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테나가 100개 있어
젼샘은 슬프다.
왜 이렇게 다른 사람들 머릿속이 보이지?
같은 교무실을 쓰는 동료 교사가 13명인데
나는 동시에 13개의 마음을 읽는다.
들린다.
그들이 원하는 것들이 들린다.
'휴.. 정말 너무 힘드네요.... 매일 지각하고 연락도 되지 않는 OO이 담임 노릇이 정말 지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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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는 향기롭고 따뜻한 드립 커피 처방을 내려야겠어. 단! 생색내지 말고, 그녀의 시간을 빼앗지도 않으려면 최대한 조용히 커피만 주는 거야...... 명심해! 절대.... 전샘 최고! 젼샘 정말 고마워요! 뭐 이런 소리 듣고 싶은 거면 하지 마!
'어? 이상하다?! 구글 시트 다른 샘하고 공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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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르게 chat gpt에게 묻는다. '구글 시트 공유하는 방법(엔터)' 그러고는 조용히 다가가 말한다. "샘.... 저도 잘은 모르지만 제가 한 번 볼까요?" 같이 들여다만 봤는데 이미 신들린 마우스가 이것저것 누르며 방법을 찾아낸다.
'샘들~ 우리 반 별로 수상작 4개씩 뽑아서 걷을께요~테이블에 올려놔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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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차순으로 숫자가 세겨져있는 스탬프를 포스트잇에 꾹 찍어 내 반에 동그라미를 치고 제일 먼저 테이블에 수상작을 올려놓는다. 이것은 제출한 반과 아닌 반을 담당자가 쉽게 알 수 있었으면 하는 나의 작은 배려^^
'OO아, 좀 전에 교실에서 니가 했던 '빠빠빠 뿅뿅뿅'이란 말은 부적절한 말인 것 같은데, 왜 그런 말을 한 건지 말해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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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이 시끼야~미친 거 아니니? 어떻게 그딴 말을 해??'가 저 선생님의 속마음일 텐데, 내가 좀 거들어 줘야겠어!
"OO이가 그랬다구요? 에이~ 그럴 리가요. 영어 시간에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었는데 OO이가 이렇게나 잘했는걸요. 우리 OO 이는 그럴 리가 없습니다~" 학생은 칭찬인지 훈육인지 얼떨떨한 상태로 돌아간다.
보인다.
개선되어야 할 환경이 보인다.
입 벌리고 널브러져 있는 A4용지 뭉치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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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바빠서 허둥 지둥 껍질을 벗기고 복사했을 동료가 눈에 선하다. 껍질을 벗겨 분리수거하고 남은 종이를 복사기 안에 보태어 넣는다.
주전부리와 차들을 올려놓은 테이블 밑 쓰레기통 안에 쓰레기가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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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통 위에서 먹을 거 먹고 싶지 않을 텐데.....
바닥은 커피 얼룩과 과자 부스러기 누군가의 머리카락으로 어지럽다.
치운다고 생색내지 말고 아무도 모르게 청소기 돌려놓고 바닥 닦아 놓자.
생기부 시즌이 돌아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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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기부 담당자가 업무가 많아 힘들 텐데 A4용지라도 미리 가져다 놓자.
혼자서 수레를 끌고 이고 지고 나른다.
쉿! 아무도 니가 A4 용지를 낑낑대며 6박스 나른 걸 눈치재지 못하게 해야 해.
그러다 일 년이 다 지난 후에 한 번쯤은 누군가 보겠지.
그렇게 감탄사를 단전에서부터 내뿜으며 동료들은 나에게 엄지 척을 날릴 거야~
생각만 해도 아름답다~
싱크대 청소 내가 할 차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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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구 거름망을 꺼내면 그 안에 곰팡이가 있어. 그것까지 말끔하게 닦아야 싱크대 청소지~
역시 젼샘 잘했어~
어느 날 교사 연수를 받고 온 동료가 말한다.
"오늘 연수에 젼샘 이야기가 나왔어"
"예? 제가요? ㅎㅎ 왜요?"(갸우뚱)
"주변에 시키지도 않았는데 열심히 청소하는 사람은 인정욕구 때문에 그런 거래~~"
아.....

남들에 대한 배려가 나의 성숙함에서 기인한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던 내 세계관에 균열이 생겼다.
내가 인정욕구에 걸신들린 배고픈 영혼이었구나.
가엽고 딱했다.
넌 너의 필요와 욕구가 뭔지 알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왜 자꾸 남들을 기웃거려?!
남들에게 지금 뭐가 필요한지가 왜 그렇게 중요해?
효용과 필요를 입증해야 내년을 기약할 수 있어서 그런 거야?

"젼샘은 꼭 필요한 사람이야~"
"저 사람 내년에 우리와 함께 해야 해^^(짝짝짝)"
이거 인정 아니잖아.
혼자 이타적이라는 자기만족에 쩔어 있으니까
니가 만만하고 부려먹기 딱 좋다는 거잖아.
정신 차려!
왜 그런 평가에 널뛰는 거야?
너 스스로를 인정하는 것이 그렇게도 어렵니?

나는 방법을 모른다.
자기 내면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남들에게 내 모습을 투사하고
그들이 만족하는 것이 마치 내가 충족된 것인 양 착각하고 있었다.
충족되지 않은 욕구는 켜켜이 분노로 쌓인다.
내 삶은 고상하고 성숙해야 하기 때문에
만족되지 않은 내 마음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열심히 뭔가를 한다.
남들에게 손가락질받을 퇴폐적인 방법으로 욕구를 분출시켜서 자신의 민낯을 드러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허용되고
도덕적으로 지탄받지 않는 범위 안에서
나의 억눌린 스트레스를 풀어야 한다.
남들을 배려하고 돕는 행동은 진정으로 계산 없는 호의에서 시작된다.
내가 도움이 필요할 때 누군가 나를 이렇게 도와줬으면 좋겠다.
한 번의 도움이 한 번의 도움으로 일대일 대응하여 돌아오지 않더라도 서너 번의 도움이 한 번의 도움으로 돌아온다면 서로 돕는 넉넉하고 여유 있는 환경이 될 테니 우리 모두 즐겁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문제는 요청받지 않은 일들이라는 것이다.
남들일에 오지랖 떠느라 정작 나에게 주어진 일은 대충 해 놓고
"only me"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만"
너그럽기를 바라고 있었다.
퇴근시간까지 숨 가쁘게 달린 동료들이 나를 바라봐주지 않았다고 원망하고 있었다.
웁쓰~
요청받지 않은 일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감춰진 내 배려에 감사를 표할 이유가 없다.
인정받지 못해 서운할 것 같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한다고 나를 몰아붙인다.
도움이 필요한 그들의 모습에서
(내 기준^^;;)
도움을 받고 싶은 나를 발견한다.
위로가 필요한 그녀,
돌봄이 필요한 그에게서
나를 발견한다.
나는 그들을 돕는다고 하면서 나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그들을 돕는 나에게 도취되어 우월감에 빠져있는 것이었다.
나를 사랑하고 인정하는 방법을 찾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