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럽게 녹아내린 초록 국물은 내 눈물일까
주늑들어 자랐다.
자존감이 낮은 것 같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시녀 되기를 자처하고 그것이 더 품위 있고 성숙한 것 마냥 만족해 왔다. 그런데 품위 있어 보이는 내 모습 너머에는 가장 푸대접받고 있는 내가 있었다.
늘 곱씹어 본다.
누가 날 이렇게 만들었는지, 누구에게 분풀이를 해야 속이 후련할런지...
심리상담을 하면 원가족으로 거슬러 올라가 원인을 찾는다.
그럼 우리 부모가 잘못했네.
뭘?
나는 3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명절에도 남자밥상, 여자밥상을 따로 차리는 그런 집성촌에서 장남으로 태어난 아빠는 딸만 셋이었다.
그게 뭐?
그게 뭐가 되더라. 엄빠는 아들을 낳지 못했다는 이유로 온갖 의무와 충성을 다 해도 늘 푸대접을 받았다. 엄마는 버튼만 누르면 시집살이 테마를 어쩜 그렇게 파노라마처럼 풀어내는지 듣기만 해도 짠했다.
엄빠는 자잘하게 쨉을 많이 맞았다. 원래 사소한 괴롭힘은 가랑비에 옷 젖듯 그렇게 사람을 꼼짝 못 하게 만든다. 결국 마지막 묵직한 스트레이트 펀치로 KO를 당하고서야 퍼특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너무 마음이 아프지만 누가 알까 창피하기도 한 얘기이다.
때는 바야흐로, 아빠가 30년도 넘게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퇴직금으로 노후를 준비하던 때이다.
아빠는 고향에 아버지가 살고 계시고 장남 된 자로서 아버지를 노후에 모셔야 한다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묵직한 퇴직금으로 아버지가 살고 계신 시골집을 헐고 그럴듯한 전원주택을 지어드리기로 결정했다.
월매나.... 아버지한테 잘했다고 고맙다고 칭찬받고 싶었을까... 를 생각하니 코 끝이 찡해진다.
스트레이트 펀치는 재산 상속이었다.
나의 작은 아버지, 아빠의 동생에게는 아들이 둘 있다. 선산 김 씨 집안의 장손인 것이다. 아무리 우리 집에 딸이 셋 있어도 쓸데없는 것들이었다. 장손 있는 집에 야금야금 논 팔고, 밭 팔아서 아빠 모르게 돈이 흘러들어 갔던 건 모른 척한다 치자. 아빠 모르게 젤 값비싼 땅이 동생명의로 증여되어 있었다.
결국 누군가의 시간과 돈이 향하는 곳이 그 사람의 가치순위라 했다.
가엽고 또 가여운 우리 아빠....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칭찬받고 싶은 어린아이의 마음이 그 순간 와르르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명절마다 보도 못하던 귀한 먹거리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가고 돈 봉투를 내밀고도 잔잔한 칭찬 한마디 못 들었다.
명절 장 볼 때마다 그만 사라는 엄마와 꼭 얼굴을 붉히며 집에 돌아오곤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재산 때문에 아버지와 절연한 천하의 호래자식이라고 할 수 있다.
나도 그런 시선이 의식되었다.
아빠가 궁궐처럼 지어드린 으리으리 전원주택에 살게 된 할아버지는 다 하나님의 은혜라 큰 아들이 이렇게 좋은 집도 지어주었다며 교회에 큰 헌금을 했다고 한다.
미친....
그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인정받고 싶은 큰 아들의 가슴 아픈 몸부림이란 말이다.
아빠는 은퇴하고 벼농사도 짓고 텃밭에 채소도 가꾸어 먹는 전원생활을 계획하고 있었지만
자신을 저버린 아버지를 도저히 마주할 수 없었고
피붙이도 아닌 며느리가 그걸 종용할 이유는 더욱더 없었다.
형 몫을 차지한 아우는 형 볼 면목은 없지만 그렇다고 아버지 재산을 형에게 토해낼 이유도 없었다.
받은 돈으로 아파트 늘려서 아버지 모셔가겠다 하더니 결국 본인 아들 결혼시켜 아파트 해주고 입 싹 닫았다.
갈 곳 없는 할아버지는 내 아빠가 지어드린 집에서 살면서 아빠에게 언제나 당당했다.
왜 너네 집 애들은 전화도 안 하냐, 아주 버르장머리가 없다. 그렇게 가르치면 안 된다고 호통을 쳤다.
하루는 퇴근길에 할아버지에게 전화가 와서 받으니 다짜고짜 첫마디가 호통이다.
"너는 선생이 그러면 안 된다. 사람이 사람다워야지 선생 노릇도 하는 거지!"
Ha...... 진짜 이러기야?
틈틈이 근처 가면 뭐라도 사들고 들러 안부도 묻고 돈 봉투도 한 번씩 쥐어드렸던 유일한 손녀인 나는 그 순간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
아.... 이런 식으로 죄책감 느끼게 하는 공격 스킬을 우리 아빠에게 일평생 쓰신 건가?
할아버지는 나르시시스트가 맞다.
우리 아빠를 그렇게 상처 줘놓고 미안해하지도 않으면서 나한테 뭐 맡겨 놓은 듯 이건 무슨 행패지?
"할아버지! 왜 저한테 화내세요? 저한테 화내실 거면 앞으로 전화하지 마세요!"
하고 끊어버렸다.
꽤 시간이 흐른 뒤 이 이야기를 하니, 엄마는 분해하면서 내 딸한테 소리를 질러? 하며 가뿐 숨을 몰아쉬었다.
할아버지의 시야와 선택은 할아버지의 오늘을 만들었다.
누구에게나 친절해야 한다는 병에 걸린 나에게 조차 할아버지는 아웃되었다.
그래서 멋들어지게 지어놓은 엄빠의 피땀눈물의 전원주택은 빛 좋은 개살구가 되었다.
엄마는 온 재산 다 쏟아부어 지어 놓은 그림 같은 집에 가보지도 못하고 자랑도 못하는 딱한 처지가 되었다. 호부호형하지 못하는 길동이처럼 딱한 처지가 되어있다.
아빠는 말도 안 되는 시집살이에서 아내를 지켜주지 못한 머저리가 되어 있었다.
부모한테는 심정적으로 버림받았다. 할머니는 돌아가셨지만 살아계셨다한들 다른 결말을 기대할 순 없었을 것이다. 아빠가 남몰래 화장실에서 눈물짓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가슴이 찢어진다.
할아버지는 우리 아빠를 왜 귀하디 귀하게 사랑 충분히 주며 아껴주지 않았단 말인가.
어린 시절부터 늘 윽박지르고 면박을 줬다는 말을 들었다.
6.25 전쟁통에 살아남아 가족을 건사하려면 억척스럽다 못해 정신줄 놓고 살아야 했을 것 같다. 그분들도 자신의 삶에 충실했겠지. 안쓰러운 연민이 밀려오지만 그런 부모 밑에서 자란 아빠는 딸 셋을 의무감으로 키우며 자기 아버지 모습 그대로 우리를 키웠으리라 짐작된다.
내가 심정적으로 아빠를 용서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인간에 대한 연민으로 김 00 씨를 이해하겠다는 나의 다짐이었다.
같은 공간에 있기 불편하고 아빠만 생각해도 불안해서 가슴이 마구 뛰었다.
퇴근과 동시에 아빠의 호통은 시작된다.
신발장? 신발이 흐트러져있으면 거기서부터 호통이 시작된다.
신발장이 통과되었다면, 그다음 부엌? 설거지가 쌓여있다면 거기서부터 호통이 시작된다.
부엌이 통과되었다면, 거실? 거실이 너저분하다면 거기서부터 호통이 시작된다.
신발장, 부엌, 거실이 통과되었다면 딸 셋은 안도의 한숨을 몰아쉰다.
그날,
나는 해가 저물도록 친구들과 신나게 고무줄놀이를 하고 거나한 기분으로 메로나를 쪽쪽 빨며 집에 들어왔다. 그런데 온 집 안이 익숙한 공포에 휩싸여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얼른 서랍에 메로나를 숨겨두었다.
여지없이 루틴대로 신발장, 부엌, 거실 타박이 끝나는가 싶었는데 우리 방 서랍검사를 한단다.
안되는데... 서랍속에는 내가 숨겨둔 사각지고 단내가 풍기는 메로나가 속절없이 녹고있었다.
서랍에 있어야 할 물건이 아닌 것이 있는 것을 본 아빠의 불호령은 온 집안에 쩌렁쩌렁 울렸다.
나는 여지없이 정리정돈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되는 일장연설을 고개를 땅 속에 들어가도록 처박고 들었다. 그리고나서 서랍 속 녹아내린 메로나를 치우는데 단내 나는 초록 국물이 막대와 속절없이 분리되어 있는 걸 보니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다. 내 눈물은 아마 초록색이었을 것이다.
잔뜩 찌푸려진 미간, 허리춤에 올린 양손, 단전에서 끌어올려 내뿜는 고함은 지금 생각하니 너무 폭력적이다. 결국 우리는 언제일지 모르지만 한 번은 꼭 호통을 듣고 주늑이 들어야 하루가 끝난다는 것을 조건반사적으로 체득하게 되었다.
그렇게 주늑으로 여울진 어린 시절의 나에게 손을 내밀어 주고 싶다.
괜찮아.... 네 아빠도 어쩔 수 없었을 거야....
이제 메로나랑 화해해.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