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미안해

by 송나영

한여름 뙤약빛이 눈이 부시다. 이 더운 여름날 쉬지도 않고 인턴으로 일하는 아들이 보고 싶다. 같이 휴가라도 가자고 하고 싶지만 아들이 바쁘다. 휴가다운 휴가를 즐겨 본 적이 별로 없다. 아들이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사는 게 급해서 놀러 다니지 못했고 지금은 내가 한가해졌지만 아들이 짬이 안 나니 얼굴 보기가 힘들어졌다. 아들이 어려서 자주 놀러 다녔지만 기억하지 못하니 씁쓸하다. 아들이 지금은 앞날을 설계하느라 여유가 없지만 마음이 편해지고 느긋해져서 우리의 추억을 다시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다.

가을이면 용문사의 은행나무를 보러 가고 여름이면 양평으로 달렸다. 어느 해 여름에는 한낮의 더위에 지쳐 누워있다가 용문사 근처 계곡으로 아들 친구네와 함께 먹던 김치찌개 한 냄비를 들고 떠났다.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챙겨 들고 삼겹살을 사서 계곡으로 향했다. 이미 계곡은 만원이었다. 차를 대려고 끝없이 주차된 차를 따라서 위로 올라갔다. 아이들은 계곡에서 물놀이를 하는 것을 보고 흥분을 했다. 자리도 잡기 전에 아이들은 물속으로 사라졌다. 자리를 펴고 고기를 굽고 찌개를 덥히는데 아이들이 새파랗게 변해서 나타났다. 계곡인 데다 나무가 울창해 그늘이 져서 더 추웠다. 벌벌 떠는 애들 입에 고기를 넣어주자 아이들 몸이 좀 진정이 됐다.

양평의 민물고기 생태학습관은 여름에 자주 갔던 곳이다. 민물고기를 볼 수 있는 박물관이 있고 그 옆으로 하천이 흘러서 아이들과 물놀이하기에 좋았다. 생태학습관도 무료였고 하천가에 커다란 우산과 자리를 펼쳐놓으면 놀이 준비 완료였다. 물도 깊지 않아서 동네 친구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함께 놀기에 좋았다. 사람들이 해가 갈수록 점차 늘어나자 어느 해부터는 입장료를 받기 시작해서 그때부터 발길을 끊었다. 안동도 자주 가던 곳이다. 뜨겁던 여름에 안동 가면박물관을 구경하고 집으로 올라오다가 국도변에 차를 세웠다. 안동 하회마을에서 땡볕에 얼굴을 찡그리며 마지못해 구경하던 아이들은 물가에서 노는 아이들을 보고 신이 났었다. 늦은 오후라 사람들이 다리 밑에서 천렵을 하고 맛있는 것을 끓여 먹고 있었다. 차를 세우자마자 아이들은 튕겨나갔다. 물속에는 다슬기가 아주 많았다. 우리는 빈 플라스틱 물병을 들고 다슬기를 잡았다. 해는 어느덧 산너머로 넘어가고 있었다. 순식간에 어두워진 그 여름의 끝자락에서 물병에 가득 찬 다슬기를 안고 돌아왔다.

아들은 그 기억이 없다. 그렇게 자주 다녔는데 그런 기억을 다 지웠나 보다. 부모의 잦은 다툼과 시끄러움이 사라지고 집안에서 각자 따로 살기 시작하면서 아들은 어린 시절의 추억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안면도의 모래사장을 기억하지 못했고 양평의 계곡과 산을 기억하지 못했다. 어린 아들이 받은 충격과 불안함은 까르르 웃었던 기억을 지워버렸다.

지난 주말 혼자서 퇴촌의 미술관을 갔다. 일주일에 두 번 이상은 다녔던 퇴촌길이었다. 그 길에 들어서서 얼마나 많이 이 길을 다녔는지 기억이 생생히 살아났다. 퇴촌과 양평의 그 꽉 막힌 길에 우리는 늘 있었다. 아니 나만 그걸 기억하는지 모른다. 양평의 거미박물관도, 정약용생가, 용문사, 민물고기 생태체험관도 양평의 어느 계곡도 이 길을 따라갔었다. 이차선의 좁은 도로는 여전했고 구부러진 길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 길에서 왕성중국집을 만났다. 아직 이 집이 그대로 있다니 반가웠다. 어느 해 여름에 멀리 놀러 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밤 9시가 다 돼 저녁을 먹으려고 찾은 집이었다. 아이들과 나는 배가 고파 지쳐있었다. 주변의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반짝이던 빨간색 간판이었다. 제발 이 집이 영업을 하기를 간절히 바라며 들어갔고 우리는 정신없이 퍼먹었다. 맛이 없을 수가 없었다. 그 왕성중국집이 여전히 살아있었다.

퇴촌이 41도가 넘는 날이었다. 나는 그곳에 있었고 뜨거운 여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뜨거운 여름 물놀이를 즐기던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아직도 귓가에 선하다. 아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그 추억 속에 나는 산다. 아들에게 많은 것을 해주고 싶었는데 아쉽기만 하다. 돌아보면 아들한테 상처를 너무 많이 준 것 같아 많이 미안하다. 어려서 속상하게 한 것도 미안하고 공부하라고 혼을 너무 많이 내서 미안하고 외롭게 혼자 집을 지키는 아들을 이해하지 못한 것도 미안하다. 미술관을 나서니 공기가 훅훅 더운 김을 끼친다. 퇴촌의 길을 천천히 돌아 나오면서 아들에게 더 잘해주지 못했던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엄마가 많이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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