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대중목욕탕은 경영자의 고령화, 후계자 부재, 욕객의 감소 등을 이유로 그 수가 해마다 줄고 있다. 물리적인 목욕탕 시설이 줄어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최근 목욕탕을 찾는 젊은 층, 특히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다. 일본 특유의 목욕탕 문화를 즐기기 위해 동네의 작은 목욕탕을 찾는 외국인들도 늘고 있다. 이처럼 최근의 목욕탕은 위생시설, 동네 어르신들의 사랑방, 쉼터라는 개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여가시설, 관광자원으로 변모하고 있다. 일본목욕탕협회나 정부, 지자체의 노력과 목욕탕을 소재로 한 드라마, 영화, 만화의 영향도 있었지만, 목욕탕의 매력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널리 전파한 이들의 공헌도 무시할 수는 없다.
‘목욕학銭湯学’의 창시자, 마치다 시노부町田忍
마치다 시노부는 일본 서민・풍속문화연구의 제1인자로 알려진, 자칭 서민문화 연구가이다. 30년 이상 3천여 곳이 넘는 전국의 목욕탕을 방문, 사진을 찍고 서민문화의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90년대부터 목욕탕에 관한 책을 내기 시작한, 일본 대중목욕탕 연구의 선구자라고도 할 수 있다. 마치다는 단순히 지역별 목욕탕을 소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목욕의 역사, 목욕용품의 유래, 지역별 특색 등에 대한 연구내용도 책에 담았다. ‘목욕학’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었고, 방송 감수・출연 등을 통해 목욕탕에 대한 매력을 널리 알리고 있다.
목욕탕 페인트 그림의 새로운 바람, 타나카 미즈키田中みずき
도쿄 목욕탕 하면 일본 사람들이 제일 먼저 떠올리는 것이 욕실의 한쪽 벽면을 가득히 채운 페인트 그림이다. 현재 이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단 3명 남았다고 한다. 마루야마 키요토丸山清人, 나카지마 모리오中島盛夫, 그리고 타나카 미즈키田中みずき 이렇게 3명인데, 일본의 목욕탕 팬들에게는 꽤 알려져 있는 이름이다. 혼자서 목욕탕의 정기휴일 단 하루 만에 욕실 벽면에 그림을 완성시켜야 하는 고된 작업이라 1935년생인 마루야, 1945년생인 나카지마는 이제 은퇴하지 않았나 싶어 자료를 찾아보니 아직도 현역이다.
페인트 그림은 습기가 많은 욕실 벽면에 그려져 잘 벗겨진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새로 그려야 하는데, 그 비용이 만만치 않다. 세라믹 타일의 모자이크 그림으로 교체하는 목욕탕이 생겨나는 이유다. 그렇지만 목욕탕별로 페인트 그림의 화가 등을 정리한 사이트까지 있을 정도로 목욕탕의 페인트 그림을 좋아하는 팬도 많다. 이어지는 목욕탕의 폐업과 타일화로의 교체, 후계자 문제 등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인해 페인트 그림의 명맥이 끊어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팬들도 많았다.
다행히 대학에서 미술사를 전공한 젊은 여성이 페인트 그림의 매력에 빠져들어 2004년 나카지마의 제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다양한 언론매체에서 나카지마와 수련을 쌓고 있는 타나카 미즈키를 취재, 페인트 그림의 명맥을 잇게 되었다는 낭보를 전했다.
타나카는 9년간의 수련을 끝내고 2013년 독립하였다. 젊은 여성답게 블로그나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자신의 작품 제작 경과 등을 전하고, 목욕탕 관련 이벤트에도 참여하고 있다. 2021년에는 페인트 그림 화가라는 직업의 매력, 전통을 지켜나가는 사명감, 인상에 남는 작품 등에 대한 글을 모은 책, ‘나는 목욕탕 페인트 그림 화가わたしは銭湯ペンキ絵師’을 세상에 내놓았다.
외국인 목욕탕 저널리스트, 스테파니 Stephanie Crohin
프랑스 리용대학에서 일본문학을 전공한 스테파니는 2008년 교환학생으로 일본을 찾아 1년간 살았다. 이때 일본 목욕탕을 경험하고, 그 매력에 푹 빠졌다. 졸업 후 취업을 위해 다시 일본을 찾은 후에도 목욕탕을 자주 찾았다. 그리고 방문한 목욕탕의 사진과 리뷰를 SNS를 통해 올리며 적극적으로 일본의 목욕탕을 소개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2015년 3월 Tokyo Sento라는 이름의 웹사이트를 개설하여 영어와 일본어로 일본의 목욕문화를 세계에 알리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목욕탕에 대한 그녀의 애정과 사라져 가는 일본의 목욕문화를 지키기 위한 그녀의 노력이 인정받은 덕분일까, 2015년 12월 일본목욕탕문화협회가 처음으로 개최한 ‘목욕탕 서포터 포럼’에서 권투선수 키무라 슈우木村悠 와 함께 초대 목욕탕 대사銭湯大使로 임명되었다.
지금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목욕탕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보는 각도를 조금만 달리하면 일본 동네 목욕탕은 ‘일본적 미술의 보물창고’라는 말로 소개하던 그녀는, 2017년에 “목욕탕은 작은 미술관銭湯は、小さな美術館“이라는 책까지 내었다. 건물 외관과 목욕탕의 페인트 그림, 타일 그림뿐만 아니라 신발장과 열쇠, 바닥 타일 등을 미적인 관점에서 소개하고 있다. 2018년에는 두 번째 책인 ‘프랑스 여자의 도쿄 목욕탕 순례フランス女子の東京銭湯めぐり’를 썼다.
여성의 관점에서 목욕탕의 매력을 전파하는 직장인, 목욕탕OL야스코銭湯OLやすこ
목욕탕OL야스코는 필명이고, 본명은 오쿠노 야스코奥野靖子, 홋카이도 출신이다. 필명에 나타나듯이 회사원(OL은 Office Lady의 줄인 말로 여자 회사원을 뜻한다)이다. 주로 살고 있는 도쿄와 고향인 홋카이도의 목욕탕을 간단한 일러스트와 함께 여성의 시선으로 소개하는 글을 쓰고 있다. 2020년 10월 일본목욕탕문화협회로부터 목욕탕 대사로 임명되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목욕탕 소재 드라마의 감수, 촬영 장소 추천・섭외 등도 하고 있다.
매회 여자 주인공이 바뀌며 도쿄 시내의 목욕탕을 소개하는 드라마가 있다. ‘목욕하기 좋은 날おふろやさん日和’이라는 제목의 드라마인데, 목욕탕의 욕실에서 목욕탕을 소재로 한 글을 여자 주인공이 낭독하는 특이한 콘셉트를 가지고 있다. 이 드라마의 감수와 함께, 매화 드라마의 마지막 코너에 출연하여 목욕탕과 관련한 토막상식을 재미있게 알려준다.
목욕탕 일러스트레이터, 엔야 호나미塩谷歩波
건축을 공부하고 설계사무소에서 일하다가 목욕탕에 취직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이다. 어릴 때부터 그리기를 좋아했던 엔야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건축을 전공했다. 이후 취직한 설계사무소에서 건축을 위한 행정절차, 건축주와의 건축비를 비롯한 교섭 등 그림 외 작업과 대면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병을 얻었다. 퇴사 후 친구의 권유로 목욕탕을 다니기 시작하였는데, 어느 날 욕조 안에서 모르는 아주머니가 무심코 걸어준 말을 계기로 삶에 대한 의욕을 되찾게 되었다. 이후 더욱 열심히 목욕탕을 다니게 되었고, 간단한 일러스트와 함께 방문해 왔던 목욕탕에 대한 소개를 SNS에 올렸다. 2016년 고-엔지高円寺의 유명한 목욕탕 코스기유小杉湯(2021년 국가 등록유형문화재 등재)의 경영을 이어받은 젊은 3대 사장이 그녀가 그린 일러스트를 보고 코스기유의 일을 의뢰하였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노포 목욕탕의 변화를 꾀하던 젊은 사장은 그녀에게 함께 일하자고 제안하였다. 코스기유에서 근무하게 된 그녀는 이벤트, 목욕탕 매너 등에 대한 일러스트를 그렸고, 목욕탕에서의 북 토크, 콘서트, 페스티벌 등 젊은 층에게 인기를 끄는 이벤트도 기획하였다. 코로나 시국에는 목욕탕을 찾지 못하는 손님들을 위해 욕조를 촬영한 동영상을 유튜브 등에 업로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집의 욕조에서 목욕탕의 다양한 소리가 들리는 욕조 동영상을 보면서 대중목욕탕에서 목욕하고 있는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목욕탕에서 일하는 틈틈이 다른 목욕탕의 일러스트도 그려 ‘목욕탕도해銭湯図解’라는 책으로 만들었다. 전공한 건축지식을 살려 비율에 맞게 남녀 욕실뿐만 아니라, 탈의실, 대기실 등을 그리고, 욕조의 얼룩까지 세밀하게 그 목욕탕의 분위기가 그대로 전해지도록 그림을 그렸다. 그림으로 표현할 수 없는 욕조의 온도, 종류, 주인장이 손님을 위해 배려해 만든 것, 특이한 점 등은 손글씨로 써 두었다. 이 책의 제일 좋은 점은 목욕탕의 도면만 그리는 데 그치지 않고, 몸을 씻는 사람, 욕조에서 목욕을 즐기는 사람, 탈의실에서 쉬는 사람들의 모습을 정겹게 그린 데 있다고 생각한다. 웃음을 머금고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는 그림 속의 사람들을 보면 나도 저 속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잘 만들었다.
언론 노출 빈도수로 보면 여성 페인트 그림 화가 타나카 미즈키와 맞먹을 정도로 유명해졌는데, 2021년 5월 4년간 근무한 코스기유를 떠나기로 했다. 목욕탕 그림뿐만 아니라 이자카야, 카페 등 다른 가게의 일러스트나 책의 삽화 등 그녀가 좋아하는 그림에 몰두하기로 위해서라고 한다. 코스기유를 떠나도 목욕탕 관련 이벤트 기획, 강연 등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다.
레트로 목욕탕 마니아, 마츠모토 코-지松本康治
매일 목욕탕을 다니며 1년의 반 이상은 전국의 목욕탕을 찾아다니는 목욕 마니아다. 방문한 곳의 사진, 인상 등을 자치단체별로 정리하여 그가 운영하는 사이트에 게재하고 있는데, 그의 사이트는 목욕탕 정보의 보고다. 일본도 모자라 목욕탕이 있는 한국, 중국, 대만 여행을 할 때면 여행지에 있는 동네 목욕탕을 찾는다. 그리고 소개하는 글을 이 사이트에 남기는데, 한국의 경우 9곳의 방문기가 있다.
목욕탕 중에서도 특히 오래된 레토로 감성이 충만한 목욕탕을 좋아한다. 레트로 목욕탕 관련 책도 몇 권 썼다. 여행지의 동네 산책 후 목욕 그리고 목욕을 마치고 마시는 맥주를 좋아한다는 그는, 목욕탕 소개 글에서도 지역의 다양한 정보를 전달해 준다. 목욕탕이 있는 동네를 산책하면서 본 모습, 재미있는 가게 등을 소개한 후, 그가 식사한 식당, 이자카야 등을 유머러스한 필치로 소개한다. 고향이 오사카大阪이고 거주하는 곳이 고베神戸이다 보니 간사이関西지역의 목욕탕을 소개하는 책, 글이 많다.
교토 토박이 목욕편애 프리 라이터, 林宏樹하야시 히로키
교토의 목욕탕에는 후지산을 그린 페인트 그림이 왜 없지?라는 의문에서 시작해 교토, 시가현의 모든 목욕탕을 방문한 특이한 사람이다. 2002년부터 ‘목욕탕적 교토안내お風呂屋さん的京都案内’라는 사이트를 만들어 교토의 모든 목욕탕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현재 영업 중인 목욕탕은 물론 폐업한 곳까지 300여 곳 이상의 목욕탕 정보를 담고 있다.
교토가 지금 목욕탕의 성지로 부상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인물로 교토목욕응원단체 ‘목욕탕 갈까나 프로젝트’ 등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교토 목욕탕의 매력을 알리는데 힘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