. 그녀의 만화에는 목욕 매너를 지키지 않아 누시에게 주의를 받기도 하고 또한, 올바른 목욕방법을 배우기도 하며 주인공이 목욕탕의 매력에 빠지는 과정이 그려져 있다. 실제로 그녀의 목욕탕 경험기라고 한다. 그녀의 목욕하는 모습을 주위에서 눈여겨보고 있던 누시가 몸만 씻고 사우나에 들어온 그녀에게 머리도 감은 후 들어오라든지, 사우나 벤치에 알몸인 상태로 그냥 앉으니 타월을 깔거나 문 입구에 놓인 사우나 매트를 깔고 앉으라든지 주의를 많이 주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누시가 주의만 주는 것이 아니라 욕조에 들어가는 순서, 사우나 후 냉탕, 외기욕을 즐기는 방법 등 올바른 목욕방법도 알려주었다고 한다. 덕분에 목욕탕의 매력을 더 잘 알 수 있게 되었고, 이는 그녀의 만화 소재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신문사 인터뷰에서 “목욕탕을 좋아하는 자신도 다른 이에게는 누시처럼 여겨질지도 모른다”라고 하면서, “어차피 될 거라면 간섭이 심하고 거북스럽게 여겨지는 누시보다는 부드럽고 친철한 누시가 되고 싶다”라는 말을 남겼다.
누시와의 만남
개인적으로는 이 누시라는 분들을 두 번 겪어봤다. 두 번 다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첫 번째의 만남은 탈의실에 비틀즈의 음악이 흐르는 것으로 유명한 히가시야마유東山湯에서이다. 햐쿠만벤 치온지百万遍知恩寺의 벼룩장터에서 구경을 하고 이른 시간에 히가시야마유에 도착했다. 아직 포렴이 걸리지 않은 목욕탕 입구에 목욕바구니를 든 사람들이 네다섯 명 정도 서 있고, 그중 연세가 있어 보이는 남자 두 분은 잘 아는 사이인지 웃으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 옆에서 문이 열릴 때까지 기다리는 건 창피한 느낌이 들어 동네 구경을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목욕탕으로 왔다. 탈의실에 들어가니 아까 밖에서 기다리며 대화를 나누던 손님들이 탈의실에서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내가 옷을 벗고 욕실 쪽으로 향하자 그중 한 분이 내게 다가와 어디에서 왔는지 물어본다. 단골이라 평소 이곳을 드나드는 손님들은 대부분 파악하고 있나 보다. 내 말투에서 외국인임을 알아차렸는지 욕조에 들어가기 전에 몸을 깨끗하게 씻으라는 말을 한다. 그 정도의 매너는 알고 있다고 대답을 하고 욕실에 들어갔는데, 목욕하는 내내 나를 주의 깊게 바라보는 눈길이 느껴져서 불편했다. 그러다가 주위에 그분들이 안 보여서, 마음을 놓고 사우나실에 들어갔는데 그 손님이 앉아 있었다. 나를 보더니 사우나 후 냉탕에 들어가기 전에 꼭 땀을 씻어 내고 들어가라는 잔소리를 또 한다. 알았다고 간단히 대답은 했지만 기분은 아주 상했다. 목욕 매너를 지키지 않아 주의를 들었다면 그래도 나았을 거다. 외국인이라서 목욕 매너를 모를 것이라는 선입견으로 이런저런 잔소리를 하니 기분이 나쁜 것은 당연하지 않겠나. 비틀즈팬으로서 큰 기대를 가지고 방문한 이 목욕탕에서 큰 실망만을 경험하고 나왔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일본의 목욕문화를 모른 채 대중목욕탕을 이용하는 외국인들이 늘어났고, 이들로 인해 자신들의 소중한 사교장이자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하면서 피로를 푸는 장소에서 불쾌감을 느끼는 단골들이 생겼을 법하다. 그래서 외국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목욕탕에 들어오면 미리 주의를 주면서 일본의 목욕 매너를 가르치려고 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만슈-키츠코의 말처럼 친절한 누시가 되어줬으면 좋겠다. 목욕 매너나 문화를 모르는 초보자도 목욕탕 팬이 될 수 있도록..
두 번째로 누시를 만난 곳은 교토역에서 가까운 히노데유이다. 교토역과 히노데유 중간 정도 되는 위치에 서점을 선술집으로 활용한 곳이 있어, 거기서 간단하게 술 한잔 하고 저녁 늦게 찾았다. 좀 늦은 시간이었는지 욕실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욕조에 몸을 담근 채. 욕실 구석구석을 신기한 듯 쳐다보는 내가 신기한 듯, 한 어르신이 말을 걸었다. 역시 어디에서 왔냐는 질문부터 시작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한국 출신이란 걸 알게 된 그 어르신이 한국의 여자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는 욕실의 먼 곳을 쳐다보며 옛 추억에 잠긴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슬슬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한다.
일본에서 혼자서 술을 먹다 보면 옆자리의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반색을 하고 한국을 좋아한다며 그 계기를 알려주는 분이 많다. 내 경험상 일본의 나이 든 남성 가운데 한국에 호의적인 사람들은 그 계기가 대개 두 부류로 나뉘는 것 같다. 첫 번째는 한국의 대하드라마를 너무 좋아하는 어르신들. 나는 제목도 잘 모르는 대하드라마의 줄거리나 주인공의 이야기를 하며 신나 하신다. 두 번째는 70년대에 기생 관광으로 한국을 방문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다. 이런 분들을 만나면 술맛이 뚝 떨어진다. 그런데 목욕탕에서 또 만나다니. 이럴 때마다 외화벌이랍시며 이런 걸 기획한 사람들이 원망스럽다. 한국 사람이라는 것이 창피해진다.
나에게 교토 목욕탕 순례의 최고의 장애물이 반다이였다면 지금은 이 누시라는 존재이다. 이제는 그들의 존재 이유를 이해하지만 그래도 목욕탕에서 만나기는 싫다. 정말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