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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나영 Apr 03. 2024

위로

  되감기가 안 되는 인생에서 반을 넘어왔다. 세상은 힘겨울 때가 더 많았다. 우연의 연속이었고 때로는 하늘에 손이 달렸다고 느낄 만큼 기적도 경험했다. 그 기적은 늘 삶의 구렁텅이에서 만났다. 학교를 다니는 동안 순탄했던 건 그나마 다행이었다. 직업을 구하고 자리를 잡아가기까지 좌충우돌 허겁지겁 살아왔다. 분명 내가 하고 싶어서 했던 일이었건만 꿈꾸던 것과 달라 결국 글 쓰는 일을 관뒀었다. 세상은 녹록지 않았고 늘 망망대해에 떠있는 거 같았다.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했고 또 다른 세상을 만났다. 가족을 만드는 일은 더 쉽지 않았다. 다들 녹아들길래 나도 그럴 줄 알았다. 스며들고 녹아들 거라 생각했다. 남들이 반대하는 결혼에는 다 이유가 있기 마련인데 그게 아니라고 증명하듯 버티고 살았다. 그게 다 욕심이다. 힘에 겨운 일인데 나 자신을 속인 거다. 힘이 들면 잠시 쉬어도 되고 남한테 기대도 되는데 그걸 못한 거다. 

  개그우먼 이영자가 어느 프로그램에서 자신은 부모님의 사랑을 받지 못해서 늘 방황했다고 울먹였다. 사랑을 표현해줘야 한다고. 부모한테 못 받은 사랑을 채우기 위해 세 자매가 서로 사랑으로 똘똘 뭉쳐서 힘내고 산다고 했다. 부모의 격려보다 비난을 더 많이 듣고 자란 사람은 가장 힘들 때 기댈 데를 찾아 방황한다. 아무리 나 혼자 잘 버티고 있다고 잘 해내고 있다고 위안을 삼아도 쉽게 무너진다. 삶에 실망하고 내가 못나 보일 때 스스로 다독여야 하는데 격려 통장이 비었으니 휘청거린다. 지켜봐 주고 믿고 기다려준 부모의 사랑을 못 받은 사람은 스스로를 챙길 수밖에 없다. 자식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 엄마를 만날 수가 없다. 또 어떤 독설로 나를 망가뜨릴지 두렵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엄마는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 더 커졌고 장녀인 나에게 생활비를 기대했었다. 잘 나가는 엄마친구 자식들과 비교했다. 생활비를 달라는 말은 다들 자식들한테 얼마씩 받는다는 말로 대신했다. 나의 밥벌이를 한심하게 보았고 제대로 된 수입을 가져오지 못하는 것을 비난했다. 직업을 선택하기까지 나의 고민과 방황은 당신에게 늘 못마땅한 거였다. 나이 들면서 가장의 자리가 더 버거웠던 당신은 모진 말을 쏟아냈다. 혹독한 소리는 두렵다. 나를 더 무너뜨린다.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한 나는 더 미움을 샀다. 당신의 자존심을 무너뜨린 거였다. 엄마의 독한 말을 끄집어내서 한바탕 말씨름을 했다. 엄마는 잔인한 말을 다 잊었다고 했다. 아직도 너는 그걸 못 털어버리고 산다고 내 입을 다물게 했다.  

  나는 지금 위로가 필요하다. 위로는 늘 말없이 바라보던 아버지의 몫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할 때, 일이 잘 안 풀릴 때, 살아있는 엄마보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찾는다. 당신의 영탑을 마주 대하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가장으로, 부모로 책임져야 할 게 많은데 두렵다. 몸이 예전 같지 않아 자꾸만 서글퍼지고 돈을 버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더 두렵다. 당장 생활비가 떨어져도 버텼고 결국 다 살게 마련이란 걸 겪었으면서도 두렵다. 불안은 자꾸 우울을 부른다. 하루에도 몇 번씩 슬펐다 가라앉았다 한다. 그럴 때마다 누구한테 전화해야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 고민한다. 

  시간 오래 걸리게 분무기로 물을 줘야 돼. 아침부터 울적해서 전화했다. 친한 언니가 화초를 사라고 했다. 비싼 거 사지 말고 싼 화분 사서 한꺼번에 물을 주면 안 된다고 시간을 오래 들일 수 있는 안개처럼 물이 나오는 분무기로 물을 주란다. 어느새 시간이 남는 나이가 됐다. 그렇게 모자랐던 시간이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넘치게 길어졌다. 돌아서면 할 일이 태산이었는데 지금은 딱히 할 일도 없다. 얼른 나가서 꽃 하나 사서 분무기로 물 주고 사진 찍어서 인증하라는 말에 용기를 얻는다. 내 의지는 바닥이 났고 누군가 끌어주니까 기댈 수 있어 좋다. 

  친한 형님께 울적한 마음을 털어놨다. 일을 하러 나갈 때마다 더 우울했다. 당장 일하러 나가야 하는데 눈물이 들랑달랑한다. 쉬면 안 된다는 걸 아는데 내 마음과 몸은 너무 쉬고 싶나 보다. 감정이 조절이 안 된다. 형님의 따뜻한 목소리와 쉬어야 되는데 쉴 수도 없고라는 말에 울컥하는 마음이 풀렸다.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터졌다. 명랑하고 씩씩하던 네가 웬일이냐고 우울증 약을 먹으란다. 그러다 자리에서 못 일어난다고 걱정하셨다. 한바탕 울고 나면 일하러 갈 만 해진다. 시끄러운 속이 가라앉는다. 어차피 내가 해야 할 일이고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데 내 마음만 바꾸면 되는데 그 마음 바꾸기는 정말로 쉽지 않다. 인생은 버티는 거야, 버텨야지 어쩌겠니. 형님 말씀처럼 버텨야 한다. 노년을 살아내기 위해서는 이 방황을 버텨야 한다. 무너지지 않고 드러누워 지내지 않기 위해서는 위로가 필요하다. 오랜만에 만난 선배에게서 다른 선배들의 근황을 들었다. 회사에서 오래전부터 퇴직을 종용당하고, 조기 은퇴해서 노년 자금에 대해 불안해하고, 건강이 나빠졌다고 했다. 불안과 두려움이 선배들의 미래를 잠식해 버렸다. 씁쓸하게도 선배들의 서글픈 삶이 위로가 되기도 한다. 

  위로받기 위해서 아무한테나 말하면 안 된다. 나를 어설프게 아는 사람들에게 괜히 말했다가 속상할 때도 있다. 또 가려서 들어야 한다. 내가 무너져 있기에 말에 치일 수 있다. 나를 위한 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어쩔 때는 받아들이기 힘겹고 아플 때도 있다. 그래도 마음을 아는 이위로는 힘이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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