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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냥해지고싶다 Apr 14. 2024

30대 외벌이 가장의 일상이야기

편식쟁이에게는 거울치료를...!

 난 라면을 좋아한다. 얼마나 좋아하냐면 10대, 20대에는 삼시세끼 중 한 끼는 반드시 라면을 먹을 정도로 라면은 나의 최애 식량이었다. 술을 마신 다음 날에는 콩나물과 청양고추 다대기가 들어간 새빨간 국물라면을, 후덥지근한 여름이 오면 새콤달콤한 시원한 비빔면을, 밤이 늦어져 뭔가 출출하면 파김치에 계란을 곁들인 짜장라면을 즐기곤 했다.


 엄마는 밀가루가 건강에 안 좋다며 한국 사람은 쌀을 먹어야 한다고 했지만, 나는 국물에 밥을 말아먹는 것으로 대신 답을 했다. 라면 국물에 찬밥 그리고 그 위에 깍두기 하나 올리면 세상 부러울 게 없는 진수성찬이었다.


 나는 라면을 왜 이렇게 좋아할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는데 사실 라면을 싫어하는 사람을 찾는 게 더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간편하다. 끓이는 데 3분, 먹는데 5분. 10분이면 준비해서 먹는 것까지 해결이 된다.


 그렇다고 해서 맛이 없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라면수프는 맛잘알 석박사님들이 만들어낸 궁극의 맛의 집합체이고 꼬들꼬들한 면조차도 기름에 튀겼으니... 맛이 없다면 그것이 더 이상할 것이다.


 이처럼 좋아하고 찬양하던 라면이지만, 요즘은 애호가 답지 않게 라면 먹는 횟수를 많이 줄이고 있다. 너무 과한 나트륨 탓에 건강이 안좋아진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내 입맛을 따라가는 7살 꼬맹이 때문이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라고 누군가의 말이 이렇게까지 공감이 갔던 적이 없다. 내 사랑스러운 7살 강아지는 어쩜 이렇게 아빠의 안 좋은 점을 빨리 받아들이는지... 아빠처럼 수시로 짜장라면, 짜장라면 외치고 있다.


 원래 편식이 심한 아이가 거기에 라면같이 자극적인 음식에 길들여지기 시작하니, 슴슴한 음식이나 건강한 음식들은 쳐다도 보지 않는다. 결국에는 어린이집에서는 반찬에는 손도 대지 않고 밥만 먹고 오는 탓에, 아내와 나는 어린이집 선생님에게 아주 강한 당부의 말씀을 듣게 되었다. 물론 나는 아내에게 추가 잔소리를 듣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강한 자극은 더 강한 자극을 필요로 한다. 맛없는 음식을 먹을 필요는 없지만, 자극적인 음식에 길들여진 꼬마 편식가에게 다양한 맛을 제공하는 어린이집 음식은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내 식습관이 다양한 맛을 경험해야할 7살 봄이에게 편식이라는 불편한 선물이 되었다는 생각이 드니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그 이후로 집에서는 라면을 최대한 줄이고 있다. 마트에 가면 제일 먼저 집어오던 라면이나 소세지 같은 간편 식품 대신 돼지고기, 소고기 및 신선 야채 같은 생물들을 사 와 다양한 방식으로 조리해주고 있다. 덕분에 늦은 나이에 늙은 편식쟁이의 식습관도 바뀌어져서 어느새 7킬로그램이나 감량하게 되었고.


 '니 같은 자식 키워봐라.' 엄마가 수 없이 하신 얘기 었다. 수십 년 간 고쳐지지 않던 라면 애호가로서의 내 정체성은 자식이라는 거울 치료 한방에 사라졌다. 거울치료를 당하고 나니 분명 몸은 건강해진 기분은 들지만... 그래도 한 번씩 라면이 그리운 건 아직까지 내 혀는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겠지? 혀야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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