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걸 베꼈어

by 송나영

눈물이 줄줄 흘렀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국민학교 1학년 내 미술수업은 억울함으로 가득 찬 시간이었다. 커다란 나무와 여자아이를 큼지막하게 그렸다. 신나게 그리다 짝꿍을 보니 대놓고 내 그림을 베끼고 있었다. 갑자기 눈물이 흘렀다. 짝꿍에게 베끼지 말라는 말도 못 하고 수업이 끝나도록 나는 눈물을 흘렸다. 억울했다. 내가 열심히 생각해서 그린 것을 친구가 아무 말도 없이 그대로 베낀 것이 화가 나서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거의 오십여 년 전의 일인데도 그날의 감정은 아직도 생생하다. 나의 그림도.

예전에만 해도 남의 것을 베끼는 일은 잘 들키지 않았다. 남의 노래를 그대로 베껴서 노래를 했어도 우리는 몰랐고 남의 나라 드라마를 베꼈어도 우리는 몰랐다. 전문적으로 그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무얼 갖다 베꼈는지 알 수도 없었다. 어쩌다 가끔 베꼈다는 사실이 들통이 나면 시끄러워지곤 했었다. 중국이 우리나라 방송을 그대로 베낀다고 난리를 치는 기사가 나곤 했었다. 우리는 전혀 그런 일을 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SBS방송국이 새로 생기고 나는 방송국에 PD와 함께 방송 프로그램 기획안을 제안하려고 몇 번 방송국에 간 적이 있었다. TV가 벽에 열 대 이상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수많은 TV와 거기 나오는 프로그램은 대부분 일본 방송 프로그램들이었다는 게 충격이었다. 당시만 해도 일본방송을 보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었다. 무엇이냐는 내 질문에 누군가 일본 프로그램 중에서 재미있는 것을 찾는 거라고 했다. 방송을 베끼는 거였다. 한창 일본의 트렌디한 드라마가 국내에서 히트를 치기도 했었다.

'복면가왕'이라는 프로그램은 태국, 미국에서 우리 방송국과 계약을 하고 만들어진 우리가 원조인 프로그램이다. 우리의 문화 콘텐츠는 날개를 달고 세계에 팔려나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 건 얼마 안 됐다. 싸이월드가 생기고, 블로그를 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좋은 글귀나 사진을 보면 아무렇지도 않게 퍼 나르고 했다. 마치 자신의 것인 양 남이 애써 만든 것들을 자랑하곤 했었다. 남의 것을 베끼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았던 시절이었다. 그 당시는 거리에서 방송국 카메라도 초상권을 허락받지 않고 찍었다. 합격을 확인하려고 동생과 아버지와 함께 합격자 이름을 확인하는 순간이 나도 모르게 찍히고 있었다. 내 이름을 발견한 순간 돌아서는데 동생이 "카메라다!"하고 외쳤다. 나도 모르게 나는 찍히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날 저녁에 나는 방송에 나왔다. 합격의 기쁨이 아니라 백화점에서 옷을 산 모습이 전파를 탔다. 합격했다고 새 옷을 사러 백화점에 갔고 노란색 옷을 들고 이리저리 대보고 있었다. 내가 찍히고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 그날 밤 9시 뉴스에 올해 노란색이 유행이라며 노란색 옷을 들고 거울에 비춰보는 내가 나온 것이었다. 나도 모르는 새에 내가 찍히고 나도 모르는 새에 내 글이 돌아다니는 시절이었다.

글을 쓴 사람과 노래를 만든 사람이 분명히 존재하는데 그들도 모르는 사이에 노래가 유행을 하고 문구가 유명해졌다. 우리는 저작에 대한 권리를 교육받은 적이 없었다. 다만 남의 것이니까 마음에 좀 걸렸을 뿐이다. 나도 자연스럽게 남의 것을 베껴 쓰곤 했다. 어디서 인용을 했는지 누구의 기사인지 그것이 중요하지 않았다. 드라마도, 소설도 그런 분위기에 익숙해서인지 외국의 작품을 도용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 유명한 여류작가가 자신은 절대 베끼지 않았다고 했지만 그녀의 글은 베낀 것이 분명해 보였다. 일본 작가의 글과 그녀의 글을 비교한 기사에서 필사의 흔적이 역력해 보였다. 예전에 방송글을 배우던 곳에서 그녀가 필사로 엄청나게 많은 노력을 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 그녀의 변명을 쉽사리 믿을 수 없었다. 그녀는 창작의 의지를 불태우기 위해 무수한 작품을 필사를 했을 것이다. 창작의 고통보다는 필사의 유혹에 쉽게 빠지지 않았을까?

저작권에 대한 보호가 강화되면서 세상은 달라졌다. 남의 것을 함부로 베끼지 않기 시작한 거다. 블로그도 베끼지 못하게 복사를 할 수 없게 변해갔다. 하지만 시대가 또 달라진다. AI가 등장해서 글을 써주고 노래를 만들어 주고 그림을 그려준다. 글 쓰는데 최적화된 AI라는 Claude라는 앱에서 호기심에 동화를 한 번 써본 적이 있었다. 대충 간단한 단어 몇 개만 입력해서 동화로 써달라는 나의 주문에 AI는 순식간에 장문의 동화를 써 내려갔다. 신데렐라도 들어있고 라푼젤의 이야기도 어디서 들어본 이야기들이 짜깁기돼 동화로 만들어졌다. 창작은 창작인데 뭔가 비슷하고 흡사해서 창작 같지가 않았다. 요즘 AI가 만든 그림이나 글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블로그의 사진들은 AI가 그린 그림으로 바뀌고 있고 아마 AI가 쓴 글도 많이 있을 거다.

내 글이 도용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저작권에 대해 관심이 생겼다. AI로 만든 노래를 배경음악으로 깔고 싶어 알아보니 저작권 보호가 되지 않는단다. 하지만 AI앱을 유료로 전환하면 내가 만든 노래에 대한 저작권을 보호받을 수 있다고 했다. 나도 모르는 새에 베끼던 시절도 있었는데 이제는 내 것에 대한 저작권과 지적 재산권을 보호받을 수 있는 시절이 됐다. 하지만 너무 세세히 저작권을 규제해서 창작을 제한하다 보면 문화의 발전을 해칠 수도 있어서 법은 각박하게 테두리를 정하지 않았다. AI를 이용한 창작도 무한할 텐데 어디까지가 저작권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지 제대로 알 수가 없다. 규제는 더 세분화될 것이다. 창작의 고통은 기쁨을 낳지만 내가 이용한 AI로 내 창작이 창작이 아닌 게 되는 건 아닐까?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는데 창작자가 법률 자문을 듣고 창작을 해야 하는 세상이 오는 건 아닐지 글을 쓰는 기쁨에 앞서 마음이 무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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