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화장실 청소를 몇 달 만에 했다. 대충대충 쓱쓱 닦고 후다닥 해치웠다. 나는 살림하는데 젬병이다. 열심히 쓸고 닦지 않는다. 그릇도 며칠을 모아 뒀다가 한꺼번에 닦기도 한다. 설거지가 싫어서 식기세척기를 사고는 행복해했다. 실컷 박박 밀어도 냄비나 프라이팬 바닥에 얼룩이 남기가 일쑤였다. 음식을 하는 것도 삼십 분이 넘어가면 괜히 부아가 치민다. 후딱 빨리 해 먹을 수 있는 것 말고는 잘하지 않는다. 정성을 기울여 재료를 손질하는 건 못한다. 콩나물 뿌리도 따본 적이 없다. 물에 대충 씻어서 그냥 볶아먹고 만다.
대충 사니까 나는 좌도 우도 아니다.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극단적이 되기 쉬운 거 같다. 종교도 대충 믿고 산다. 예전에 어느 신부님이 그러셨다. 참 이상하게 열심히 믿는 신자들 중에 남한테 잔인하게 구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열심히 믿긴 믿는데 종교의 본질보다 의무와 규정을 열심히 믿는다. 그러다 보니 자기처럼 열심히 종교의 의무를 다 하지 않는 사람들한테 모질게 군다. 내가 처음에 성당에 나간다니까 엄마가 설렁설렁 믿지 말고 열심히 다니라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꼭 다니기 싫어졌다. 뭐든지 열심히 하는 사람들 중에서 남들한테 비난과 비판을 쉽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가 한 만큼 남도 해야 된다고 믿는 거다. 자기가 아는 것이 옳다고 믿는 사람들은 자기처럼 하지 않는 사람들을 아주 못마땅하게 여겨서 가르치려 든다. 남들은 다 틀렸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에 여유가 없다. 그럴 수 있다는 마음이 없다.
김영하 작가는 '알쓸신잡'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자기는 최선을 다하지 않으며 70%의 노력만 한다고 했다. 그 말이 참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밥벌이에 온 신경을 곤두세웠을 때라 그 말이 귀에 쏙 들어왔다. 늘 여지를 남겨두니 다른 일을 할 마음도 생기고 지치지 않는 게 아닐까. 최선을 다 하면 지친다. 다른 게 들어올 틈이 없다. 다른 걸 돌아볼 틈도 없이 각박해져서 주변 사람들에게 성질을 부린다. 얼마 전에 합병증 예방을 위한 정기검진을 받고 검사결과를 들으러 다시 병원을 방문했다. 내가 마지막으로 진료를 받았다. 의사는 지쳐있었다. 한숨과 함께 나보고 삼 년 동안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며 짜증을 부렸다. 도대체 달라진 게 없다는 거였다. 더 나빠지지 않은 것만도 어디야? 당뇨의 위험수치가 좀 더 올라가긴 했지만 나머지는 그대로란다. 또 운동타령을 했다. 의사는 전에 없이 독한 말을 한다. 운동 얘기에 미적거리는 나에게 기다렸다는 듯이 눈에 힘을 주고 빨리 죽는다는 얘기를 한다. 내가 운동을 찔끔하긴 하는데 의사는 믿지도 않을 것이다. 먹는 데 투자하지 말고 운동에 투자하라고 검사하는 날에도 강조를 했었다. 먹는 데도 투자하지 않고 운동도 적당히 내 관절이 아프지 않을 만큼 찔끔한다. 내 인생의 40년 이상을 뼈 때문에 고생을 했다. 다리를 절 수도 있다고 했었다. 허리디스크는 오랜 지병이었고 목디스크로 이동하여 골고루 뼈가 아프다. 그걸 구구절절 핑계대기 싫어서 입 다물고 있었다. 의사는 하루 종일 최선을 다해 진료를 했을 거다. 그날 일찍 퇴근해야 한다고 했는데 마지막까지 자신의 책임을 다 하려다가 그만 말 안 듣는 환자를 만났으니 화도 치밀었을 거다.
최선을 다 하는 삶을 나도 살아본 적이 있다. 최선을 다 해보니까 마음이 각박해졌다. 내 속알머리가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줄도 모르겠다. 남들은 모두 퇴근한 시간에 나 혼자 밤을 새우고 자료를 찾고 고군분투했었다. 그 시간들이 나쁘진 않다. 내가 무슨 일을 하든 그것보다 뭐든지 낫다는 생각이 드니까. 최선을 다 했던 시간만큼 내가 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했다. 그렇지만 행복하지는 않았다. 마음이 늘 피곤했다. 나를 들들 볶아서 마음은 병들고 지쳤다. 식구들에게도 짜증을 부리고 성질을 냈다. 아들이 어느 날 제 친구한테 전화하면서 내가 소리를 높이는 걸 저렇다니까라며 전하는 것을 들었다. 열심히 나를 닦달해서 얻은 건 피로와 잃은 건강이다. 마음은 K.O패 당해서 바닥에 팽개쳐졌다.
대충 이 만큼 했으면 됐다고 나를 다독이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됐지 뭘 더해라는 마음으로 적당한 선에서 나와 타협을 보았다. 내 마음에 단비를 뿌리자 미움으로, 악으로 썩은 부분들에 살이 올랐다. 요즘 화가 잘 나지 않는다. 예전에는 쉽게 양은냄비처럼 끓어올랐던 마음이었는데 말이다. 안 되는 건 굳이 애쓰고 하지 않는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내가 못 하는 걸 굳이 이겨보겠다고 용을 써서 힘을 주지 않는다. 내가 잘하고 하고 싶은 거를 쉬엄쉬엄 한다. 천천히 해도, 느리게 해도 예전처럼 온 마음을 다 해서 한 것보다 뒤처지지 않는다. 하루에 책 한 권은 꼭 읽겠다는 나만의 습관을 만들겠다고 나를 들볶았지만 그때 읽었던 책들 중에 기억에 남은 건 별로 없다. 오히려 어쩌다 읽은 책이 기억에 남는다. 나중에 읽겠다고 잔뜩 욕심을 부려 사 모은 책은 고물상에 팔아버렸다. 살 때 마음과 달리 책은 혼자 세월을 먹어서 습기를 먹고 곰팡이가 펴 망가졌던 거다. 욕심이라는 곰팡이를 버리고 내 마음이 시달리지 않을 만큼 살아간다. 대충 살면 훨씬 편하다. 주변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