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되지 않은 이별

by 송나영

이십여 년을 살던 집을 팔았다. 집수리를 하려니 방을 얻어서 잠시 나가야 한단다. 그동안 여기저기 땜질하여 고치며 살았는데 깔끔하게 전부 수리하고 싶었다. 새 기분으로 새 출발을 기념하고 싶었다. 헤어진 남편과 지긋지긋하게 싸우다 입을 닫아버리고 산 세월이 십 년이 넘었다. 각자 방에 똬리를 틀고서 행여 마주칠까 좁은 집에서 피해 다녔다.

세 살 아들을 데리고 허둥지둥 이사를 왔었다. 전에 살던 곳은 대문을 열면 야트막한 산을 끼고 호수가 바로 보였다. 한겨울을 빼고 문을 활짝 열고 살았었다, 답답해서. 남편의 첫 번째 폭력이 집구석을 훑고 간 뒤 결자해지라며 네가 저지른 일을 해결하라고 그래야 살겠다고 옮긴 집이었다. 다시 살기로 결정했지만 마음이 다 가라앉은 건 아니었다. 정신이 나간 두 눈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 시퍼렇게 날이 선 눈을 잊기 위해 나는 버텼다. 결혼하자마자 얻은 남편의 딸을 학교에 보내고 복잡한 마음을 잊기 위해 아들을 업고 매일 산을 오르고 호숫가를 돌았다. 애도 처음 키워보는데, 초등학생 학부모 노릇까지 동시에 하려니 힘이 들었다. 애를 쓰며 살았지만 내 속을 털어놓을 만한 데가 없었다. 속 편하자고 얘기를 하면 오히려 속이 더 답답해졌다. 점점 입이 다물어졌다.

아들은 걸음마를 떼면서 동네 아이들과 하루 종일 어울려 지냈다. 복도식 아파트라 놀이터로 나가지 않아도 복도를 뛰어다니며 신나게 놀 수 있었다. 겁 많은 아들은 인라인 스케이트를 한쪽만 신고 복도에서 탔다. 잘 먹는 옆집 형아 덕분에 입 짧은 아들은 경쟁하듯 밥을 먹었다. 아이들을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졸지에 두 명의 아이들을 돌보려니 다른 애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하루 종일 대문을 열어놓아서 아이들의 친구들은 쉴 새 없이 들락거렸다. 나는 먹을거리만 준비하면 됐다. 아들은 애들과 함께 저절로 커갔다.

시외조부댁이 근처에 있었다. 시외조부가 돌아가시기 전에 시외조모는 우리 집에 온 적이 없으셨다. 하지만 시외조부가 돌아가시고 시외조모는 우리 집을 당신이 출근할 장소로 정했었나 보다. 하루도 빠짐없이 근면성실하게 출석도장을 찍으며 밥은 먹였냐며 증손녀의 생사를 살폈다. 남의 자식을 겁 없이 키웠다. 엄마 없이 자랐던 첫 증손녀가 새엄마한테 밥이나 제대로 얻어먹는지 매일 걱정이었다. 어느 날은 시고모까지 대동하셔서 잔소리를 장착하시고 나타나셨다. 제 할 말은 또박또박 다 하는 새로운 손주 며느리를 상대하기가 버거우셨나 보다. 점점 도를 지나치는 당신의 방문에 지쳐갔다.

아들과 함께 유아수영을 했었다. 그곳에서 사귄 친구네 집에 놀러 갔다. 아파트 단지가 마음에 들었다. 이사를 가자! 나만 빼고 다들 재미있게 살고 있는 집을 탈출하기로 했다. 나한테는 집이 아니었다. 매일 시달리므로 마음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아이 아빠는 이사 가기 싫다고 이사 가려면 네가 다 알아서 하란다. 자기가 취미로 날리는 모형비행기가 조금이라도 부서지면 큰 탈이 날 줄 알라고 엄포를 놓았다. 집을 내놓고 이삿짐센터를 정하고 한 달 안에 옮겼다. 밤늦은 시간에 졸음을 참으며 모형비행기를 싣고 내가 직접 옮겼다. 나 살기 위해 탈출했던 집이라 식구들 비위를 맞췄다. 아들은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과 헤어져 속이 많이 상했었다. 간신히 가라앉은 아토피가 심해져서 밤새 긁었다. 아들이 긁지 못하도록 시원하게 알로에 크림도 발라주고 온천수 스프레이도 뿌려주고 별 걸 다했다. 아들은 긁고 나는 말리느라 둘이서 밤을 꼴딱 새우곤 했다. 잠을 못 자니 아들과 나는 낮이면 아주 곯아떨어졌었다.

도배도 안 하고 청소도 안 하고 대충 들어온 집에 정이 안 붙었다. 도배를 하고 데코타일을 사다가 모노륨 바닥에 덧씌웠다. 모두가 잠든 새벽 마지막 데코타일을 깔고 나는 감격에 겨워서 잠들 수 없었다. 꼭대기층이라 겨울은 아주 추웠다. 뒷베란다 벽에 스티로폼을 덧대고 시트지를 붙였다. 살 만한 집으로 만들려고 애를 많이 썼다. 헤어진 남편이 마지막 신뢰를 무참히 밟아버린 후 오만 정이 다 떨어졌고 나는 집에서 손을 뗐다. 그냥 마지못해 사는 집이 됐다. 잠만 자면 되는 공간이었다. 애아빠와 협의 이혼을 하기 위해 서류를 정리하자고 했고 그는 집을 나갔다. 아들과 나만의 공간이 됐다. 진짜 살고 싶은 집으로 만들고 싶었다. 기름때가 절은 부엌 싱크대를 고치고 누렇게 때가 앉은 욕조랑 부서져 가는 타일을 바꾸고 싶었다. 알루미늄새시를 요즘 새로 나오는 창호로 바꾸고 싶었다.

아들이 군대를 갔다. 혼자 남은 집에서 아들이 돌아오기 전까지 집수리 영상만 들여다봤다. 어떻게 수리할지 차라리 이사를 갈까 백일몽을 꾸기 시작했다. 아들이 제대하고 복학을 했다. 이사 가는 게 어떻겠냐고 아들한테 물어보니 엄마 마음대로 하란다. 그래, 이 집에 모든 추억을 묻고 떠나자. 넘실대고 가득했던 아픔과 고통을 몽땅 묻어버리고 같은 단지 안에서 다른 집으로 옮겼다. 이사하기 전에 그 집에 남았던 모든 묵은 짐들을 다 버렸다. 훌훌 털어버렸다. 그리고 새 집을 위해 잠을 설치며 집수리업체를 찾아다녔고 내 마음에 쏙 들게 고쳤다. 아들과 육 개월을 함께 살았다. 아들은 학교 근처로 나가고 싶어 했다.

아들이 떠났다. 빈 둥지 증후군이라는 것도 그때는 알지 못했다. 허전하고 외롭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전에는 일을 끝내고 돌아오면 아들은 한결같이 집에 있었다. 아들이 있었을 때도 혼자 자주 먹던 밥이었지만 아들이 나가고 혼자 지내는 시간은 공기가 달랐다. 아들이 군대에 갔을 때도 혼자 있었다. 그런데 오롯이 혼자가 된 시간은 너무 슬펐다. 아들을 떠나보내야 한다는 걸 알지만 내 마음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집을 떠나기 전에 괜히 아들한테 트집을 잡고 화를 냈다. 섭섭한 마음을 엉뚱하게 풀었다. 언젠가 떠날 아들이었는데 그걸 생각하지 못한 거였다. 지금만 바라보고 사느라 아들을 떠나보내고 남은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전혀 준비하지 못했었다. 아들과 함께 진짜 집다운 집에서 살아보자고 온 힘을 다해 집수리를 했는데, 20년이 넘은 아파트를 수리했는데, 가전을 새로 사고 아들의 취향에 맞춰보겠다고 아들의 가구를 골랐는데 아들이 떠났다. 준비하지 못하고 겪게 된 허전함을 채우느라 몇 개월을 허둥거렸다. 갑자기 울컥울컥 마음에 슬픔이 차올랐다. 내 우울감의 시작이 어딘지 몰라서 여기저기 지인을 붙들고 하소연을 했다.

이제는 아들과 내 생활을 받아들인다. 몇 개월의 성장통을 겪고 드디어 아들을 독립시킨 거다. 성장통은 사춘기 자식들에게만 있지 않다. 부모로 성장하고 조부모로 나이 들 때마다 나는 성장통을 겪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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