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그릇

친정엄마 명절상 차려 드리기

by 젼샘

여자는 결혼을 하고 나면
결혼 전의 나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 누구의 며느리이면서
어딘가에서는 직장인이 된다.


갑자기 몰아닥친 역할놀이 속에서
늘 해오던 ‘누구의 딸’ 노릇을 온전히 하지 못해 서글퍼진다.

그래도 요즘은 많이 달라졌다.
‘누구의 딸’로 살 수 없게 만드는 사회 분위기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우리 자녀 세대는 아버지 중심의 문화를 낯설게 여기기 시작했다.

이제는 명절에 시누이 상 차리느라 친정에 못 간다는 며느리의 이야기도 드물다.


내 엄마는 몇 해 전 칠순을 맞았다.
바람 불면 날아갈 듯 여리여리하던 새침한 아가씨는 온데간데없고
넉넉한 몸매에 고혈압과 당뇨를 가진 할머니가 되었다.

세 번의 암투병을 이겨내 트리플 크라운을 갖게 되었다.

엄마는 유방암 수술을 마친 뒤 8차 항암을 선고받았다.
칠순의 나이에 8차 항암이라니,
그 긴 싸움을 이겨낼 수 있을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했다.


그런 엄마가 두 번의 암투병 후, 무릎 인공관절 수술까지 견디고 있을 때, 지켜보는 딸들의 마음은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그토록 씩씩하던 엄마의 체력과 감정이 바닥을 치는 날도 있었다.

그럴 때면 엄마는

“부모 복 없어,

남편 복 없어,

그래서 자식 복도 없어.”라는 말을 자식 앞에서 하곤 했다.


그런 날에는 머리부터 발 끝까지 축축하게 젖은 것처럼 온몸이 축 늘어져 엄마 집을 나서곤 했다.

할 말 못 할 말 다 쏟아내는 엄마의 나약함이 위태롭고 안쓰러웠다.
그래서 더 감정적으로 돌봐드리고 싶었다.
적어도 내 앞에서만큼은
“네가 형편없다”는 말을 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나의 결혼생활은 녹록치않아 힘겨웠다.
그래서 거리를 두었다.

엄마의 피땀눈물로 자란 내가
엄마처럼 푸대접 받는 모습을 들킬 수는 없었다.
적당히 포장하고, 적당히 거리를 두며 엄마를 외면했다.
암 투병으로 생겨난 엄마의 분노와 원망이 내 안에 번질까 두려웠다.
내 속의 회오리조차 감당하기 힘들었으니까.


마흔이 넘어 깨달았다.

인생의 좋은 순간도, 괴로운 순간도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진다는 사실을.

아무리 행복했던 기억도 흐려지고
지금 서운함이 한 톨이라도 남으면
그 사람은 결국 ‘서운한 사람’이 된다.

아무리 괴로웠던 기억도
지금 정겨움이 한 톨이라도 남으면
그 사람은 ‘정겨운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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