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케이크 같은 나의 가난

by 송나영

이십 대에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인 '치즈케이크 모양을 한 나의 가난'을 나는 '치즈케이크 같은 나의 가난'으로 기억하고 있다. 제목에 끌려서 이 책을 샀었다. 도대체 가난이 왜 치즈케이크 모양인 건지 궁금했었다. 하루키 작가는 신혼시절에 싼 집을 찾아서 철로 사이에 끼인 치즈케이크 모양으로 생긴 집에 살았다고 했다. 가난한 신혼부부는 돈이 없었고 집을 둘러싼 양쪽 철로로 기차가 지나갈 때면 서로 소리를 질러가며 얘기했지만 안 들렸다고 했던 것도 같고 내용은 어렴풋하지만 선명하게 기억에 남은 건 치즈케이크 모양의 집이었다. 하루키의 신혼시절의 가난은 치즈케이크 모양을 했던 거였다.

몇 주 전에 아들 집에 잠깐 다녀올 일이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아들은 푸석푸석했다. 토요일 아침 10시에 엄마의 방문으로 아들은 잠에서 깼다. 함께 방청소를 하며 아들은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얘기를 해준다. 같이 살 때는 서로 입 꾹 다물고 지냈는데 가끔씩 만나니까 오히려 아들이 살뜰하게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곤 한다. 책상 위에 있던 졸업연주회 초대장을 보더니 얘는 자기랑 완전히 다르게 살았다고 했다. 살아온 환경이 자기랑 아주 다르다고 놀라워했다. 너랑 뭐가 그렇게 다르냐고 묻지 않았지만 아들은 자기가 참 어렵게 살았다고 생각하는 거 같았다.

내가 가난을 겪어본 것은 대학교 3학년 때가 처음이었다. 딸들이 결혼하기 전에 아버지가 번듯한 직업이 있어야 한다며 아버지가 실직생활을 끝내기를 바랐던 엄마의 오랜 숙원이 이루어졌다. 무책임하고 무능했던 아버지는 사람만 좋았다. 동네 전기기사 말만 홀랑 믿고 대책 없이 전기사업을 하시겠다고 아버지는 명동이며 을지로, 강남터미널, 장안동 고미술상가 등등 곳곳에 세를 줬던 가게들을 한꺼번에 다 팔아서 사업을 시작했었다. 준비되지 않은 사업은 빌딩 몇 채에 해당되는 그 많던 재산을 한꺼번에 다 날리고 빚까지 얹어서 끝이 났다. 사채까지 끌어 써서 결국 집을 팔았다. 화장실이 바깥에 있던 집으로 이사를 갔다가 그 집의 월세마저 해결하지 못해 반지하로 우리는 이사를 갔다.

어려서부터 유복하게 자랐고 용돈도 풍족하게 썼던 터라 하루아침에 집이 사라지고 빚쟁이가 찾아오고 아버지가 외상으로 마신 술값을 받으러 밤무대의 술상무가 집에 찾아오는 그런 일들이 기가 막혔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고 답답하기만 했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가난이 두려웠었다. 매일매일이 다채롭게 어둡기 짝이 없던 시절에 나는 눈뜨기가 겁이 났었다.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가난의 구름이 두려웠고 유학을 가고 싶었던 나는 아버지가 무척이나 원망스러웠었다. 그런 나 자신이 더 싫어서 매일 술을 마시고 나를 잊기 위해서 밤을 새우며 책을 읽었다.

아이들을 키울 때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적당한 가난이 허락돼서 다행이었다는 박완서 작가의 수필을 읽고 마음에 와닿았었다. 나는 가난을 겪어보지 못해서 힘이 들었다. 늘 돈이 넘쳤고 먹을거리며 학용품이 집안에 넘쳤었다. 돈이 없어서 살 수 없고 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는 것을 겪어본 적이 없었다. 70년대 어려웠던 시절에 매일 김치볶음을 싸 오는 친구의 도시락을 오히려 탐을 냈던 철부지로 자랐는데 그 글을 읽으며 내 자식은 너무 풍족하게 키우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나처럼 세상물정 모르고 자라서 한꺼번에 폭풍우를 맞지 않기를 바랐다.

남편이 사업을 접고 일 년이 넘도록 생활비를 못 받는 생활이 이어졌고 아이들 몇 명을 가르치면서 받은 적은 돈으로 생활을 했다. 아들에게 집안 사정을 설명하고 다니던 피아노와 레고학원을 그만두자고 했다. 아들은 레고는 더 다니면 안 되냐고 오래 울었다. 레고학원 원장님이 사정을 봐주시고 학원비를 절반으로 줄여줬다. 아들은 집안의 사정에 적응해 갔다.

아들은 지금도 돈을 아껴 쓰는 편이다. 생각보다 아들이 알뜰하게 사는 걸 보고 놀랄 때가 있다. 물건뿐 아니라 경제관념도 나와는 다르다. 아들이 꼬박꼬박 적금을 넣는 것도 신기하기만 하다. 가끔 자기를 위해 사치를 부리기도 하는데 그건 꼭 나를 닮은 것 같다. 그래도 허투루 살지 않고 이거 저거 따져가며 경제적으로 살아가는 아들을 보니 대견하다. 게다가 아들은 십 년이 넘게 가정불화를 견디며 살았다. 다른 아이들과 달리 우울한 가정에서 자란 어린 아들은 그 힘든 시간들을 다 버티고 제 몫을 찾아 열심히 살아간다. 오래 마음고생을 해서 그런가 다른 사람들 마음도 헤아릴 줄 안다. 나는 아들이 대견하고 자랑스럽지만 그 시절이 아들한테는 상처로 남아있을까? 나랑 완전히 반대의 상황에서 살았다는 그 얘기가 오래 귓전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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