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 요릿집에서 체험할 수 있는 카마부로
야세는 아니지만 교토시에서 카마부로를 즐길 수 있는 곳이 있다. 창업한 지 450여 년이 넘은 노포 헤이하치챠야平八茶屋가 그곳이다.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가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토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를 가신으로 데리고 있던 그 당시에 개업을 했으니 그 역사가 놀랍다. 와카사카이도若狭街道라고 불리는 큰 길가에 가게를 열어 지나가던 여행객, 행상들을 대상으로 차와 간단한 요깃거리를 제공했는데, 지금도 이 가게의 명물로 유명한 무기토로麦とろ는 개업 당시부터 메뉴에 있었다고 전해진다.
항구가 있던 와카사 지역과 교토를 잇는 도로를 와카사카이도라고 부른다. 와카사 인근 해역에서 잡은 해산물을 교토까지 이 길을 통해 운반했는데, 특히 고등어는 품질이 좋아서 인기가 많았다. 그래서 운반되는 해산물의 대부분을 고등어가 차지했다. 와카사카이도보다 사바카이도鯖街道라는 별칭으로 더 불리고 알려지게 된 이유다. 냉동기술이 없었던 당시에는 잡은 고등어를 소금에 절여 교토까지 운반했다. 우리나라의 안동 간고등어와 비슷하다고 보면 되겠다. 와카사에서 교토까지는 거의 하루가 걸렸다고 하는데, 소금으로 절인 고등어가 교토에 도착할 쯤이면 딱 먹기 좋게 절여진 상태였다. 특히 겨울철 찬 바람을 맞으며 교토로 운반된 고등어는 맛이 뛰어나 찾는 사람이 많았다. 이렇게 운반된 고등어를 사용해 만든 것이 교토의 명물 고등어초밥(사바스시鯖寿司)다. 그래서 지금도 사바카이도의 종착역인 데마치야나기出町柳 인근에는 맛난 고등어초밥을 파는 가게가 많다.
행상의 입장에서 반가운 한 끼 –무기 토로麦とろ
고등어길이라고 번역하면 맞으려나? 사바카이도를 다니던 행상들이 이곳에서 자주 찾은 음식이 무기토로라고 하는 간 마를 곁들인 보리밥이다. 강판에 간 마는 가게 비전으로 내려오는 방법으로 만든 다시마와 가다랑어 포로 우려낸 국물과 된장 등을 넣어 맛을 낸다. 이것을 보리밥에 비벼 먹는데, 입맛이 없더라도 간단히 한 그릇 뚝딱하고 해치울 수 있을 만큼 먹기 편하다. 마에 소화를 돕는 성분이 있어서 급하게 먹어도 체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먼 거리를 이동하는 갈 길 바쁜 행상들에게 인기 있는 메뉴였다. 교토와 도쿄를 잇는 토우카이도東海道의 가운데 정도인 시즈오카현에 위치한, 비슷한 시기에 개업한 쵸-지야丁子屋도 당시 여행객들에게 인기 있는 메뉴가 이 무기토로였다. 에도막부가 들어선 17세기 이후 전쟁이 없고 상업도 발달하자 유서 있는 사찰, 신사 참배객과 후지산 등 여행객이 늘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의 관광 가이드북 같은 것들이 간행되었는데, 이 책들에 무기토로로 유명하다는 이 가게들의 이름이 보인다.
사바카이도의 쇠퇴에 따라 요리 전문점으로 변신
메이지유신 이후 열차, 전차, 자동차 등 교통수단이 들어오게 되자 기존의 사바카이도를 통해 도보로 이동하는 사람들이 줄기 시작했다. 이들을 대상으로 영업을 하던 헤이하치도 영향을 받는 것은 당연했다. 시대의 변화 속에 가게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한 당시 주인장은 민물고기 요리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였다. 지금까지 간단한 요기를 팔던 차야茶屋에서 요릿집으로 변신을 시도한 것이다. 소설가 나츠메 소세키夏目漱石, 미식가 키타오지 로산진北大路櫓山人 등 유명인사들이 찾는 고급 요릿집이 되었다니 모험은 성공한 듯하다. 지금은 21대가 가게를 이어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고 신 메뉴를 개발하고 있다. 과거 행상들이 즐겨 먹었던 명물인 무기토로는 업그레이드된 버전으로 제공한다. 그래서 가격이 좀 센 편이다.
아쉽게 체험하지 못한 카마부로
애당초 내가 헤이하치를 방문한 것은 이 집의 명물 무기토로를 먹기 위해서였다. 점심시간을 조금 비껴 난 시간에 예약 없이 혼자 방문했다. 접객을 하는 직원이 자리를 확인하는 동안 건물 주변을 둘러보다가 카마부로라고 쓰인 글을 보았다. 호기심에 식당 자리로 안내하기 위해 온 직원에게 카마부로라는 현판이 붙어 있는 건물을 가리키며 뭐하는 곳이냐고 물어보니 목욕탕이라고 한다. 내가 글과 사진으로만 봤던 그 목욕시설이다. 사용할 수 있는지 물어보니, 사용은 가능하나 카마부로는 데우는 데 시간이 걸려 미리 예약을 해야 이용 가능하다고 한다. 내가 실망한 표정을 지으니, 카마부로는 구경할 수 있고 몸을 씻는 욕실은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원한다면 추가 요금(천 엔)을 내고 목욕을 한 후 식사를 할 수 있게 준비해 줄 수 있다고도 했다. 그렇게 해달라고 부탁을 하고 목욕시설을 이용하였다. 카마부로는 내가 사진으로만 보았던 야세 후루사토의 그것보다 크고 깔끔해 보였다. 카마부로의 구경을 마치고 깨끗한 욕조에 들어가 피로를 풀었다. 아침 일찍부터 슈-가쿠인리큐修学院離宮 구경을 하고, 동네 구경을 하면서 헤이하치까지 걸어온 터라 적당히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니 눈이 스르르 감겼다. 목욕을 하고 나와 식사자리로 안내를 받아 갔다. 타카노가와高野川가 보이는 근사한 방에서 무기토로를 먹었다. 옛날 고등어를 등에 메고 다니던 그 행상들은 지금 여기의 헤이하치에서처럼 목욕을 하며 그날의 피로를 풀고 무기토로를 먹었을까? 그때는 지금과는 좀 달랐겠지? 옛날 힘들게 고등어를 메고 다녔을 행상들의 수고에 경의를, 오늘의 호사에 감사하며 무기토로를 꼭꼭 싶어 먹었다.
아래는 헤이하치의 홈페이지에 게재된 카마부로의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