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이기주의

by 송나영

며칠 전 밤에 늦게 들어와서 차를 아파트 입구에 있는 상가 주차장에 세워뒀었다. 아침에 일찍 나갈 일이 있어서 부리나케 주차장으로 뛰어갔다. 그 주차장에는 바로 옆에 있는 아파트로 올라가는 길이 있다. 아침마다 여기서 전쟁이 일어난다. 자기 아파트를 통과해서 아이들이 등교하는 꼴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15년쯤 전에 그 아파트를 짓다가 건설사가 망해서 그대로 방치됐었다. 그리고 한 일 년 비도 맞고 눈도 맞고 수풀이 울창하게 자라 방치되다가 새로운 시공사가 그 건물을 완성시켰다. 겉으로 번듯해 보이고 조경에 신경도 꽤 썼다. 그 아파트는 조합원을 모아서 십 년, 그리고 짓다가 망해서 몇 년 사연도 많았다. 아파트를 올리자마자 1억씩 급등했었다. 그러다 건설사가 부도가 나서 아파트는 도로 주저앉았었다. 그걸 조경이 우수한 아파트로 선전하여 순식간에 입주를 시켰다. 일 년이 넘도록 음산하고 우중충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환골탈태를 했고 주변보다 새 아파트라서 웃돈이 붙어서 팔렸다.

그 아파트와 내가 사는 아파트는 상가를 가운데 두고 나란히 붙어 있다. 우리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은 새로 생긴 아파트를 통해 중학교에 등교하기 시작했다. 멀리 돌아가는 것보다 아파트를 통해서 가면 훨씬 가까웠다. 아들이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그 아파트를 통과해 다니기 시작했다. 아이들 등, 하교 소리가 시끄럽다고 민원이 빗발쳤다. 아이가 다니는 중학교에서는 가정통신문을 보내서 그 아파트를 통과해서 등, 하교하지 말라고 했다. 시끄럽단다. 세상이 치사해진다.

새로 생긴 아파트는 입구에 차단기를 설치했고 주민이 아니면 아파트에 들어가기 위해 허락을 받아야 했다. 새 아파트가 교통차단기를 설치하자 주변 아파트들이 하나 둘 설치하기 시작했다. 어디 가냐? 뭐 하러 가냐? 얼마나 있을 거냐? 별 걸 다 물어봤다. 알아서 뭐 할 건데, 아파트 관리소에서 할 일이 참 많겠다. 주차할 땅이 널널한 수도권에서 주민 아니면 절대 들여보내지 말라는 주민들의 원성이 높았나 보다. 20년이 넘은 우리 아파트도 결국 차단기를 설치했다. 입주자들의 의견을 물어서 나는 반대했는데 젊은 사람들의 찬성이 많았다는 놀라운 결과를 들었다. 나도 불편하고 남도 불편한 삶을 원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아파트 입구에 차단기는 설치됐고 제일 앞 동에 살았던 나는 우리 동의 경비초소에서 차량을 통과시켜 준다는 것을 알았다. 여름 장맛비가 장대같이 쏟아지던 늦은 밤에 나는 집으로 들어올 수가 없었다. 앞의 차가 차단기를 통과하지 못하는 거였다. 갑자기 앞에 있는 차가 후진을 했다. 내 뒤에 차가 붙어서 나는 뒤로도 갈 수가 없었다. 12시가 다 된 야심한 밤에 경적을 울렸다. 차에서 내려서 앞 차로 다가갔다. 비를 쫄딱 맞으며 왜 후진하냐고 했더니 앞차의 영감님께서 아무리 벨을 눌러도 통화가 안 된단다. 바로 옆에 있는 경비소로 뛰었다. 연세가 드신 경비아저씨는 늦은 밤 피곤을 못 이겨 졸고 계셨다. 아저씨한테 문 열어 달라고 소리를 쳤다. 잠에서 깬 아저씨는 화들짝 놀랐다. 이게 경비아저씨 잘못이겠는가? 입주자들이 시켜서 그분들 일이 된 거다. 그분들도 반갑지 않을 거다. 없던 차단기가 생기고 내가 모르는 잡음이 많이 있었을 거다.

상가주차장에서는 옆 아파트의 경비아저씨와 아이들의 실랑이가 있었다. 아이들은 늦었다고 아파트를 통과하게 해달라고 했고 아저씨는 안 된다고 단호하게 얘기하는 중이었다. 아파트를 지나서 애들이 학교 가는 게 싫다는 주민들을 위해 그 아파트의 경비아저씨가 계단 아래까지 내려와서 지키고 있었다. 상황을 보니 기가 막혔다. 내 얼굴이 몹시 찌푸려졌었나 보다. 경비아저씨는 내 얼굴을 보면서 아줌마! 뭐 불만 있어요? 내가 이 아저씨와 싸울 일이 아닌 거다. 그분은 자기 일을 열심히 할 뿐인데 뭐라고 얘기하겠는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를 탔고 아저씨도 속이 편치는 않았는지 이번 한 번만 봐준다면서 아이들에게 길을 허락해 주었다. 십 년 동안 인심은 더 각박해졌다. 아침마다 파수꾼까지 세우게 된 거다.

아파트 값이 떨어질까 봐 어느 가격아래로 팔지 말라고 부동산에 으름장을 놓는다. 한 동네에 살면서 아파트 입주민들은 아파트 매매가격을 담합하고 이웃과 함께 사는 것이 불편하다고 집단행동들을 한다.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한 동네에 어울렁더울렁 어우러져 살았던 어린 시절 골목길이 그립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볼 빨간 갱년기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