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에 고추를 심었다.
언제 키워서 언제 고춧가루가 될는지 갈 길이 멀다.
무슨 비가 이리도 많이 내리는지 간신히 고추를 수확했다.
신나게 모기에 뜯겨가며 굽은 허리로 고추를 따서 막내아들이 사 준 건조기에 넣었다.
바짝 말려 방앗간에 가서 빻아오니
김장 준비를 다 한 것 마냥 뿌듯했다.
작년 늦가을에 심어둔 마늘을 초여름에 수확했다.
오지다 오져~
수확의 기쁨을 만끽하며 잘 저장해 두었다.
8월 말에 항암배추라고 하는 모종을 구해서 심었다.
자식들이 먹을 배추에 농약을 칠 수는 없으니
매일 같이 배춧잎을 들춰내어 벌레를 잡았다.
쪽파, 대파, 갓도 같은 시기에 심었다.
김장은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고단하다.
배추 농사라는 것이 날씨가 도와야 되는 것이라 늘 변수가 따른다.
배추가 다 물러 다른 밭에서 사 나른 경험이 있는지라 수확량이 부족할까 넉넉히 심었다.
올해는 유난히 비가 많이 내려 배추가 작년만 못하지만
그래도 우리 가족 김장할 만큼은 지켜내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남은 배추를 누구한테 어떻게 주는 것이 좋을지 행복한 고민도 하게 된다.
부산에 사는 언니가 의사 아들이 주는 용돈 자랑을 하며 돈 줄 테니 김장해서 보내란다.
정성껏 키운 유기농 재료들로 만든 것이니
자신 있게 그러겠노라 했다.
어차피 남는 배추로 인심 쓰고 돈도 버니 안성맞춤이다.
며느리들한테 이모 김치까지 버무리라고 하기가 민망하지만 그 돈으로 김장 재료 샀다 치면 된다.
김장을 위한 재료들이 텃밭에서 다 자랐으니 이제 날짜만 택하면 된다.
내 기분 내키는대로 날짜를 잡을 수는 없다.
갑자기 한파가 들이닥쳐 배추가 얼수도 있으니 날씨를 민감하게 주시해야 한다.
며느리에게 한 달 전부터 김장 날짜를 고지했다.
며느리가 그날은 못 온단다.
뭐라고 했는데 이유는 잘 기억이 안 나고 어쨌든 날씨가 변덕부리기 전에 해치워야 하는데 이러다 배추 뽑아서 비닐하우스에 저장해야 하는 번거로운 과정이 더해질까 봐 미간이 찌푸려진다.
일 년 내 농사지어서 이제 결전의 순간이 다가오는데 그날 하루 시간 하나 딱딱 못 맞춘다는 것이 못마땅하다.
요즘 세상이 좋아져서 며느리들이 큰소리치고 사니 상전 모시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타이밍 맞춰야 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 발을 동동 구른다.
어쨌든 나는 준비를 마쳤으니 아들이 사 준 세라젬에 누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