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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 Mar 18. 2024

공원 속 작은 서양 미술 세계

도쿄 국립서양미술관 | 상설전

따스한 날씨를 시기하듯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3월, 나는 일본행 비행기에 올랐다. 아직은 차가운 바람이 불어도 햇빛이 닿는 구석에는 벚꽃의 몽우리들이 분홍빛의 꽃잎들을 펼쳐내는 도쿄에서 미술을 쫓는 여행을 하고 왔다.


일본 최초의 동물원이자 자이언트 판다로 유명한 우에노 동물원(Ueno Zoo)이 위치한 우에노 공원은 도쿄도 미술관(Tokyo Metropolitan Art Museum), 도쿄 국립박물관(Tokyo National Museum), 도쿄예술대학 대학미술관(The University Art Museum) 등 많은 전시들과 도쿄문화회관(Tokyo Bunka Kaikan)에서 다양한 공원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다양한 예술과 문화가 모이는 우에노 공원에서 나는 도쿄 국립서양미술관(The National Museum of Western Art)에 발을 디뎠다.


미술관 입구에 로뎅의 <칼레의 시민>, <지옥의 문>과 부르델의 <활을 쏘는 헤라클레스>를 볼 수 있다.



국립서양미술관은 1959년 4월, 프랑스 정부로부터 기증 반환된 마츠카타 컬렉션을 바탕으로 설립된 미술관으로 일본 내 유일한 국립 미술관이다. 마츠카타 컬렉션을 만든 마츠타카 코지로(1866-1950)는 제1차 세계대전에 조선 사업으로 막대한 이익을 거두며 미술관을 설립해  일본인에게 서양의 미술작품을 소개하고자 1916년부터 10년 동안 3천 점이 넘는 작품들을 사 모았다. 그러나 재정난과 창고 화재로 미술관 설립 계획은 무산되었다. 또한 파리에 있던 그의 소장품들은 제2차 세계대전 말 적대국의 재산으로 취급되어 프랑스 정부가 소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19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체결 후 우호관계의 증표로서 370점이 일본에 반환되었고 이를 대중에게 공개하기 위해 국립서양미술관이 개관되었다.


우에노 공원에서 국립서양미술관에 들어서면 작은 조각 공원이 눈길을 끈다.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 1840-1917)의 <칼레의 시민(The Burghers of Calais, 1884-89)>을 중심으로 <지옥의 문(La Porte de l'Enfer, 1880-1917)>, <생각하는 사람(The Thinker)>, 앙투안 부르델(Antoine Bourdelle, 1861-1929)의 <활을 쏘는 헤라클레스(Hercules the Aarcher, 1909)> 등을 볼 수 있다. 이 공간은 인상파 회화와 로댕의 조각을 중심으로 하는 마츠카타 컬렉션에 뿌리를 두고 있는 국립서양미술관을 보여주고 있다.

야외 공간에서 가장 눈에 들어온 작품은 <활을 쏘는 헤라클레스>였다. 온 힘을 다해 거대한 활을 당기는 헤라클레스는 시위를 마치 <지옥의 문>을 향해 겨누고 있는 듯하다. 헤라클레스가 자신의 과오를 용서받기 위해 에우리스테우스를 섬길 때 명 받은 12 과업 중 마지막이었던 '저승을 지키는 개 케르베로스를 산채로 잡는 일'을 연상시킨다. 헤라클레스는 그리스로마신화 속 인물인 것과 달리 로댕의 <지옥의 문> 기독교 신앙에 바탕을 두고 있는 단테 알리기에리(Dante Alighieri, 1265-1321)의 '신곡(La Divina Commedia)' 중 '지옥편(Inferno)'에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다. 고대 로마 최고 시인 베르길리우스와 젊은 시절 짝사랑했던 베아트리체의 인도를 받아 사후세계를 여행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이 책은 서구 기독교 문명을 집대성한 문학작품으로 평가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테는 이 책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인물과 요소들이 등장한다. 트로이의 영웅 헥토르가 고통 없이 대접을 받고, 미노타우르스와 케르베로스가 지옥의 악마로 등장한다. 이처럼 신화와 종교가 혼재하는 <지옥의 문> 앞에서 활을 겨누는 역동적인 모습은 종교나 시간 등의 요소와 상관없이 과업을 이룩해야 하는 헤라클레스의 운명을 강조하는 듯하다.


국립서양미술관 상설전 전경

내가 국립서양미술관을 방문한 3월 초에는 상설전과 소기획전 <진리는 되살아날까 : 고야 <전쟁의 참화> 전장면>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중에서 국립서양미술관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 상설전을 관람하였다. 상설 전은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1887-1965)가 설계한 본관에서 전시가 시작된다. 이 본관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일본과 프랑스 간 국교 회복 및 관계 개선의 상징으로써 일본 중요문화재로 2007년에 지정되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르 코르뷔지에의 설계를 경험할 수 있다.


상설전은 '중세 말 종교회화부터 18세기' 그리고 '19세기부터 20세기 프랑스 미술'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를 기준으로 회화, 조각, 소묘, 판화, 공예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6,000여 점의 작품을 기반으로 진행되는 전시로 굉장히 많은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이중 가장 인상 깊게 남았던 2개의 작품을 소개하고자 한다.

(좌) 밀레 <봄(다프니스와 클로에)> | (우) 르누아르<알제리풍의 파리여인들>

국립서양미술관에서는 이곳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인상파의 많은 작품들을 볼 수 있는데 장 먼저 살펴볼 작품은 19세기 초를 대표하는 작가 장 프랑수아 밀레(Jean-François Millet, 1814-1875)의 <봄(다프니스와 클로에)(Spring(Daphnis and Chloe), 1865)>이다. 밀레는 프랑스 바르비종파(Barbizon School)의 창시자 중 한 명으로 <이삭 줍는 여인들>, <만종>이 대표적이다. 19세기 후반 전통주의에서 모더니즘으로 바뀌는 과정을 보여준다. 사실주의, 인상주의, 후기인상주의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지금 소개하는 <봄(다프니스와 클로에)>은 자연과 농민의 일상을 그대로 그려냈던 밀레의 다른 작품들과 달리 밝은 색채와 고대그리스에서 쓰인 사랑이야기를 모티브로 그려졌다. 다프니스와 클로에의 이야기는 기원전 2-3세기경 고대 그리스 작가인 롱구스(Longus)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소설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레스보스(Lesbos)섬에서 양치기들에 의해 발견된 다프니스와 클로에는 함께 목동으로 자라며 순수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어느 날 구덩이에 빠진 다프니스를 구해준 클로에는 그가 아름답고 멋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며 그리스식 표현으로 에로스의 화살을 맞게 된다. 이후 다프니스가 해적에게 끌려가거나 클로에가 청년들에게 납치되는 일과 같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목신 판(Pan)의 도움으로 이를 극복해 나간다. 이후 클로에에게 청혼한 다프니스의 앞에 영주인 친아버지를 만나게 되고 클로에도 부유한 친부모를 찾으며 약혼식을 치른다. 두 사람은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며 요정들과 함께 자연 속에서 살기로 결정하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이 작품은 어린 소년, 소녀인 두 사람 사이의 운명적인 사랑의 시작점을 꽃 피는 계절인 봄에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밀레는 다프니스와 클로에가 어린 시절부터 목신 판의 보호 아래 있었음을 표현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의 사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거꾸로 매달린 꽃다발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 뒤에 기둥처럼 보이는 조각상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조각상에서 사람의 복부가 표현되어 있는 것을 확인해 볼 수 있는데 꽃으로 가려진 하반신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면 다리가 아닌 털과 같은 느낌으로 표현이 되어 있고 양쪽 허리춤에 피리와 팬플룻으로 추정되는 물체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판이 양치기 외에도 봄과 다산을 상징하기 때문에 계절을 강조하기 위한 요소로 사용된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판은 19세기 낭만주의에서 자주 발견할 수 있는 요소로 미술뿐만 아니라 드뷔시(Claude Debussy)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Prélude à l'après-midi d'un faune)', 니진스키(Vaslav Nijinsky)의 발레 '목신의 오후 (L'apres-midi d'un faune )' 등 다양한 예술소재로 사용되어 온 만큼 밀레의 흥미를 끌었던 것은 아닐까.


두 번째로 소개할 작품은 <알제리풍의 파리 여인들(하렘)(Parisian Women in Algerian Costume(The Harem),1872)>이다. 미술교과서에서 많이 본 듯한 화풍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인상주의 화가인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 1841-1919)의 회화로 아름다운 색채와 화려한 작품들을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다. 이 작품은 르누아르의 초기 대표작 중 하나로 이슬람문화권에서 부인들이 거처하는 방이자 금남의 구역을 의미하는 하렘(حريم,  harem)에 모여있는 관능적인 여인들을 표현하고 있다.

아름다운 여성 아래 놓인 카펫과 화려한 액세서리까지 묘사해 낸 르누아르는 사실 이슬람문화권을 방문한 적 없었다. 그는 당시 큰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외젠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의 <알제의 여인들(Femmes d'Alger dans leur appartement, 1834)> 등 모로코 또는 이슬람 문화들을 그린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참고하여 이 작품을 제작하였다고 한다. 작품에서는 총 4명의 여성을 발견할 수 있다. 작품의 중심이 되는 앉아있는 금발의 여성과 그 양옆에 두 명의 흑발의 여성들은 화려하게 치장하는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금발의 여성은 오른쪽에서 거울들 들고 있는 여성과 얼굴에 화장을 해주고 있는 듯한 왼쪽 여성의 시중을 받고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이 시기 작품들은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 자포니즘(Japonism) 등 동양에 대한 호기심과 서구인의 시각, 제국주의적 면모 가지고 있다. 특히 관능적이거나 잔인한 면모, 후궁, 목욕탕 등에 전형적이고 부정적인 모습으로 동양의 신비를 표현하고자 했던 오리엔탈적 시각을 이 작품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이 작품이 표현하고 있는 공간, 하렘은 이슬람 율법에 따라 남녀의 생활공간을 구분하기 위한 공간이었다. 또한 굉장히 엄격한 규율에 따라 운영되는 공간으로써 최고 지휘권자인 술탄의 어머니 아래 많은 감독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오스만제국을 통 하렘이 유럽으로 알려질 때 정확하지 못한 정보를 통해 음란한 장소로 변질되었다. 이에 르누아르를 비롯한 많은 예술가들이 하렘을 농염한 여성들의 공간으로 표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작품 속 오른쪽 위의 여성은 관람객에게 등을 보이며 마치 누군가와 대화하고 있는 듯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베일리와 콜린(Bailey, Colin B)은 '르누아르의 초상화: 시대의 인상(Renoir's Portraits: Impressions of an Age, 1997)'에서 르누아르가 동양적인 주제를 가지고 파리의 매춘업소에 남성 고객이 도착한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고 평하기도 했다.


비록 여기서는 두 개의 작품만을 살펴보았지만, 국립서양미술관은 엄숙한 종교화부터 큐비즘, 추상화에 이르는 20세기의 작품까지 모두 아우르며 탄탄하게 서양 미술의 흐름을 경험할 수 있다. 한국어로도 제공되는 세세한 설명과 방대한 작품 컬렉션을 볼 수 있는 상설전만으로도 방문할 가치가 충분한 미술관이라 생각된다. 특히 서양 미술의 흐름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은 사람은 방문을 추천한다.


장소: 국립서양미술관

전시명: 상설

관람 시간: 화요일-목요일 9:30~17:30 | 금요일, 토요일 9:30~20:00 (매주 월 휴관)

입장료: 일반 500엔, 대학생 250엔

위치: 110-0007 도쿄도 다이토구 우에노공원 7-7

                    

참고자료: 국립서양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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