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질하는 할아버지

by 송나영

"삽질하는 할아버지 따님이세요?"

딸은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의사는 얼굴 가득 웃음기를 띄고 묻고 있었다. 무슨 말인지 몰라서 멍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밭에서 삽질하다가 가슴이 아파서 오셨다는 할아버지가 자기 아버지라는 걸 알고 창피했다. 몇 년 전에는 아버지가 산에 더덕을 심으러 가셨다가 더덕인줄 알고 캐서 드셨는데 구토와 설사를 반복하다 병원에 오셨을 때 동생이 부끄러워 죽는 줄 알았다는 말이 떠올랐다. “할아버지, 산에서 아무거나 드시지 마세요.”라는 말을 동생은 벌건 얼굴로 들었단다.

지인의 아버님이 결국 스탠스 시술을 받으셨다. 심장 혈관이 세 개가 꽉 막혔다. 두 개는 손써 볼 도리가 없어서 하나만 뚫기로 해서 어제 새벽에 병원으로 가셨다. 그냥 이대로 죽겠다고 절대 수술 같은 거 안 하겠다며 겁을 내시던 아버지는 아무나 다 하는 시술이라는 말에 용기를 내셨다. 딸은 병원에서 아버지가 지혈이 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많은 생각이 들었다. 침상이 무수히 날아오는데 수액과 줄이 주렁주렁 달린 채 사람들이 쉼 없이 실려왔다. 온몸에 줄을 삽입한 그들은 대부분 오십 대의 장년들이었고 동년배였다. 구순의 아버지가 오히려 건강하셨다. 그녀는 건강해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구순의 아버지는 밭에 몹시 가고 싶어 하셨다. 자주 접촉사고를 일으켜서 딸들의 등살에 차를 팔아서 몹시 답답해하셨다. 아직도 충분히 운전을 할 수 있는데 딸들의 원성이 너무 컸었다. 그동안 지인을 통해 이런저런 사정을 들었었다. 지인이나 나나 걸핏하면 드러누워있고 운동도 안 하는 터라 지인에게 아버님 밭에 채소를 심어 보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었다. 채소값도 아끼고 몸도 움직일 겸 겸사겸사 하자고 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밭에 가면 어떻겠냐는 나의 제안을 바로 아버님께 알려드렸고 아버님이 몹시 흥분하셨다는 말을 전해 들었었다.

지인에게 그 밭은 아주 애물단지였었다. 89세인 아버지가 밭에만 가면 집에 오지 않으셨고 너무 많이 심으셔서 매년 남은 농작물을 버리는 게 골칫거리였다. 작년에도 팔뚝만 한 밤고구마를 수확했지만 처치 곤란했었다. 주변에 나눠 줘도 너무 많이 남았고 저장할 곳도 없어서 결국 몇 포대를 버렸었다. 그 팔뚝만 한 고구마 여섯 개를 나는 선물 받았고 두 달에 걸쳐 먹었다. 거의 십 년 전에 지인은 아버지와 함께 그 밭에 대추나무를 심다가 아주 뻗은 이후로 절대 밭에 가지 않았었다.

구순의 아버지는 사십이 다 돼 첫 딸을 얻었고 그 딸이 고등학교 다닐 때는 은퇴를 해서 딸들을 학교에, 회사에 데려다주셨다고 했다. 뒤늦게 소일거리로 농사를 배우셨나 보다. 재테크할 겸 밭을 사셨고 밭은 농작하지 않으면 벌금을 물었기에 여러 작물을 심기 시작하셨다. 밭에만 가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을 하셨던 아버지를 어머니는 따라다니지 않으셨다. 집에 갈 생각을 안 하는 남편하고 입씨름을 해봐야 소용이 없었단다. 당신은 재미로 농작물을 심으시다가 남은 흙이 한 줌이 없도록 알뜰살뜰하게 경작하셨다. 수확 후 뒷감당은 어머니 몫이었다. 당신은 심고 기르기만 하셨다. 주변에 나눠주라고 하셨지만 나눠주는 것도 마땅치 않은 일이다.

다시 밭에 가는 첫날 아버지는 반짝반짝 두 눈에 총기가 돌아오셨다. 아버님은 길눈이 밝으신데 운전을 못해서 몹시 아쉬워하셨다.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말리는 자식들이 야속했다. 큰 사위가 운전은 길을 잘 알아서 하는 게 아니라 바로 대처를 해야 하는데 운동신경이 느려서 사고 난다고 차분히 말하는 바람에 입을 다무셨다. 드디어 밭에 가는 것만으로도 삶의 낙이 생기셨다. 일주일에 한 번 아버님을 모시고 가기로 했지만 지인은 혹시나 아버지가 자주 가자고 할까 봐 미리 가자는 말을 절대 하면 안 된다고 나한테 입단속을 시켰다. 밭에 물을 주러 갔다가 깜짝 놀란 적이 몇 번 있었다. 자전거 자물쇠로 닫아놓은 비닐하우스는 굳게 닫혀 있었다. 아버님은 녹이 슨 자물쇠를 돌리지 못해서 하우스 뒤편을 막아놓은 장애물을 치우고 들어가신 거였다. 우리는 서로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었다. 땀에 흠뻑 젖은 당신이 작년에 심고 버려둔 고추며 토마토를 정리하셨다. 밭에 간 첫날에 나는 작년에 심은 걸 캐내고 땅을 일군 뒤에 상추를 심는다는 걸 알았다. 처음 해보는 경작에 기겁을 했었다. 너무 힘들어서 이걸 내가 왜 하자고 했을까라는 후회와 막막한 기분을 안고 돌아왔었다, 당신의 벅찬 기대와 달리.

아버님은 그 후로도 땡볕에서 쉬지도 않고 일하셨다. 딸은 작년의 고구마 사태를 들어서 올해는 한 줄만 심으시라고 했다. 하지만 아버님은 엉터리로 심었다고 다시 한 줄을 더 심어야겠다며 딸과 밭으로 가는 차 안에서 고구마로 입씨름을 하셨다. 결국 당신은 사람을 사서 한 줄을 더 심으셨다. 토란을 심기 위해 하우스에서 모종을 키웠다. 여름 초입에 토란을 밭으로 옮기고 오지 않는 비를 걱정하셨다. 반이 넘게 남은 밭에 들깨를 심기 위해 모종을 키우셨다. 밭 근처에 살고 있는 둘째 사위를 시켜서 물을 주라고 하셨다. 오십 대인 우리보다 더 정정하게 밭에서 일을 하셨다. 일이 늘어날까 봐, 너무 많아서 끝없이 늘어나는 상추, 고추, 쑥갓, 고수, 토마토에 놀란 나는 갈 때마다 몇 개씩을 뽑아 버렸다. 지인과 나는 뽑아 버리고 당신은 노는 땅 없이 심기를 바라셨다. 남아도는 흙이 아까우셨던 거다. 우리가 뜨문뜨문 가는 밭에 당신은 쉼 없이 다니셨다. 전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시간반이 걸리는 거리를 당신은 지치지도 않고 무거운 다리를 끌고 다니셨다.

비가 엄청 많이 내렸던 어느 날은 밭에서 세 시간이 넘게 걸려서 집으로 돌아오셨다. 근처에 사는 작은딸에게 몇 번 집까지 태워달라고 부탁을 했지만 아버지의 건강을 걱정하는 딸내미의 한 시간이 넘는 잔소리에 지쳐 점점 부탁하지 않으셨다. 택시를 타고 다니시라는 말을 큰딸은 숱하게 했다. 돈이 아까워서 못 타시는 줄 알았다. 하지만 우리는 길에 택시가 없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택시를 불러드려야 했던 거다. 딸은 당신한테 카카오택시 부르는 법을 숱하게 일러 드렸지만 제대로 사용하실 수 없으셨다.

"토란이 죽든지 말든지 냅둬라!" 딸은 깜짝 놀랐다. 장마가 시작되기 전에 지인과 내가 뜨거운 한낮에 잠시 밭에 가서 물을 주겠다고 했더니 아버님은 절대 가지 말라고 하셨다. 당신은 조카와 함께 주말에 땡볕에서 하루 종일 일을 하시다가 쓰러지셨다고 했다. 일어나려고 해도 몸이 말을 듣지 않으셨단다. 구순의 생일잔치를 한 달도 채 남겨놓지 않았는데 이제야 구순의 나이가 실감이 나신 거였다. 작년에 받은 건강검진에서도 사십 세보다 더 내장기관이 튼튼하다는 말을 들으셨었다. 한 번도 밭에서 힘들어서 일을 쉬어본 적이 없으셨는데 쓰러지신 거였다.

삽질을 하다가 가슴에 통증이 왔다고 했다. 삽질이요? 의사는 기겁을 했다. 절대로 하시면 안 된다고 했다. 삽질에 당황한 의사는 삽질하는 할아버지의 따님에게 절대 아버님이 삽질 못 하게 하시라고 했다. 딸은 오히려 의사에게 간곡하게 부탁했다. 식구들 말은 안 들으니 제발 아버지께 밭에 가지 마시라고 의사 선생님이 꼭 좀 말려달라고 말이다.

스탠스 시술이 끝나고 지혈이 돼야 집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젊은 사람들은 아직 지혈이 되지 않았는데 지인의 아버지만이 지혈이 돼서 제일 먼저 집으로 돌아오셨다. 오는 길에 딸은 밭에 가득한 잡초는 자기가 제초제를 뿌려서 제거하겠다는 말을 전했다. 아버지와 딸이 좋아하는 토란은 잘 안 됐다는 말에 아버님은 시무룩해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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