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채워가는 나의 결핍)
쌉싸래하고 묵직하고 살짝 과한 쓴 한 모금이 입 안에 들어온다.
성공의 맛이다.
누림의 맛이다.
남이 차려준 맛이다.
울컥하는 눈물의 맛이다.
커피빈은 내 대학시절 종로 거리를 돌아다니면 흔히 볼 수 있는 커피집이었다.
시골 촌년이 서울 상경해서 오만 신기한 것들에 경외심을 표하듯 커피빈도 나에게는 경외의 대상이었다.
그런 곳에서 멋들어지게 모닝커피를 마시고 있는 이 순간 나는 성공했다.
토요일 이른 아침은 나에게는 정말 중요한 시간이다.
"나 찾기 프로젝트"
나를 규정하는 키워드 중 하나는 결핍이다.
이혼 안 한 부모 밑에서 남들처럼 자랐다. 뭐 그리 대단히 호사누리며 공주대접받고 살지도 못했지만 그렇다고 세상 서러웠을 것도 없는 보통의 어린 시절을 보냈다.
차고 넘치지는 않았어도 모자라서 빈곤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나는 계속 사랑이 고프다.
이 세상 사람이 줄 수 있는 사랑으로는 나를 만족시킬 수 없다고 생각하며 체념했다.
그래서 절대자의 온전한 사랑으로 충만해지기를 간절히 바랐다.
보이지도 믿어지지도 않는 절대자의 사랑을 찾는 것은 나에게는 해결할 수 없는 과제였다.
마찬가지로 남이 주는 사랑은 늘 허기져 내 기대를 채울 수 없었다.
그래서 내가 나를 사랑하자고 결심했다.
도장 깨기 하듯 매일 나를 대접하고 결핍을 메꾸고 있다.
남이 해주면 한 방에 해결될 일을 내가 나에게 하려니 참으로 더디다.
나를 대접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5백만 원짜리 명품 가방을 사야 분이 풀릴까 싶지만 기분 좋은 음악과 향기가 있는 공간에서 2~3만 원이면 충분히 숨통이 트였다.
나는 먹는 것에 별로 흥미가 없다. 알약 한 알 먹고 끼니가 해결된다면 그걸 택하고 싶다.
그래서 뭘 먹을지 결정할 때 나는 의견을 거의 내지 않는 편이다.
이걸 먹으나 저걸 먹으나 난 심드렁하다. 그러니 취향 확고한 사람들의 의견에 따르는 편이다.
강하게 내 주장을 해봤자 몇 입 먹지도 못하고 젓가락을 내려놓으면 민망할 것 같아서이다.
그래서일까?
어차피 난 조금 맛만 보면 되니까 음식이 있으면 제일 먹음직해 보이는 부분은 늘 양보한다.
조각 케이크가 있으면 누가 먹다 무너진 쪼가리를 먹는다.
그걸 본 동네 언니가 갑자기 포크를 들더니 가운데를 푹 찌르며 케이크를 망가뜨린다.
"됐지? 이제 먹어 가운데 먹어!!!"
나....
누가 그러라고 시켰나?
왜 자꾸 주변인으로 살아가고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게냐?
이쯤 되니 정말 나란 사람이 왜 이러는지 궁금해졌다.
제일 맛난 가운데 부분을 푹 찔러 떠
오늘도 라자냐의 주변부를 끄적거리며 먹고 있었다.
그러다 치즈케이크 사건이 떠올라 호기롭게 가운데를 푸욱 찔렀다.
그러고 나서 보란 듯이 묵직하고 리치한 맛을 내는 한가운데를 수저 수북이 떠서 한 입에 넣었다.
그 접시는 온전히 내 것이었다.
나 혼자 먹는데 누구를 배려하고 눈치를 보고 있었던 게냐? ㅎㅎㅎㅎ
이제 나는 매일매일 연습한다.
관계의 정상화, 일상의 정상화
나를 더 잘 알고 더 사랑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