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의 김장 일기 1

효도행사

by 젼샘

"며느리가 직장에 다니면

어머니가 해서 보내주시지 않아요?"


"음... 전 그런 적이 없습니다."


학교에서 이맘때쯤이면 김장 얘기들이 오간다.


"김치 별로 안 먹어서 사 먹어요."

"어머니가 담가서 보내주세요."

"남편만 시가에 가서 해와요."

"친정엄마가 해서 주세요."


와.... 부럽다....

저런 게 사랑받는 건가?

저런 게 존중받는 건가?


"저는 시가에 김장하러 가요."

"힘들겠네...."

(방끗 웃으며)"힘들긴요...

전에는 배추를 농협 가서 사 와서

전날부터 가서 절이고 1박 2일로 했는걸요."



어머니에게 김장은 독보적이고 카리스마 넘치는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이벤트이다.

본인의 재능이 빛을 발하고 큰 아들 집 김치 냉장고를 가득 채워주는 것은 매우 뿌듯한 일이다.

누구나 자신이 잘하는 것을 뽐내고

꼭 필요한 사람이란 충족감을 느끼는 것은

중요하다 생각한다.


김치 없이도 잘 사는 내가

고된 강도의 김장에 동원되는 것이

억울한 감이 있지만

그래도 어머니에게 자아효능감을 느끼게 해 드리는 효도 행사라고 마음먹었다.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가 기울어진 운동장이고 불공정 거래임이 확실하기에 그냥 받아들여야 했다.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너무 많은 결혼 생활을 소화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남편은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려

엄마 김치가 아니면 못 먹겠다며

이른바 '모친김치론'을 펼치지만

나에게 김장은

주도권을 빼앗긴 결혼 생활 속의

그 무엇들 중 하나일 뿐이다.




<상실의 시작>


결혼하자마자 토요일까지 출근하고 일요일엔 예쁘게 차려입고 교회로 갔다.

교회를 마치면 시가에 들어가서 밥을 먹고 서너 시쯤 되면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

결혼식 후 의례적인 일들을 마무리 짓고 한숨 돌릴 즈음이었다.

그날은 주방에 마늘 냄새가 진동했고

쪽파가 가지런히 까서 놓여있었다.

개수대 위에 곱게 긁어 까놓은 생강 두 톨이 있었다.

이제 김치 담는 법을 가르치려고 준비해 놓으셨다고 했다.

어머니는 아들이 태어나자마자

며느리에게 가르칠 것들을 정해놓으신 것처럼 빠른 속도감으로 나를 몰아붙이셨다.

어머니에게 김치란 자존감 그 자체였던 것 같다.

아들 입맛에 맞는 반찬들을 가르치시려고 분주하셨고 그런 어머니 옆을 종종거리며 "와~맛있어요. 오~이렇게 하는거군요. 아~감사해요!" 3종 세트를 날렸다.

그때 어머니는 아들 내외와 함께 살고 싶은데 따로 사는 것을 허락하였으니 이 정도 가르침은 달게 받을거라 믿으시는 듯 했다. 그때 본인의 아들은 소파에 누워 편히 쉬게 하셨다.

음...결혼이라는 것은

남편은 본가에 가서도 누워있고

신혼집은 홈 스윗 홈이니까 누워있고

처가에서는 백년손님이라 누워있는 것이었다.

와~ 개부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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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한 기억>

수능일이었다.

그 시절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식은땀이 흐르다 하늘이 노래지면 감독이 끝났다.

전날부터 감독관 연수받고 당일 새벽에 별 보고 고사장에 도착하면 식어빠진 김밥 한 줄과 생수가 고작이었다.

감독 교사가 잠시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생긴 건 최근 일이다.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몸을 질질 끌고 돌아오는데 "내 집" 마당에 배추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그리고 쭈그리고 앉아 식칼로 배추를 가르던 어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이 순간이 내 기억 속 가장 잔혹하게 각인된 한 조각이다.

나에게 집은 내 집이 아니다. 심지어 반쪽짜리 주인도 못 되는 듯하다.

내가 주인이라면 주인 허락 없이 그렇게 침범당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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