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택시

by 송나영

나는 카카오택시를 부를 줄 모른다. 수도권에 사는 나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보다 운전하는 편이 훨씬 수월하다. 우리 동네가 읍이었을 때에는 대중교통이 별로 없었다. 처음 이 동네로 이사 왔을 때는 배차 간격도 길어서 마을버스를 기다리는 것보다 주변에 위치한 마트나 아웃렛에서 운영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다니는 게 더 편했었다. 친한 언니들이 동네에서 롯데마트며 2001 아웃렛 셔틀버스로 돌아다녔다. 서비스 차원에서 운용되던 셔틀버스가 전면 금지되자 운전하지 않는 사람들은 한동안 불편했었다. 서울로 출퇴근하는 사람들도 불편하긴 마찬가지였다. 지하철도 없었고 광역버스만이 몇 대 있었을 뿐이다. 배차간격이 긴 마을버스를 한 번 놓치면 하세월이었다. 자가용이 발인 셈이다.

우리 동네에서만 운전하는 아줌마들도 많았다. 길도 널찍했고 차도 많지 않아서 운전하는 걸 겁내는 아줌마들이 천천히 다니기에 좋았다. 출퇴근 시간에 내몰려 뒤에서 빵빵거리는 차도 없었고 천천히 간다고 빨리 비키라고 하이라이트를 번쩍이지도 않아서 텅 빈 도로를 전세 낸 양 다닐 수 있었다. 내가 처음에 운전할 때만 해도 집에 밥은 해놓고 나왔냐며 빈정대던 중년아저씨들이 이제는 쏙 들어갔다. 시도의 경계를 연결하는 지름길로 비만 오면 흙탕물이 넘치던 좁은 구도로도 모두 포장도로로 바뀌었다.

그때는 동네에 몇 대 없는 버스 대신에 택시도 많이 탔었다. 버스는 몇 개의 동을 에둘러서 빙빙 돌아 읍내로 나갔기 때문에 택시를 자주 이용하곤 했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 앞다리에는 항상 택시들이 줄지어 있었다. 다리를 건너면 우리 아파트가 막다른 길에 위치했기에 공원으로 가든지 아파트로 들어가는 인도밖에 없어서 차를 대기하기 좋았다. 늘 대여섯 대 이상의 택시들이 손님을 기다렸고 다리는 택시기사들의 사랑방이었다. 택시를 세워놓고 기사님들이 이야기꽃을 피우곤 했었다. 근처의 다른 동네에서는 택시가 드물어서 콜택시를 부른다고 했었지만 유독 우리 집 앞에는 택시가 넘쳐났다. 택시가 항상 대기하고 있어서 좋겠다고 했었다. 내가 운전을 하니까 몰랐었다. 중학교 다닐 때부터 허리디스크로 고생한 나는 어린 아들을 데리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너무 힘이 들어서 어린 아들을 운전학원에 맡기고 면허를 부리나케 땄고 따자마자 운전을 시작했다. 그러니 다리 위에 세워진 택시들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집 앞 택시는 점점 눈에 띄게 줄었다. 단지 내에서 제일 앞동에 살았던 나는 부엌 베란다 창으로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들을 보곤 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아예 택시가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친한 언니는 택시를 자주 이용했기에 물어보니 카카오택시를 부른다고 했다. 한 번은 난감한 적이 있었다. 하필 양재동 근처에서 교통사고가 나서 그 근처 공업사에 차를 맡겼었다. 일을 끝내고 늦은 시간에 차를 찾으러 가야 하는데 버스가 오지 않아서 택시를 타려고 했지만 단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카카오택시는 부를 줄 몰라서 동네의 택시회사를 검색해서 콜을 불렀다.

친한 지인들이 부모님과 운전대를 놓고 입씨름을 벌이곤 했다. 연세가 드시면서 접촉사고가 점점 늘어나는 거다. 한 지인은 아버님의 교통사고가 잦아서 자동차보험료가 엄청 많이 올랐다. 형제들과 얘기를 해서 아버님이 운전을 그만두시도록 설득을 하고 심지어 너무 사고가 많아 보험에 가입할 수 없다는 거짓말로 협박도 했다지만 아버님의 운전을 말릴 수가 없었다고 했다. 택시를 타고 다니시라고 택시비용을 드리겠다고 말씀드렸지만 그 돈이 아깝다고 펄쩍 뛰셨다. 기름값과 보험료는 안중에 없으신 거다. 무엇보다 부모님이 쇼핑센터며 교회며 당신들 다니고 싶으신 데를 마음대로 가실 수 없어서 더 포기하실 수가 없었던 건 아닐까? 그 아버님이 운전을 그만두시게 된 건 심장 혈관이 막혀서 스탠스 시술을 받으시면서 드디어 차를 파시게 됐기 때문이다. 또 다른 지인 아버지님도 딸네 집에 와서 주차장 기둥이며 벽을 자주 박다가 친하게 지내는 아는 집의 새로 산 외제차를 주차장에서 들이박는 바람에 한바탕 소동을 벌인 후 차를 파셨다.

새로운 기술을 익히지 못하면 할 수 있는 게 점점 줄어든다. 스마트폰으로 바뀌고 컴퓨터를 손에 넣고 다니면서 다양한 앱으로 굉장히 쉽게 일을 처리할 수 있게 됐다. 누가 나에게 주민등록등본이나 서류를 요청하면 정부24에서 파일을 다운로드하여 보내주곤 했다. 굳이 서류를 떼러 동사무소에 가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다. 하지만 사용할 줄 모르면 몸이 고생할 수밖에 없다. 지인의 부모님들은 유튜브 영상은 자주 보시지만 카카오택시를 부를 줄 모르신다. 나도 그렇다. 소비쿠폰을 각종 페이나 카드로 신청하실 줄 모르신다. 동사무소에 가서 카드로 받으셔야 한다. 왜 택시를 안 타시는지가 아니고 어떻게 해야 택시를 타실 수 있는지 방법을 찾아야 하는 거였다. 실버용으로 사용방법이 직관적으로 쉽게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다.

점점 늘어나는 키오스크가 무섭다. 그것들은 간단히 묻지 않는다. 간신히 메뉴를 선택하면 쿠폰을 적용해야 하는지, 무엇으로 결제할지 참 많이도 물어본다. 작년에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주문하다가 내 뒤에 섰던 사람들은 나를 기다리다 옆에 빈 키오스크로 모두 자리를 옮기는 일을 겪었다. 아이스크림의 크기를 선택하고 어떤 아이스크림을 먹을지를 선택하고 간신히 다 됐다 싶으면 결제를 선택하라고 했다. 글자가 잔뜩 써져 있지만 정신이 아득해진다. 도대체 뭐라는 건지 짜증이 올라오고 부끄러워진다. 간신히 마지막까지 도달한 거 같은데 선물을 선택하란다. 선물인 줄 알았던 것은 돈 내고 사야 하는 거였다.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오래 걸려서 부끄러운 마음에 아무거나 선택했더니 아이스크림이랑 가격이 달랐다. 이건 또 뭐지라는 생각에 아이스크림을 기다리면서 물어봤더니 신청한 선물 가격이란다. 선물이라며? 왜 돈을 달라는 건지 이건 또 뭐 하는 건지 알쏭달쏭했다. 아이스크림을 받고 자리에 왔더니 선배는 도대체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느냐고 타박을 했다. 여차저차한 사정을 말했더니 선물이 어디 있냐고 내게 물었다. 주문 하나 하는데 삼십 분 넘게 걸린 것처럼 혼자 버벅거린 게 창피해 아이스크림만 재빨리 받아왔더니 선물도 따로 받아야 하는 거였다. 쓰잘데기없는 조그만 피규어를 받았고 어디에 둔 지도 모르겠다. 내가 나이를 먹는다는 것을 아주 절실히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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