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 이란의 핵시설을 폭격했다. 중동은 끊임없이 쉼 없이 전쟁이 터지는 거 같다. 50여 년을 살면서 중동의 전쟁을 한 번도 안 들은 적이 없는 거 같다. 이란, 이라크 전쟁,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도대체 뭐가 뭔지도 모르겠다. 복잡하기 짝이 없는 그네들의 땅싸움은 지칠 줄을 모른다. 몇 년 전 나라를 탈출하려고 공항으로 몰려들었던 모습을 아직도 기억한다. 어느 나라인지도 모르겠다.
분단국가에 살면서 북한의 침략을 걱정하기는커녕 세계 전쟁이 쉼 없이 일어나 그게 더 걱정이었다. 북아일랜드도 시끄러웠고 포틀랜드,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코소보 수없이 많은 전쟁이 있었다. 전쟁의 참상을 나는 겪지 않았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감사했다. 내전에 휩싸여 난리를 치르지 않고 무사히 살아가고 있다는 게 감사했다.
서울에 살았던 엄마는 외가의 선산이 있는 부여로 피난을 갔다고 했다. 수레에 짐을 잔뜩 싸 올려 어린아이였던 엄마와 이모, 작은 외삼촌은 짐 위에 앉아 갔단다. 한강다리를 건너기 전에 외할아버지가 이 다리가 안 끊어지나라는 말을 하기 무섭게 다리는 댕강 잘렸다고 들었다. 그 다리를 어떻게 건넜는지 들은 기억이 없다. 피난민들을 따라 부여로 내려갔다는 말만 전해 들었지 피난 가는 동안 어떻게 됐는지 얘기를 듣지 못했다. 신산한 세월이었다.
빨갱이가 무서워요라는 이승복 어린이의 날조된 이야기를 감동스럽게 듣고 자란 나는 한밤중에 사이렌 소리에 익숙했었다. 밤 12시가 넘으면 호루라기를 불고 뛰어다니며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잡던 시절이었다. 국민학교 시절에는 민방위 교육도 철저히 받았다. 매월 15일이면 받았을 텐데 기억은 더 많이 받은 것만 같다. 공습사이렌 소리가 나면 책상 밑에 들어가 잠시 있는 거였다. 어떨 때는 커다란 김장 비닐을 학교에 들고 가서 공습 사이렌 소리에 맞춰 책상 밑에 쪼그리고 앉아 비닐을 뒤집어썼다.
민방위 교육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안 했던 거 같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교련시간이라고 여학생들은 붕대감기, 삼각건 사용법 등을 배웠다. 한 번은 교련 선생이 운동장 계단에서 시험을 본 적이 있었다. 시간에 맞춰 붕대를 감아야 하는데 하필이면 붕대를 떨어뜨려서 쪼르르 운동장으로 굴러 떨어졌었다. 시간에 못 맞췄고 감점을 받은 거 같다. 그때 배운 붕대감기나 삼각건 사용법은 지금도 가끔 보자기 쌀 때 써먹긴 한다.
공산당과의 싸움에 질까 봐 떨었던 국민학교 시절은 보지도 못한 존재에 대한 불안감이었다면 이라크 전쟁이나 보스니아 전쟁은 방송을 통해 봤기 때문에 두려운 거였다. 고르바초프가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을 실시하면서 냉전은 끝이 났다. 공산당 귀신은 사라진 거 같았는데 민족주의 귀신들이 들썩거리나 보다.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내전이 터지는데 북한을 곁에 두고 살아가는 이 나라가 평화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감사하다. 수입이 줄었다고 물가가 올랐다고 투덜대다가도 전쟁이 일어나지 않은 이 나라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지 매일매일이 별다르지 않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게 감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