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보카도

by 송나영

싹이 텄다. 지난겨울에 심었던 아보카도였다. 아보카도를 먹다가 문득 이거 심으면 싹이 날까 호기심이 일었다. 화분에 묻어두고는 가끔 물이나 주곤 했다. 봄도 지나고 여름도 지났다. 씨가 썩었겠다 싶었지만 화분 치우기가 귀찮아 그대로 두었다. 그리곤 올여름에 오이지 만든다고 밭에서 가져온 돌을 그 화분에 올려뒀다. 싹이라곤 틔울 생각도 없는 아보카도였다.

아보카도가 물을 많이 먹는단다. 엄청난 양의 물을 먹고 환경을 파괴하는 식물이라고 후배가 얘기를 해줬다. 모르는 일들이 참으로 많다. 그랬구나. 아보카도가 그런 식물이었구나. 아보카도를 먹고 나서 나오는 커다란 씨가 매번 너무 아까워 단 한 개를 심었었는데 말이다. 물을 많이 먹는다니 내가 그럼 물을 너무 적게 줘서 싹이 안 나오나 싶어서 그 얘기를 듣고부터 흙이 물이랑 같이 흘러넘칠 정도로 물을 줬다.

여름도 가고 가을로 들어서는 길목에서 화분 정리를 했다. 아는 분께 얻어온 고무나무 가지를 심으려고 화분에 흙을 붓고 휘청이는 고무나무를 고정시키려고 오이지 눌렀던 돌을 집었다. 대단하다! 내 눈을 의심했다. 그 돌을 밀어 올리며 싹이 난 것이다. 생명은 참 대단하다. 돌 밑에 깔려서도 그 틈을 비집고 싹을 올리고 있었다. 얼른 돌 두 개를 고무나무 화분으로 치우고 싹을 봤다. 작지도 않았다. 나도 모르는 새에 쑥쑥 싹을 올리고 있었던 거다. 아보카도가 기특하다. 기특해.

아보카도가 싹을 틔웠다고 동네방네 자랑을 했더니 그럼 아보카도를 수경재배 하지 않았냐고 한다. 무슨 일을 하든 미리 알아보고 정보를 찾아보는 건 내 머리에 없는 모양이다. 무턱대고 흙에 아보카도 씨를 심기만 하면 자랄 줄 알았으니 내 무식함이 더 희한하다. 뒤늦게 아보카도 키우기를 찾아보니 그동안 참 무지했다 싶다. 그럼에도 아보카도는 내게 기쁨을 줬다. 매일 손가락 한 마디씩 자라는 거 같다. 어제는 잎이 새초롬하게 나있더니 며칠 지나 보니까 잎사귀가 점점 커진다.

참 오래 걸렸다. 씨앗이 싹을 틔우기까지 거의 반년을 넘긴 거 같다. 자식을 키우는 것도 아보카도처럼 아들한테 맡기고 좀 내버려 뒀으면 좋았으련만 왜 그리 일일이 간섭을 했는지 돌아보면 후회할 일 투성이다. 아들의 말버릇처럼 알아서 한다고 했을 때 내버려 두어야 하는데 교육이랍시고 잔소리만 늘어놨던 나다. 아들을 이해하는데 내가 오래 걸렸다. 아들은 아보카도처럼 쑥쑥 자라고 있었는데 내가 부모로 성장하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아들을 믿어주고 바라보기만 했어도 좋았을 거다. 제 뜻대로 자랄 시간을 주고 실패도 해보고 성장도 해보게 지켜봤으면 더 좋았을 거다.

아들의 사춘기는 내 갱년기도 잊게 만들었었다. 그동안 쌓였던 불만과 화가 활화산처럼 터졌을 때 나는 기름을 부었다. 아들을 비난했고 정말 하지 말았어야 했을 말도 폭포처럼 아들에게 쏟아냈다. 사랑과 정성으로 키우지도 못하면서 비난과 평가로 재단만 한 거다. 아들을 이해하기는커녕 나를 이해시키려고 더 난리를 쳤던 거 같다. 애가 순하다고 말을 안 한다고 괜찮은 건 아니었는데, 아들의 마음을 읽어주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는데 말끝마다 아들을 비난했고 참견했다. 결국 아들은 입을 다물었었다. 일 년이 넘도록 아들은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았고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남편에 대한 믿음을 완전히 잃었던 나는 입을 다물었고 나에 대한 기대를 모두 저버린 아들은 나한테 입을 다물었다. 우리는 모두 각 방에서 대화라고는 전혀 없이 그렇게 살았다. 참으로 나는 모지리 엄마였다.

아들은 이제 아보카도처럼 쑥쑥 자란다. 나는 지켜볼 뿐이다. 그동안 참견한 게 미안해 자주 연락하지 않는다. 가끔 문자를 보내면 바쁘지 않을 때는 바로 답장이 온다. 요즘 정신없이 바쁘게 사나 보다. 답장이 없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아들이 알아서 잘해나가리라 믿는다. 아보카도처럼 환하게 잎사귀를 펼치면서 성장해 나갈 것을 믿는다. 그동안 마음고생 잘 버티고 잘 살아줘서 고맙다, 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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