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가슴속에
사직서 하나쯤은 다 품고 다닌다고 하는데
학생들도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사직서는 돌이킬 수 없는 GG선언이지만
체험학습 신청서는 온정이 넘치는 쉼표이다.
하지만 사전 신청, 사후 보고서 작성은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다.
또한 매우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보호자와의
상호합의가 이루어진 후에야 발동된다.
그래서 모두 가슴속에 하나쯤 품고는 있지만
언제든지 꺼내 던질 수는 없다.
학교에서 탈출해야 한다.

그렇다면 다음 스텝!
브레인-바디 시스템을 활성화시켜라!!
레드 썬!!!
나는 지금 아프다~ 나는 지금 아프다....

됐어! 지금이야!
학생: 선생니임... 조퇴 마려워요~
교사: 마려워?(이거 생리현상이잖아.)
매슬로우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지
하위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상위 욕구로 나아가기 어렵다.
가장 최하위 생리욕구가 해결되지 않으면
공부고 뭐고 다 소용없다.

그럼 집에 보내줘야 하나?
교사는 보호자와의 합의를 시도하지만
반응은 제각각이다.
type1> 철벽핑
"선생님, 그냥 다 마치고
집에 오게 해 주세요."
보통은 워킹맘들이다.
어차피 집에 와도 아이혼자 위급 상황에 대처하기 어려우니 걍 학교에 있는 것이 더 안전하다.
게임 좋아하는 아이인 경우는
병원문을 열기보다는
게임 로그인을 하기 때문이다.
type2> 불안핑
"우리 공듀님 당장 집으로 보내주세요."
엄마는 아이가 진짜 아픈지 거짓으로 아픈지
중요하지 않다.
내 아이의 불편감을 얼른 해소해주고 싶은 마음뿐이다.
type3> 급식핑
"점심 먹고 나서도 힘들어하면 보내주세요."
어쨌든 약을 먹으려면 밥은 먹어야 하고
일하는 엄마는 비어있는 밥통이
아이의 안부만큼이나 신경 쓰인다.
때는 바야흐로..
나의 학창 시절 조퇴성공기이다.
이것은 꽤나 과학적 원리에 근거한 쾌거였다.
운동장 스탠드는 시멘트로 되어 있고
시멘트의 비열은 상대적으로 낮다.
이글거리는 햇살에 달아오른 시멘트는
5분만 살을 맞대고 있으면
내 이마를 따끈하게 달구어준다.
다만, 몸을 폴더로 접고
이마를 시멘트에 대고 있어야 하는
부끄러움을 견뎌야 하고
이를 망봐줄 친구가 필요하다.
폴더로 접은 몸을 5분 후 일으키면
자연스럽게 기립성 저혈압이 동반되고
눈동자가 흐릿해진다.
이 찰나를 놓치지 않고 몸을 질질 끌고 담임샘께 간다.
지연: 선생님.....
(반쯤 풀린 눈으로 외마디 절규를 내 지른다)
선생님의 손이 반사적으로 내 이마로 향한다.
교사: 어머! 지연아! 너 열나는구나?
(화들짝 놀라서)
옆에서 망보던 친구가 이때 잽싸게 끼어든다.
친구: 샘~지연이 1교시부터
아파서 엎드려 있어어요.
교사: 그랬구나.... 얼른 집 가서 쉬자.
예쓰!!!
나의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조퇴프로젝트는
쾌거를 이루었고 후에 친구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회자되었다.
짜릿한 조퇴를 얻어낸 후
나는 점점 대범해졌다.
이제 내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경지에 이르렀다.
먼저 3인 1조를 이룬다.
나는 그냥 교실 뒤에 쓰러져있다.
발이 빠른 행동대장 내 친구가 헐레벌떡 뛰어가 담임샘을 부른다.
친구1: 샘!! 큰일 났어요!!!
교사: 왜??
부리나케 교실로 오신 선생님을 바라보며 두 번째 연기파 친구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다.
친구2: 샘...지연이가 갑자기.... 쓰러졌어요. 어떡해요.... 구급차 불러야 할까요?(울먹울먹)
담임샘은 다급하게 엄빠에게 전화를 하신다.
그렇취~

또 성공이다!
달콤한 성공경험은 나의 훈장과도 같았고 쫄보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영웅이 되었다.
그런데... 인생이란 끝을 알 수 없는 소설.
내가 그렇게 짜릿하게 속였던 그 담임선생님과 같은 학교에서 동료교사로 만나게 된 것이다.
억지 미소를 지으며 반갑게 인사 드렸지만
지은 죄가 있는 나는 한없이 움츠러들었다.
학생들은 내 스승님께 나의 학창 시절에 대해 캐물었고
나는 때늦은 죗값을 치르게 되었다.
"아주 모범생은 아니었다."

운명의 수레바퀴는 돌고 돌아
나의 짜릿했던 조퇴는 비수가 되어 꽂혔다.
얼마나 조퇴가 하고 싶은지
나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렇지만 참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점점 참는 것이 미덕이 아니라고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사회에 나가기 전에
어떤 맛인지 살짝 찍어 먹어보는 정도는 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고됨이라는 맛에 푹 절여졌을 때
좀 덜 놀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