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by 송나영

결과에 집착한다. 사춘기 시절에는 성적이라는 결과에, 성인이 돼서는 월급이라는 결과만 바라본다. 내 성적이 나인 것 같고 내 월급이 나를 대변한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어떤 노력을 했는지는 살펴보려 하지 않는다. 결과가 나쁘면 다 못한 거다. 결과로 판정승을 내린다. 일등만 기억하는 세상이라는 문구도 그래서 나오지 않았을까?

얼마큼 버는지로 평가하는 건 내 삶을 평가절하시킨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당장 돈으로 연결되지 않을 수도 있다. 좋은 대학을 나와서 좋은 직장에 들어가 고액 연봉을 받을 수도 있다. 가족은 볼 시간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려서 남보다 많은 돈을 벌고 은퇴를 해보니 부인과 자식은 저만치 멀어져서 말하기도 어색한 사이가 된 사람도 있다. 아이가 어려서 아빠의 손길이 필요할 때 정작 자신은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 하기 위해 밤낮없이 회사를 위해 충성을 다 하다가 부인과 멀어진다. 아는 분 중에 대기업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높은 지위까지 올라갔고 가족을 위해 정말 최선을 다 해서 많은 돈을 벌어줬다. 하지만 은퇴 후에 그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갈 곳은 없었다. 부인은 그의 모든 옷을 버렸고 몇 벌의 옷과 한 두 켤레의 신발이 남았다. 어느 날 집으로 갔더니 낯선 이가 누구냐고 물었다. 그에게 말하지도 않고 가족은 이사를 갔고 그는 이사 간 집 주소를 몰라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서 찾아갔다. 현관을 열고 들어가니 그가 살 공간은 입구에 있는 작은 방이었고 집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경계하려는 듯 방에서 거실 쪽으로 가림막을 세워두었다. 아버지 자리를 돈이 차지했던 거였다.

명문대 입학이 목적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사교육으로 쉴 틈이 없다. 남보다 많이 해야 명문대 합격의 결과를 얻을 수 있으니 수학, 과학, 영어에 선행을 심화시키고 독서에, 한국사에, 중국어를 가르치려고 학원에 과외를 덧붙인다. 특목고를 가야 명문대 입시에 유리해지니 내신 성적을 올리려고 전 과목 과외도 불사한다. 믿기지 않는 현실이 주변에서 벌어진다.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로 성장한다. 삶을 돌아볼 겨를이 없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생각할 틈이 없다. 남들과 다른 나만의 장기가 무엇인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를 들여다볼 짬이 없이 끌려가는 삶을 산다. 왜 사는지 모른다. 하고 싶은 게 없다.

동기가 부여돼야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장사치의 말에 속아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잡다한 사교육을 시킨다. 의무교육을 받는 동안은 학생이다. 학생이 할 일은 당연히 공부인데 이 당연한 일이 마음에 들어야 할 수 있다는 희한한 생각이 자리를 잡는다. 아니 세상이 그렇게 말한다. 공부가 취미생활도 아닌데 말이다. 성적은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지만 결과에 연연하니 좋은 성적을 못 받으면 공부 관두라는 말들을 한다. 노력을 안 했으니 당연히 성적은 나쁠 것이고 공부는 안 했어도 다른 것에 관심을 둘 수도 있었을 텐데 그건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성적표만이 그 아이의 현재와 미래를 가늠하는 잣대가 된다.

남들이 사교육을 많이 시키니 무리해서 시킨다. 돈을 들였는데 성적은 전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다른 애들처럼 철도 들기 전부터 시켜야 했는데 애가 싫다고 하니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수학, 영어, 국어, 과학을 시킨다. 많은 돈을 들이는 것에 비해 아이의 성적은 형편이 없다. 성적표가 나올 때마다 실랑이를 벌인다. 이 따위로 할 거면 때려치우라고, 학원 다 끊으라고 협박을 한다. 부모가 아이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 보낸 학원과 과외 때문에 아이는 또 혼난다. 학원을 안 다니고 과외를 안 하면 그나마의 성적도 안 나온다는 것을 아이들도 안다. 학교에서 수업하는 것으로 아이가 이해할 수가 없는 거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성적은 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공부가 나한테 안 맞는다고 생각한다. 중,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공부는 선택이 아닌 것이다. 해야 할 일인 것이다. 하지만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없으니 좋은 대학은 틀린 거다. 그럴 바엔 차라리 일찍 직업전문학원을 찾아가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삶은 돈 버는 것만이 다가 아니다. 돈을 잘 벌 수 있는 직업을 찾기 위해 좋은 대학을 가야 하고 좋은 직업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니 삶이 쏙 빠진다. 진로교육을 사춘기의 꿈도 키우기 전에 윽박지르듯 시키니 주객이 전도돼 나를 찾을 수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내가 보람을 느끼고 좋아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찬찬히 찾아보면 된다. 나를 알아야 할 시간에 나를 놓치고 목표도, 목적도 없이 경주마처럼 달리다 보니 여긴 어디인지 나는 누구인지 모른다. 결과에 주목하니 남들과 다른 나를 오롯이 나만을 위한 삶을 살 수가 없다. 이어령 박사는 제말 남들과 똑같이 살지 말라고 하셨다. 한 방향을 향해 달리면 순위가 정해진다고 그러니 아무리 열심히 해도 일등은 한 명뿐인 거라고. 자기는 하나밖에 없는데 왜 남과 똑같이 사냐고 자기 삶은 남이 어떻게 할 수가 없다며 늙어서 깨달으면 큰일 난다고 했다. "마치 사형수가 하루를 살 때, 내일이 없다고 생각할 때 그 하루가 얼마나 농밀하겠어요. 지금 젊음을 열심히 살아야, 늙을 줄도 알고 열심히 늙음을 살아야 죽음의 의미도 아는 거예요."라고 그는 말했다. 결과에 연연해 지금 누릴 수 있는 시간을 우리는 놓칠 때가 있다. 오지도 않은 미래를 미리 마름질한다. 내가 이 순간을 만든다. 어떻게 사는지가 내 삶을 만들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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