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이상 함께 한 통신사를 버렸다. 그동안 한결같이 의리를 지켰다. 귀찮아서 안 바꾸고 그대로 썼으니 본의 아니게 의리를 지킨 거다. 삐삐를 쓸 때 통신사를 골랐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삐삐만으로도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전화번호를 삐삐로 받다가 숫자의 조합으로 문자를 보내곤 했다. 삐삐도 처음에는 가격이 비쌌었다. 핸드폰은 부의 상징이었고 벽돌처럼 커다란 핸드폰이 자랑이었던 시절이었다. 핸드폰의 가격은 너무 비싸고 그걸 대체할 수 있었던 폰이 PCS폰이었다. 나도 그 폰으로 손전화의 시대를 열었었다. PCS폰이 자연스럽게 핸드폰이 되었다. LG 폰도 써보고 삼성 폰도 썼고 모토로라 폰을 마지막으로 사용했다. 그때는 통신사를 바꾸면 20만 원 이상의 돈도 주고 전화기와 티브도 공짜로 주던 때가 있었다. 공짜와 거리가 먼 인생이라 그런 기회를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다.
다들 스마트폰으로 갈아타던 시절, 나는 2G 폰으로 사장도 아닌데 전화요금만 십만 원을 넘게 내곤 했다. 돈도 준다는데 왜 비싸게 통신요금을 내냐고 주변의 타박을 듣다가 스마트폰으로 바꿨다. 처음 썼던 PCS폰만 LG 유플러스 통신사를 이용했었다. 그 이후에 PCS라는 소리가 쏙 들어가고 핸드폰이라고 할 때부터 SK텔레콤을 한 번의 이탈도 없이 꾸준히 이용했다.
문자도 사건이 터지고 십여 일이 지난 뒤에야 왔었다. 유심이 어쩌고 하는 문자를 대충 읽었다. 지인과 길을 지나는데 어느 가게 앞에 줄이 너무 길었다. 토요일 오전부터 저렇게 길게 줄을 서서 먹는 맛집이 있냐고 지인과 함께 엉뚱한 얘기를 주고받았다. 맛집타령을 하면서 지나쳤는데 아마도 음식점들 사이에 SK대리점이 있었던 거 같다. 그렇게 무식하게 유심 유출 사건을 대했다. 분주하게 돌아다니느라 신문 볼 새도 없이 지낸 거다. 뒤늦게 유심유출에 대한 기사를 읽고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됐다. 나만큼이나 귀찮은 거 싫어하는 아들한테도 유심보호서비스랑 명의도용방지하는 거에 가입하라고 문자를 보냈다.
롯데카드 사건으로 내 정보가 털린 적이 있었다. 그 당시 롯데카드 회원정보가 유출됐다고 시끄러웠다. 뭐 별 거 있겠어, 괜찮겠지라는 느긋한 마음으로 지나갔다. 뭘 바꿔준다 어쩐다 했는데 나는 아무것도 안 했다. 그리고 중국에서 폭풍 전화를 받았다. 느닷없이 카카오스토리에 죽고 싶다는 문자를 올린다던지, 갑자기 전화가 켜졌다 꺼졌다 한다던지 별일이 다 생겼다. 삼성전자 서비스센터에도 몇 번이나 가봤지만 기계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다. 전화기가 혼자 저절로 켜지면서 화면이 바뀐 적도 있었다. 누워서 그걸 들여다보다 혼비백산했다.
카카오스토리는 주변 지인이 내가 그럴 사람이 아닌데 죽고 싶다고 써놔서 무슨 일이냐고 전화를 해서 알았다. 나는 카카오스토리는 아예 하지도 않았다. 카카오 고객센터에도 두 번이나 갔었다. 카카오 고객센터 찾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도대체 카카오 고객센터가 어디에 있는지 안 보여서 카카오 약관을 몽땅 뒤져서 간신히 찾았던 거 같다. 카카오 하단에 깨알같이 쓴 주소는 제주도라 절망했었는데 궁하면 찾아지는 거 같다. 판교에 있는 카카오 고객센터를 찾아가서 내 카카오에 나도 쓰지 않는 글이 올라온다고 카카오 문제가 아니냐고 했더니 아니란다. 내 전화가 아무래도 스미싱 당한 거 같다고 했다. 카카오가 이상한 것도 귀찮았지만 그것보다 월요일과 금요일이면 중국에서 웬 전화가 그렇게 많이 오는지 섬뜩했다. 결국 핸드폰을 바꾸고 번호도 바꿨다.
유영상대표의 한심한 발언에 더 이상 쓰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다. 한 기업의 대표는 오로지 기업의 적자만이 관심사였다. 그 기업을 이용해 준 소비자들에게 그저 절 한 번 꾸벅한 것으로 미안한 마음을 끝내버렸다. 국회 청문회에서도 도대체 위약금은 어떻게 할 거냐는 말에 우물쭈물 거리며 종합적으로 검토해 보겠다는 말만 되풀이해서 대표이사가 결정권이 없냐고 최태원 이사를 소환하는 걸 보고 정말 형편없는 기업이라는 생각을 했다. 최태원 대표는 임플란트 치료하느라 힘들어서 못 나온단다. 약정할인에 대한 위약금이 어떻게 결정되는지를 보고 통신사를 바꾸려고 했다. 종합적 검토를 하겠다는 다음날 유영상대표는 단호하게 만약 위약금을 안 받으면 통신사를 갈아타는 사람들이 많아질 거라 3년간 7조의 손해를 볼 것이라며 위약금 면제는 안 된다고 발표했다. 종합적으로 계산을 철저히 했나 보다.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재판에서 악의 평범성에 대해 얘기했다. 아이히만은 재판에서 그 누구보다 성실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국가에 충성하기 위해 히틀러의 충신으로 열심히 살아가고자 수많은 유대인을 학살한 사람이었다. 성실의 가면을 쓰고 학살이 악을 자행하는 일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한 거다. 자신의 행동이 선인지 악인지 그걸 분별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유영상 대표를 보면서 나는 아이히만을 떠올렸다. 정말 자기 기업만 생각하는구나. 기업에 충성을 다 하기 위해, 기업의 손해를 최소한으로 하려고 열심히 노력하는구나. 그 기업을 만들어 준 고객은 안중에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이 사달이 나지 않았을까? 기업의 이익 창출에만 관심을 쏟아부어서 보안점검에 들이는 비용은 아마도 뒷전이지 않았을까? 미안한 마음이라고는 그 얼굴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큰일 났다 이 사태를 어떻게 최소한의 비용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을지만 고민하는 사람 같았다. 내가 여태 이용한 통신사는 고객에게 책임지지 않는 기업가가 대표인 회사였다.
예전에 KT통신도 고객의 정보가 해킹된 적이 있었다. 그때도 위약금은 면제되지 않았다. 그놈들이 그놈들인 거다. 고객에게 책임지겠다고 오만 달콤한 소리로 유혹을 하지만 결국 그들은 책임지지 않는다. 25년 넘게 SK텔레콤을 이용하면서 수많은 혜택을 받았지만 이용해 본 적이 별로 없다. 그냥 쓴 거다. 늘 쓰던 대로 늘 하던 대로 쓴 거다. 기업을 믿고 의리를 지키는 어리석은 일은 이제 그만두어야겠다.
아들이 중국에서 전화가 몇 번 온 이후로 겁이 났나 보다. 전화가 왔다. 빨리 유심을 교체해야 한다고 말이다. SK대리점에 유심교체를 신청했지만 유심확보가 늦어지고 있다는 문자 한 통 달랑 날리고는 꿩 궈 먹은 소식이다. 유심은커녕 이심으로 교체하는 게 어떠냐고 권유를 한다. 아들은 친구네 모두 통신사를 변경했다고 우리도 그러자고 했다. 아들이 처음에는 별반 관심 없이 귀찮아하더니 중국에서 걸려온 전화 몇 번에 움직였다. 나도 중국인들 전화를 받은 이후에 정보 유출에 민감해졌다. 그래서 알리도 테무도 절대 하지 않는다. 이제는 웬만하면 회원가입도 잘하지 않고 잘 안 쓰는 웹은 탈퇴한다. 나는 약정할인에 가입한 지 얼마 안 돼서 오천 원 정도의 위약금이지만 아들은 5만 6천 원이 넘는 위약금을 물어야 했다. 우리의 위약금은 다음 달에 득달같이 계산돼 날아들겠지. 아들도 처음 핸드폰을 가진 이후 한 번도 바꾸지 않았던 SK텔레콤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