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대한 욕심이 과해 도서관에 가면 눈앞을 가릴 정도로 책 무더기를 집어 빌려오곤 하지만 이내 넷플릭스에 지고 마는 내 행태가 스스로 못마땅할 즈음이다.
독서가 어려운 이유는 책을 읽으면서 딴짓을 할 수 없어서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파닥거리며 이것저것 해야 하는 내 성미에 진득하니 앉아 책만 읽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래도 책을 안 읽으면 궁금하고 신경 쓰이는 것이 책이랑 썸타나 싶다.
이런저런 책들을 주변에서 추천받아 읽고 싶은 순서대로 마음속에 정해놓고는 소중하게 한 권씩 읽어가고 있다.
아니다 듣고 있다.
분명 읽는 것과 듣는 것은 다를 것이다. 읽을 때는 더 생각하고 싶은 내용을 사진으로 찍어두었다가 기록해 놓기도 하고 곱씹기도 한다. 그러나 들을 때는 그저 듣고 지나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무리 듣고 지나치더라도 책 듣기는 나의 일상에 독서라는 뿌듯함을 안겨준다.
요즘은 오기인지 용기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목동, 대치동을 넘나들며 고3이 된 큰 아이를 이리저리 실어 나르는 중이다. 오랜 운전시간이 괴롭지 않기 위한 좋은 짝을 만났다. 오디오북을 들으며 운전하는 것이다. 나의 박완서 작가님의 글을 염혜란 배우의 목소리로 들었다. 그런데 그냥 그렇게 흘러갈 "알맞다"라는 소리가 가슴에 쿵 내려앉는다. 그냥 앞뒤 문맥에 맞게 꾸며주는 말로 잠시 등장한 그 한 단어가 무겁게 내려앉는다.
박완서 님의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라는 책의 내용 중 등장한 단어였다.
보통이다..... 평범하다..... 평균이다...... 이런 말과 흡사할까?
상대방이 무겁다 느껴 힘이 든다?
그럼 사랑 아닌 건데....
진짜 사랑이면 그 무거운 마음을 거두어야 한다.
그런데 이건 머리가 하는 일이고, 마음은 그렇지가 못하다.
내 아이에 대한 사랑의 무게를 저울질해서 숫자로 매길 수 있을까?
어느 엄마도 그럴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 사랑이 얼마나 무거운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
또한 그런 이유로 내 사랑이 부족할까 조바심나 계속 더 많은 사랑을 퍼붓는다.
그런데, 아이가 내 사랑에 짓눌러 힘이 든다고?
그렇다면 그 사랑 당장 철회하고 싶은 것도 엄마의 마음이다.
진짜 사랑은 내 마음이 아니라 상대에게 전달될 내 마음을 가늠하고 헤아리는 것까지일까?
아들은 모를 것이다. 정말 너무너무 사랑해서 너의 온몸의 습도까지 맞출 만큼 동기화되어 있는걸....
ㅋㅋㅋ 너무 무섭다. 온몸이 오싹 조여 온다.
나의 자발적이면서도 등 떠밀린 사교육비 지출이 한 해를 돌아보니 차 한 대 값이었다.
재수할 수도 있다는 큰 아이의 말에 뭐라 크게 반박하지 않았지만 이 길고 긴 사교육비의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에 가슴이 답답했다.
이렇게 공부 뒷바라지를 하더라도 절대로 본전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아이에게 부담 주지 말아야 한다고 하루에도 수십 번 되네인다. 제 딴에는 기를 쓰고 하려는 마음만으로도 정말 큰 기쁨을 주는 것이라고 늘 스스로에게 말하고 또 말한다. 하지만 동시에 하루에도 수십 번 이럴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에 혼자 만리장성을 백 번은 쌓았다 허물기를 반복한다.
휴대폰 화면에 떡 하니 박제해 놓은 여자친구와의 사진을 보면 불쑥불쑥 의구심과 원망과 초조함이 끝도 없이 뻗쳐나간다.
백 번의 불안함을 참고 또 참아도 결국은 한 마디씩 토해내고 있는 못난 엄마지만, 내 마음이 하루에도 수십 번 널뛰기를 하는데 거기에 기름을 붓다니....
방학 동안 큰 아이 도시락을 포함해서 하루 여섯 번의 식사를 차렸다.
일어나는 시간이 다르니 먹는 시간이 다 다르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밥 밖에 없으니 그렇게도 열심히 했다.
한 달을 열심히 밥을 했더니 얼른 분필이 잡고 싶어졌다.
방학이 싫다.
일어나!!!!!!!
일어나라고!!!!!!!
안 일어나!?!?
말을 듣지를 않는다. 잔소릴 아무리 하면 무엇하나. 그저 그렇게 땅에 떨어져 버리는 말들인 것을.
그렇다고 다 큰 아이들한테 소리 빽빽 지르면서 험악하게 구는 것도 넌더리가 난다.
아이들만 바라보고 있는 내가 괴롭기 그지없다.
이것이 내가 견뎌야 할 사랑의 무게란 말인가.
오늘도 등굣길 차에서 내리려는 아이를 붙잡고 억지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엄마: 토스트 한 입만 먹고가~
아들: 싫어....
엄마: 그래.... 그럼.... 잘 다녀와.....
전에는 험한 소리, 쓴소리, 고전적인 소리 다 해가며 어르고 달래서 한 입이라도 먹여서 보냈지만 이젠 그러지 않으려고 한다.
알맞아져야 하니까?
엄마들이 아이 대학 입학 후에 자신의 블로그에 합격 후기를 쓰는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이것은 아이의 성취가 아닌 엄마의 성취임이 분명하다. ㅎㅎ
알맞은 표현은 어디까지일까?
알맞은 사교육비는 얼마까지일까?
알맞은 사랑의 무게는 얼만큼 일까?
알맞고 싶다. 넘치지 않게 과하지 않고 싶다.
그런데 저 알맞다는 말이 오늘은 왜 이렇게 얄밉게 들리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