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목욕탕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 통용되는 말로 홈센토가 있다. 자주 가는 목욕탕이라고 보면 되는데, 대개가 집에서 가까운 곳을 홈센토로 정한다. 집에서 도보로 5분도 안 걸리는 곳에 목욕탕이 있었지만, 나는 자전거를 타고 10분은 페달을 밟아야 하는 거리에 있는 후나오카온센을 홈센토로 정했다.
좋아하는 노천탕이 있는 데다, 캔맥주를 마실 수 있는 휴게실도 좋고, 냉탕이 사우나실 바로 앞에 있어서 사우나하기에도 좋고, 매일 남녀탕의 위치가 바뀌어 다양한 탕을 이용해 볼 수 있고, 반다이식이 아닌 프런트식이라 탈의실에서 여주인장의 시선을 걱정하지 않은 채 옷을 벗을 수 있고, 홈센토로 정할 이유는 아주 많다. 게다가, 후나오카온센이 있는 쿠라마구치길鞍馬口通り은 내가 교토에서 좋아하는 길 중 하나라 목욕하러 자전거를 타고 이 길을 지날 때마다 즐겁다.
국가 등록유형문화재
목욕탕 중 그 건축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의 등록유형문화재로 지정된 건물은 약 30여 개가 된다고 한다. 그렇지만 현역 목욕탕으로 이용되고 있는 곳은 많지 않다. 내가 파악한 바로는 10곳이 채 되지 않는다. 목욕탕 건물로는 1998년에 최초로 등록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던 오사카의 겐가하시온센源ヶ橋温泉은 2020년에 폐업하였고, 2번째로 2000년에 지정된 오사카의 비쇼-엔온센美章園温泉도 2008년에 폐업하였다. 세 번째로 지정된 목욕탕 건물이 교토의 후나오카온센이다. 지금은 사라사니시진さらさ西陣이라는 카페로 운영되고 있는 舊 후지노모리유旧藤ノ森湯 건물과 함께 2003년에 등록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후나오카온센과 후지노모리유는 마죠리카マジョリカ타일로 유명한데, 주인이 같다. 1920년대 목욕탕이 워낙 장사가 잘 되었는지 후나오카온센의 주인장이 1930년에 3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지은 또다른 목욕탕이 후지노모리유다. 후나오카온센 이외에 등록유형문화재로 지정된 현역 목욕탕은 도쿄가 츠바메유燕湯, 이나리유稲荷湯, 코스기유小杉湯 이렇게 3곳으로 가장 많다. 뒤이어 교토후京都府 마이즈루시舞鶴市에 히노데유日の出湯, 와카노유若の湯 2곳이 있다.
후나오카온센은 1923년 당시 요리여관이었던 후나오카루舟岡楼의 부속시설로 목욕 영업을 시작했다. 태평양전쟁이 발발하고 관광객이 끊기자 숙박업은 일시 휴업하였으나, 종전 후에도 관광객이 좀처럼 늘지 않아 일반 공중목욕탕으로 영업을 재개하여 오늘까지 이르고 있다. 지금도 당시의 모습을 대부분 간직하고 있는, 일본의 20세기 초 목욕탕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소중한 목욕탕이다.
하나의 예술작품인 목욕탕
아주 큰 자연석을 쌓아 만든 웅장한 돌담과 절이나 신사와 같이 격식 있는 건물의 출입구에 주로 사용되는 카라하후唐破風양식의 입구부터 시선을 끈다. 입구의 포렴을 젖히고 들어서면 화려한 마죠리카타일이 시공된 벽이 보인다. 이때부터 이 목욕탕의 범상치 않음을 느낄 수 있는데, 압권은 탈의실이다. 격식 있는 건물의 천장에 사용되는 고-텐죠-格天井양식으로 나뭇결을 달리하는 느티나무 목재를 교대로 사용하였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나뭇결이 잔잔한 물결같이 보이는 천장에 일본의 전설에 나오는 요괴로 기다란 코가 특징인 텐구天狗와 그에게 무술을 배우는 우시와카마루牛若丸의 모습이 입체적으로 조각되어 있다. 조각의 짙은 채색이 무채색의 나뭇결과 대비되어 더 선명하게 느껴진다. (우사와 카마루는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비극적 영웅, 미나모토 요시츠네源義経의 아명이다. 카마쿠라 막부를 연 미나모토 요리토모源頼朝의 배다른 동생으로 형과의 싸움에서 진 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어릴 적 교토의 북쪽에 있는 쿠라마데라鞍馬寺에서 지내면서 텐구에게 무술 등 가르침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물론 지어낸 이야기지만 유명하다.) 천정의 네 구석에는 마귀를 쫓기 위한 마요케魔除け가 조각되어 있다.
작은 연못이 보이는 유리문 위에는 스테인드글라스로 만든 창이 있어 연못, 마죠리카타일, 등과 어울려져 운치를 더한다. 그리고 탈의실에서 욕실로 가는 복도에는 1932년 시영 전철이 개통하면서 해체하게 된 키쿠스이바시菊水橋의 돌 난간을 가져와서 사용했는데, 이 또한 풍치를 더해 준다.
탈의실에 있는 오래된 시계, 체중계, 안마의자, 교토 특유의 옷 바구니인 카고籠, 기저귀를 갈 수 있는 아기용 침대 등을 보고 있으면 20세기 초로 시간 여행을 온 듯하다.
또 다른 예술작품, 란마欄間
탈의실에서 천장의 텐구와 우시와카마루 조각과 더불어 유명한 것이 란마다. 란마란 천장과 출입구의 문틀 사이의 공간에 통풍이나 채광을 위해 만든 것인데, 절이나 고급 저택에서는 화려한 장식을 조각해두기도 한다. 교토를 배경으로 만든 드라마 ‘미야코가 교토에 떴다!ミヤコが京都にやって来た!’의 제1화는 오프닝으로 교토의 몇몇 유명한 장소를 보여준 후, 이 후나오카온센의 탈의실에서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한다. 한 어르신이 탈의실의 의자에 앉아 란마에 교토 3대 마츠리 중 하나인 아오이 마츠리葵祭의 행렬, 카미가모진쟈上賀茂神社의 쿠라베우마競馬, 후나오카온센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이마미야진쟈今宮神社의 마츠리祭り, 상하이 사변의 폭탄 3용사가 조각되어 있다며 설명하다가 쓰러진다. 노천탕에 있던 미야코의 아빠가 다행히 의사라서 이 어르신을 구해주는데, 이 드라마의 첫 장면부터 나의 홈센토인 후나오카온센이 등장하여 너무나도 반가웠다.
하나하나가 작품인 마죠리카타일マジョリカタイル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특이한 타일. 1920~30년대 일본에서 만들어진 돋을새김이 새겨진 다채색의 타일로 일본식 마죠리카타일이라고 한다. 원래 스페인의 색칠한 그림이 있는 도기가 지중해 서부의 마요르카 섬(일본에서는 마죠리카라고 함)을 경유해 일본으로 운반되어왔는데, 이름을 그 섬에서 따왔다고 한다.
탈의실과 욕실로 가는 복도, 세면대, 폭포탕에 화려하고 다양한 문양의 마죠리카 타일이 벽을 장식하고 있다. 당시에도 만 원짜리 지폐를 벽에 붙이는 것과 동일한 가격이 들었다고 할 만큼 고가의 타일이다. 100여 년이 되어가지만, 화사한 색채는 바래지 않았고 부서진 부분도 없다. 보수가 필요 없을 정도로 잘 만들어진 하나의 작품이다.
지금은 생산하고 있지 않아 이 타일을 볼 수 있는 건축물은 많지 않은데, 후나오카온센에서는 다양한 마죠리카 타일을 볼 수 있다.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형형색색의 꽃들과 번개무늬 등 수십 가지의 문양이 있어, 마죠리카타일 전시장으로 불리어도 무색하지 않다. 어떤 박물관에서는 마죠리카 타일 한 장을 유리 케이스 안에 넣은 상태로 전시한다고 하는데, 여기서는 직접 만져서 오돌토돌한 그 질감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이 마죠리카 타일을 보기 위해 오는 사람도 많다.
다양한 욕조와 노천탕
보통의 다른 목욕탕처럼 탈의실에서 욕실로 가는 바로 이어진 것이 아니고 그 사이에 긴 복도가 있다. 이 복도를 지나 욕실로 들어가기 바로 직전에 작은 폭포탕이 있다. 폭포탕으로 들어가는 곳 외에는 3곳이 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다른 이들에게 물이 튈까 봐 조마조마하지 않고 마음껏 폭포탕을 즐길 수 있다.
넓은 욕실은 하얀 타일을 천장, 벽면에 붙인 데다가, 층고도 높아 화사한 느낌이 나고 개방감이 좋다. 아주 얕은 온탕은 욕조가 가장 크고, 열탕, 약탕, 전기탕, 냉탕, 제트탕, 폭포탕 등 다양한 욕조가 있다. 아주 얕은 온탕은 깊이로 보나 물 온도로 보나 어린 욕객에게 안성맞춤이다. 검붉은 빛이 도는 약탕은 욕조가 깊어, 처음 들어가는 사람은 당황하게 된다. 물색 때문에 바닥이 보이지 않는데, 발이 닿아야 할 정도인데도 더 깊이 들어가니 나도 깜짝 놀랐었다.
동네 목욕탕에서는 보기 힘든 히노키탕도 있다. 후나오카온센은 매일 남탕 여탕의 위치를 바꾸어 다양한 욕조를 즐길 수 있는데, 히노키탕도 양쪽 욕실에 있다. 다만 위치가 다른데 암반으로 만든 욕조가 노천에 있는 곳은 히노키탕이 욕실 내부에 있고, 다른 쪽은 노천에 히노키탕이 있다. 노천의 히노키탕은 욕조 바로 옆 작은 동산에 나체의 여자 동상이 있다. 욕조에 들어갈 때마다 쭈뼛쭈뼛해지곤 했는데, 익숙해지니 동상 옆에 나란히 서서 연못의 잉어를 바라보는데 아무런 위화감이 들지 않았다. 이 히노키 노천탕은 벽도 지붕도 히노키로 만들어 또 다른 운치를 더해 주는데, 밤에는 호박색의 히노키가 은은한 조명을 받아 한층 더 멋스럽다. 그래도 역시 이 노천탕이 좋은 점은 키쿠스이바시菊水橋의 돌난간과 그 아래에 있는 연못을 바라보며 느긋이 뜨거운 탕 안에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몸이 뜨거워지면 연못가에 알몸으로 서서 연못 속의 다양한 색채를 가진 큰 잉어들을 바라보며 몸을 식힌다. 춥다고 느껴지면 다시 노천탕으로...무한반복이다.
암반을 욕조로 만든 노천탕이 있는 곳에는 온탕과 냉탕이 나란히 있다. 위에서 언급한 미야코가 교토에 떴다 제1화에서 쓰러진 어르신의 상태를 살펴봐 주는 의사인 미야코의 아빠가 잠시 목욕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곳이 이 노천탕이다. 이쪽 노천탕도 너무너무 좋다. 예쁜 돌들을 쌓아 만든 인공 절벽에 동백나무 등 다양한 나무를 심어 놓아 계절감을 느낄 수 있다. 냉탕에는 용의 조각상 입에서 물이 쏟아져 나와 작은 폭포를 만든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이 노천탕을 즐기기 위해 일부러 후나오카온센을 찾는다. 그런데 그날이 히노키탕이 노천 쪽인 날이면 좀 실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