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이 왜 저 모양인지 눈살이 찌푸려질 때가 있다. 탐욕과 욕심에 잠식당한 일생이 얼굴에 고스란히 나타난다. 옛말에 아흔아홉 섬 가진 사람이 한 섬 가진 사람의 것을 탐낸다더니 욕심은 채울 수가 없나 보다.
세상을 시끄럽게 만드는 정치인들의 얼굴을 보면서 탄식이 절로 나온다. 욕심이 얼굴에 더덕더덕 붙어서 불어 터진 볼때기 하며 본인의 수준이 안 되는데 억지로 올라온 자리를 이어가려니 참 어려움이 많다. 영부인이라는 여자가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았기에 저리 건들거리고 걷고 말 하나 똑 부러지게 못하고 천박하기 그지없는지 꼴 보기가 싫었다. 그녀의 줄줄이 알사탕처럼 딸려 나오는 비리를 들으며 어색한 그네의 얼굴을 다시 보곤 했다. 보기 싫어서 더 찾아봤는지 영상 알고리즘에 자주 뜬다. 전 대통력과 그들의 한패거리는 어떻게 다들 저런 얼굴인지 하나같이 마음 좋은 아저씨나 아줌마 인상을 찾아볼 수가 없다. 뾰족한 쥐 같거나 남의 약점을 잡고 물어뜯으려는 이리 같은 얼굴이다. 건들거리고 걷는 건 부부가 똑같다.
국회 청문회에 나온 이진숙 방통위원장을 보고 놀랐다. 내가 알던 그 얼굴이 아니다. 왜 저렇게 변했을까? 이라크 전쟁을 누비며 기사를 보내던 그 이진숙의 순수한 열정은 어디 가고 뾰족한 할망구의 얼굴로 변했을까? 이라크 종군기자의 모습도 방송을 통해 만들어진 걸까? 빵값으로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둘러대려니 얼굴은 더 일그러진다. 충격이었다. 저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아서 저리 변하게 된 것인지 말이다. 아무리 종군기자의 모습이 포장이었다 하더라도 그때의 얼굴과 지금의 얼굴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몇 년 전에 문재인 대통령 아들의 비리를 캔다고 악착스럽게 굴던 곽상도라는 사람은 자기 아들이 받은 50억으로 조사를 받았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란다고 본인이 받은 게 있으니 어떻게든 정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털어야겠다고 혈안이 돼서 뉴스에 얼굴을 디밀곤 했다. 정치인들의 얼굴이 점점 꼴 보기가 싫다. 저렇게 해먹고도 모자라서 더 해 먹겠다고 자신들의 안위와 정치적 이익을 위해 안달을 떠는 모습이다. 가진 자의 욕심은 끝도 없나 보다. 보너스로 받았다는 50억은 서민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돈이다. 그 돈을 받고도 뇌물로 볼 수 없다며 아무런 죄를 묻지도 않고 풀려났다. 꼴보기 싫은 얼굴만 요즘 안 나올 뿐이다.
올해 광화문에 전시를 보러 갔다가 광화문 네거리의 건물들을 올려다보다 깜짝 놀랐다. 건물 안이 텅텅 빈 곳이 한 두 곳이 아니었다. 멀리서도 건물 안이 텅텅 비어있는 것이 확연히 보인다. 장사가 안 되니 우리 동네도 빈 가게가 종종 눈에 띈다. 가끔 변두리로 나가다 보면 건물 자체가 공실인 곳도 많이 보인다. 어쩌다 밥 한 끼 먹으려고 식당을 들어갔다가 놀랄 때도 있다. 가게가 텅 비어 있다. 버텨내고 있는 분들이 참 대단하다. 점점 살기가 팍팍해진다.
온갖 비리로 말로 다 할 수 없는 뒷말이 무성한 김건희를 보면서 얼굴이 마음의 그릇이라는 것을 다시 느낀다. 화장으로 가린다고, 성형으로 만든다고 물 같은 인상이 되지는 않는다. 주변을 둘러봐도 참 좋은 분이라는 평가를 받는 분들은 잘 생긴 얼굴이 아니다. 그들은 편안하고 밝은 빛이 나는 얼굴을 지녔다. 욕심 없는 마음과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온 얼굴에 빛으로 환하다.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치고 시커먼 얼굴빛을 본 적이 없다. 피부색이 문제가 아니다. 남을 시기하는 사람들은 남 잘 되는 것이 못마땅해서 꼭 험담을 하고 비틀린 말을 하니 입도 삐쭉거린다. 다른 사람과 늘 비교하느라 눈모양이 세모꼴이 된다. 저 못난 생각은 하지 않고 남들 못하는 것만 입에 거품을 물고 물어뜯으려 달려든다.
가끔씩 만나는 주변 사람 중에 자신은 하지도 못하면서 남 잘하는 것을 혹독하게 평가하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 얼굴을 다시 한번 올려다보게 된다. 진짜 잘하는 사람이나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한테 그런 말을 듣기 힘들다. 그런 사람들은 자리를 편하게 만든다. 만나기만 하면 싸움닭이 되는 사람들도 있다. 혹시라도 손해를 볼까 봐 전전긍긍해서 흥분부터 한다.
남의 얼굴 평가하다가 내 얼굴을 자꾸 살피게 된다. 내 마음을 돌아보게 된다. 나만 잘 살고 보겠다는 이기심에 찌그러진 얼굴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겁이 난다. 자식 키우는 사람이다 보니 더 하다. 남의 자식을 흉볼 수가 없다. 내 자식도 똑같이 하곤 했다. 자식 제대로 못 키웠다는 소리 들을까 겁이 난다. 양미간에 깊은 주름이 내가 얼마나 짜증을 부렸는지 말해주고 삐뚤어진 입이 내가 얼마나 많이 남을 함부로 평가했을까 싶어 겁이 난다. 예전에 거의 매일 애아빠와 전쟁을 벌였다. 하루 종일 찡그린 얼굴을 나는 몰랐다. 잠자리에 들면서 얼굴이 펴지는 걸 느낄 때에서야 온종일 짜증을 부리느라 얼굴에 있는 힘을 주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야 온전히 나를 찾은 삶을 살고 있다. 나답게 사는 삶이 진정 처음인 거 같다. 나답게 살고자 무지 애를 썼는데 실상은 나만 알고 살았던 건 아닌지 부끄럽다. 내 욕심에 식구들을 들들 볶은 것만 같다. 내 마음에 안 든다고 성질 내고 내 성에 안 찬다고 주변을 닦달하며 살았던 것만 같다. 내 주름은 욕심 한가득, 불만 한 가득이 만들어 낸 거다. 뒤틀린 남의 얼굴 욕하지 말고 내 마음자리나 제대로 보듬고 살아야겠다.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탓인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