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모으다

by 송나영

딸아이가 일곱 살 때 처음 만났다. 만날 때마다 물건을 사달라고 했다. 처음에 선물로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당연한 요구로 바뀌었다.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나한테서 물건을 받기 위해 머리를 굴리며 이야기를 지어내는 아이가 점점 미웠다. 학원에서 사 오라고 했다며 거짓말까지 하면서 물건을 사달랬다. 결혼을 앞두고 내가 과연 이 아이의 엄마가 될 수 있을지 심하게 흔들렸다.

새엄마가 되고 처음으로 어린이날, 생일, 크리스마스를 맞았다. 할머니, 할아버지, 아빠 그리고 엄마의 선물을 요구했다. 왜 따로 안 주냐고 했다. 아빠랑 함께 준 거라고 했지만 아이는 속상해했다. 선물의 개수가 줄어든 것을. 아이의 책상은 온통 물건으로 가득 차 있었다. 포장도 뜯지 않은 물건이 서랍마다 그득했다. 사탕과 초콜릿을 받으면 먹지도 않고 책상 서랍에 가득 채워 두었다. 동생이 태어났고 아이는 동생에게 사탕을 한 번도 준 적이 없다. 그건 아이가 모은 사랑이었다.

아이는 사랑을 받은 적이 없었다. 아빠와 엄마는 심하게 다투었다. 아이는 무서워 귀를 막고 숨어있었다고 얘기해 줬다. 아빠와 떨어져 살았고 친엄마한테서 자랐다. 부모가 이혼도장을 찍기도 전에 친엄마는 곧 결혼할 거라고 새아빠를 소개했다. 엄마는 금은방을 하는 아저씨가 곧 새아빠가 될 거라고 했다. 아이는 엄마가 만나는 남자를 시계아빠라고 불렀다. 시계아빠를 친아빠보다 자주 만나다가 아이는 아빠한테로 돌아왔다. 아이는 조부모가 키웠다. 아빠는 할머니한테 아이를 맡겼다. 할머니는 아이를 유치원과 미술, 피아노 학원에 맡겼다. 아침에 유치원으로 가면 저녁 6시가 넘어야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집에 오면 인천엄마를 욕하는 할머니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 어른들은 아이를 앉혀놓고 매일 친엄마를 욕했다. 그리고 선물을 줬다.

친엄마는 아이를 만날 수가 없었다. 아이를 못 만나게 막았다. 아이를 만나게 해달라고 애아빠에게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다. 전화번호를 자꾸 바꿨다. 친엄마는 아이가 보고 싶어 동네 어귀에서 아이를 기다렸다. 몰래 아이를 데리고 가려다 학원 셔틀버스 시간에 맞춰 나온 할머니한테 들켜서 온 동네에서 망신을 당했다. 동네사람들 들으라고 아이 훔쳐간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할머니를 당할 수가 없었다. 아이한테 새엄마가 생긴 것을 알았다. 친엄마는 초등학교 앞에서 하교하는 아이를 만나서 인천에 있는 백화점으로 데리고 갔다. 사랑한다는 말 대신, 보고 싶었다는 말대신 하얀색 원피스를 선물했다. 친엄마는 새엄마가 좋은지 자기가 좋은지 물었다. 친엄마랑 살고 싶어 하는지, 새엄마랑 살고 싶은지 그게 더 궁금했다. 아이는 친엄마가 얼마나 자기를 사랑하는지 알고 싶었다. 시험하고 싶었다. 사랑의 크기를 재고 싶었다. 선물을 받고 싶었다. 백화점에 있는 물건들이 탐이 났다.

아이는 사춘기를 거치며 화장품을 모았다. 사랑을 확인하려고 조부모 집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찾아가 옷을 사달랬다. 신발을 사달랬다. 돈을 달랬다. 명절에 받는 용돈을 새엄마한테 빼앗겨서 두고두고 마음이 상했다. 새엄마의 만행을 온 동네에, 친한 동네 언니에게 알리고 싶었다. 그 언니도 용돈을 빼앗기는지 물어보면서 어떻게 엄마가 자기가 받은 용돈을 낚아챌 수 있는지 한탄을 했다. 자기가 얼마나 속상한지 주변에 널리 알리고 싶었다.

아이는 사랑을 받고 싶어 했다. 공부하기 싫어서 자신에게 사랑을 선물했다. 공부하는 시간보다 인터넷쇼핑을 하는 시간이 더 길었다. 매일 집으로 오는 택배가 위안이었다. 사랑이었다. 텅 빈 마음을 채워줄 수 있는 건 물건밖에 없다. 새엄마는 물건이 넘친다고 자꾸 남을 줬다. 자기 물건에 손을 대는 새엄마가 더없이 미웠다. 방문을 닫아걸었다. 학교에 갈 때도, 집에 와서도 방문을 잠갔다. 사랑으로 방을 가득 채우고 싶었다. 방은 발 디딜 틈도 없이 꽉 채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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