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시퇴근을 기다린다
봄이는 쑥스럼이 많다. 어린이집 친구들이 인사를 하며 먼저 다가와도 보일 듯 말듯한 손짓으로만 '안녕'이라고 인사를 한다. 친구들과 재밌게 놀고 싶어 하지만 본인의 속마음을 쉽게 표현하지 못한다.
물론 봄이와 쏙 닮은 겨울이도 마찬가지다. 단지 내 엄마들과 친해지고 싶지만 부끄부끄한(?) 마음에 우물쭈물거리며 누군가 먼저 다가와 주길 기다린다. 그렇기에 두 모녀는 어린이집을 마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놀이터로 가지만 수많은 아이와 엄마들 사이에서 몇 달이고 둘이서만 놀뿐이다.
그래서 이 상황을 가만히 볼 수 없는 ESFJ는 정시 퇴근하는 날에 맞춰 서둘러 지하철을 타고 봄이와 겨울이를 만나러 놀이터로 향한다. 그리고 둘이서만 놀고 있는 모녀를 갈라(?) 놓는다. 이때부터 봄이는 나와 놀고 겨울이는 혼자(?) 놀게 한다.
다음에는 봄이와 나는 아주 재밌게 열심히 논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술래잡기', '신발 던지기' 등 아이들이 재밌어할 만한 놀이를 둘이서 끊임없이 한다. 그러다 보면 봄이의 어린이집 친구들이 요술처럼 하나둘씩 와서 붙기 시작한다. 봄이와 같은 반 친구들 뿐만 아니라 어린 동생들에게까지 하나하나 이름을 물어보고 이름을 얘기하며 놀아준다. 아이들은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쫓아오는 험상궂은 아저씨를 보며 자기들끼리 깔깔거린다. 쑥스럼 많은 봄이도 어느새 우스꽝스러운 아빠를 친구들과 놀려대며 친구들과 공감대를 쌓아간다.
옆에서 지켜보던 엄마들도 우리가 노는 모습에 웃다가, 서로 멋쩍은 미소로 눈인사를 한다. 성공이다.
처음엔 둘이서 시작했지만 끝날 때쯤엔 십여 명이 넘는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엄마들은 엄마들대로 어느 정도 낯을 익힌다. 8시가 가까이되도 해가 넘어가지 않지만 이제는 헤어져야 할 시간이다. 아이들은 내일 이 시간에 또 보자고 약속을 하고, 엄마들도 대면대면 인사를 하며 돌아간다.
내성적인 두 모녀는 엘리베이터에서 조잘조잘거리며 아주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며 집으로 올라간다. 둘 다 내일이 무척이나 기대가 되는가 보다.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만은 아주 푸근한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