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평생 상추에 질려보긴 처음이다. 시장이나 마트에서 사는 상추를 제때 못 먹어서 아깝게 버린 적은 있어도 먹다가 먹다가 지쳐서 물리는 건 처음이다. 야채에 물릴 줄이야.
야채값 아낀다고 텃밭을 만들었다. 얼마나 심어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한 판을 심었다. 밭이란 걸 처음 해보니까 땅을 일구고 나서 밭을 만드는 줄도 몰라서 일이 늘었다. 작년에 심었던 것을 뽑아내고 땅을 일구다 지쳐서 상추를 심는 건 대충 가깝게 다닥다닥 붙여 심었다. 그게 일이 될 줄 몰랐다. 다닥다닥 심어서 그 사이에 마구 자란 잡초 뽑기도 힘들었다. 욕심껏 사다가 나른 대파며 부추며 심다가 지쳤다. 고수며 부추를 처음 수확했을 때는 생전 처음 맛보는 진한 향기에 놀랐다. 내가 여태 마트에서 사다가 먹었던 야채는 밍밍한 거였다. 고수도 향이 훨씬 강했고 청겨자잎이며 적겨자잎은 사 먹는 것과 비교할 수가 없었다. 청겨자랑 적겨자는 달팽이가 어찌나 좋아하는지 한 주일에 한 번씩 수확하러 가면 저들이 다 쏠아서 잎을 뽕뽕 뚫어놓아 먹을 만한 게 없었다. 부추도 향이 강해서 맛이 좋았다. 한 줌만 갖고 부추전을 해 먹어도 향이 달랐다.
도시에서 태어나 텃밭이라고는 구경만 했었지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었다. 주변 아저씨들한테 귀동냥으로 토마토는 아래 잎사귀를 따주어야 하고 고추도 아래 달린 가지는 훑어서 가져다 먹으면 된다는 걸 배웠다. 일주일에 한 번만 가기로 한 밭은 잡초 제거하러 가고 물 주러 가고 하다 보니 두 번 이상 가게 됐다. 쪼그리고 앉아 잡초를 제거하다 보면 한 시간도 안 돼 온몸에 땀이 흥건했다. 잡초에 지칠 즈음 한동안 질리게 먹던 상추를 솎아내고 고수랑 청겨자 적겨자를 다 뽑아버렸다. 한 평 정도 되는 밭을 비닐로 덮어서 잡초가 안 나도록 했다. 지인의 아버님이 이렇게 해야 잡초가 안 자란다고 가르쳐주셨다. 잡초 제거할 일이 없어지자 한주일 넘게 밭에 가지 않았다.
한 동안 텃밭을 잊고 지내다 오랜만에 들렀더니 토마토랑 고추가 숲이 돼 버렸다. 아래 주렁주렁 달린 토마토는 무게를 못 이겨 바닥을 기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위에 웃자란 잎사귀들을 몽땅 쳐냈다. 옆에 있는 토마토랑 잎사귀가 엉켜서 이발을 시켜버렸다. 고추는 손도 못 대고 토마토 심은 데 잡초 뽑고 토마토 정리하는데만 한나절이 걸렸다. 땀으로 흠뻑 목욕을 하고 나머지는 나 몰라라 하는 심정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밭에는 아직도 상추가 곳곳에 심어져 있다. 욕심껏 심었더니 이게 끝도 없이 많다. 매주 갈 때마다 상추랑 쑥갓을 따왔더니 아직도 먹지 않고 냉장고에 넣어둔 채로 쌓여간다. 처음에는 싱싱하고 야들야들한 상추에 반해서 마구 먹었다. 주변에 한 보따리씩 갖다 줘도 매주 상추는 쌓였다. 상추로 겉절이를 해 먹고 쑥갓으로 나물을 해 먹어도 쌓인다. 이렇게 많을 줄이야. 상추에 질리고 쑥갓에 물릴 줄이야 꿈에도 생각 못한 거다.
며칠 전에 밭에 갔다 왔다. 상추에 지쳐서 잡초를 뽑으며 구석에 심어진 상추는 몰래몰래 뽑아버렸다. 무성한 들깻잎을 쳐내면서 들깻잎 아래 다소곳이 자란 상추도 뽑았다. 놀고 있는 땅을 보면서 몽땅 심었더니 그게 다 일이 된 거다. 감자는 무성한 들깻잎에 가려서 보이지도 않는다. 어느 게 잡초고 어느 게 감자잎인지 구분도 못한다. 잡초인 줄 알고 잡아 뽑으면 감자줄기가 딸려 나온다. 구슬만 한 감자가 대롱대롱 달려있다. 아이쿠 큰일 났다 싶어서 도로 땅에 심어놓기를 몇 번이고 했다. 작년에 심었던 가지는 다 뽑은 줄 알았는데 혼자 무성하게 쭉쭉 뻗어 오른다. 지인 아버님은 자꾸 무얼 심으라 하시지만 지인과 나는 벌써 일에 지치고 먹는데 지쳐서 상추며 쑥갓을 슬쩍슬쩍 뽑아버린다. 이렇게 많이 나올 줄 알았으면 욕심부리지 말고 몇 포기만 심는 거였는데 말이다. 지인과 함께 다음부터는 다섯 포기 이상 절대 심지 말자고 했다. 우리가 장사를 할 것도 아닌데 주변에 나눠주고도 충분히 먹을 만큼의 야채가 생기니까 말이다. 일 킬로가 넘는 이랑에 심은 고구마가 걱정이다. 한 줄을 심고 땡볕에 바짝 말라서 한 이랑을 더 심었는데 그게 다 일이다. 그 많은 고구마를 어떻게 처리할지 지인은 걱정이 많다. 고구마를 심을 때부터 작년에 버린 고구마 때문에 아버님과 말씨름을 며칠을 했었다. 주변에 나눠줘도 별반 달가워하지 않던 밤고구마다. 호박고구마가 잘 안 자란다고 밤고구마를 심은 건데 어른 팔뚝만 한 크기의 밤고구마는 반기지 않는 고구마인 거다. 비실비실했던 고구마까지 잎사귀가 쨍쨍하게 펴서 자라고 있다. 사 먹기만 했던 나는 밭이 이렇게 많이 내줄 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