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2일에 김장할까 한다."
"아.... 그날 큰 애 수리논술고사 보러 가는 날이라 다음 주에 하면 안 될까요?"
"그라믄, 그래라."
아들이 수능을 보고 난 후
나는 나대로 맥이 풀렸다.
2주에 걸쳐 수리 논술고사가 남았지만
아들도 나도 수리 논술고사로 막판 뒤집기를 할 수 있을거라 믿지않는 듯 했다. 너덜너덜 흐느적 거리는 몸과 마음을 간신히 지탱하고 논술 고사를 마쳤다.
어머니께서 김장날을 정해주셨으니 나는 나대로 어지러운 마음에 분주함이 더해진다.
김장 날을 사주단자 받듯이 받고 나면
아무것도 할 것 없는 며느리는 할 일이 태산이다.
김치 냉장고에 김치는 어느 정도 비었지만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쌀, 탄산수, 기타 등등을 다 비워내야 한다.
김치통을 들어낸 자리는 고춧가루, 김치국물 등이 눌어 붙어있어 한 두 번 닦아 내서는 턱도 없다.
손가락 마디마디 힘을 주고 행주를 비틀어 짜고 또 헹궈내기를 열 번을 넘게 해도 오염이 쉬 제거되지는 않는다. 그래도 그럭저럭 냉장고를 닦아 놓고는 김치통을 모두 씻어 햇볕에 널어 말린다. 온 집안이 김치 냄새로 가득하다.
전쟁통 북새통이 따로 없다.
아무것도 할 것이 없는 며느리는
주말 온종일 할 것들이 있다.
분명 나는 마음 속으로
이것은 효도행사라고 명명했다.
무릇 사람된 자로 어른에 대한 예의로
어머니 마음 불편하지 않으시게 고분고분 잘 따라드리기로 마음 먹었다. 하지만 여전히 김장은 나랑 상관없는 일이란 생각에 여전히 부아가 났다.
농협 가서 배추를 사다 나르고
하룻밤 시가에서 자면서 배추를 절이던 그때를 생각하면 다 절여놓으신 배추에 양념 속만 만들어 넣는 것이 별 것 아닐 수 있다.
하지만 11월 말 경이면
학교는 늘 지필평가 출제로
온 신경이 곤두서 있고 매일매일 목이 터져라 진도 빼느라 더 고되다. 매일 같이 파김치가 되어 돌아와 애 둘 건사하고 살림하며 사는 며느리 안쓰럽지도 않으신지, 왜 꼭 그렇게 불러내리시는지 원망스럽기도 하다. 진짜 원망스러운 건 남편의 태도이다. 본인도 마누라 눈치 보기 싫으니 너 김장하러 가지 말라고 큰소리치고 싶겠다만 그리 못하는 걸 보면 어떤 논리가 작동하지는 알 수가 없다. 결론은 마누라 힘든 건 알 바 아니다 내 엄마가 더 고생하니 잠자코 해라로 느껴졌다. 다른 집은 아는 분들 모셔다가 같이 품앗이로 하신다는데 우리 어머니는 일부러 그렇게 안 하신다고 하셨다. 며느리들 있는데 며느리 욕 먹이는 거 싫다셨다.
흠...
어느 해는 부산 언니네 김장도 모자라 의사 조카네 것까지 신이 나서 해주시고, 어느 해는 우리 친정엄마가 몸이 편찮으시니 그것도 해주신단다.
어떤 기준으로 올해의 김장 대상자를 선정하시는지 그 기준을 알 수가 없다. 내 친정엄마가 선정되었을 때는 감사한 마음이 컸지만 명백한 김장총괄팀장은 내가 된다.
어머니 나름의 이유와 명분이 있으시겠지만 동서 보기가 민망했다. 어떨 때는 얼굴도 모르는 교회 분들 김치까지 버무리고 있으니 판 벌인 김에 본인 엄마 김치 해다 드리고 싶은 마음이 들지는 않았을까...싶기도 하고....
권한은 없고 책임만 있는 김장총괄팀장은 안절부절이다.
올해도 래퍼토리가 들려온다.
"아이고~언니는 의사 아들한테 매달 월급을 받응께 나한테 돈 딱~ 보냄서 김장 맛있게 해서 보내라! 하드라~"
보통은 의사 아들을 둔 부산 언니네 집이 주로 등장하지만 돌아가며 아들한테 고정생활비를 받아쓰는 누군가가가 꼭 등장한다. 주인공의 특징은 자식한테 고정생활비를 받지만 물색없이 낭비를 하거나 어딘지 모를 안타까운 구석이 있어서 걱정스럽다....누가 뭘 해서 그르케 돈을 잘 번다드라....뭐 그런 에피소드들이다. 즉 부럽다~~~뭐 그런 얘기다.
다음에는 연습했다가 꼭 말씀드려야겠다.
"어머니~ 저는 공무원 퇴직해서 연금받는 남편이 출근도 하는 어머니가 젤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