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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나영 Apr 18. 2024

분수

  자기 주제를 알아야 제대로 하지. 내 말에 아들 친구 엄마는 팔딱 뛰었다. 자기 주제란 말이 너무 싫다고 누구나 열심히 하면 다 잘할 수 있는데 자기 분수란 말로 경계를 짓는다고 화를 냈다. 내 주제를 알아야 나의 한계도 알고 거기에 맞춰 힘들이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사는 게 그다지 쉽지 않은데 내가 뭘 잘하고 뭘 못하는지 정도는 적어도 파악하고 있어야 하지 않나? 마냥 꿈만 꾼다고 될 일인가? 불나방이 될지 나비가 될지는 결국 본인이 선택하는 거다.

  사기당하기 딱 맞는 성격인데 어떻게 여태껏 사기는 안 당했냐고 친한 오빠가 그랬다. 내 주제를 알아서 그나마 사기는 안 당하고 산다. 돈 버는 일에는 관심이 많지만 일확천금에는 별반 관심이 없었다. 또 돈에 밝지도 않고 돈계산도 흐린 내 정신으로는 푼수 없이 투자에 선뜻 덤비지도 못했다. 굶지 않고 적당한 수준의 문화생활을 누릴 정도면 족했다. 맛있는 거 사 먹을 여력이 있으면 된 거라 생각했다. 동네 할머님께서 돈은 눈이 밝아서 아무나 친하게 지내지 않는다고 하셨다. 내가 빠지는 게 당연한 거다.

  유복하게 자란 덕분에 돈에 연연하지는 않았다. 70년대에 우리 집에는 티브, 냉장고, 전화기까지 다 갖춰져 있었다. 수완 좋은 어머니 덕분에 늘 풍족했다. 콜라, 환타, 사이다를 박스로 사서 쟁여놓고 먹었다. 매일 구멍가게에서 5원짜리 라면땅과 10원짜리 짱구를 사 먹기에 용돈이 충분했다. 집에 있는 제네럴 일렉트릭 티브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나는 우리 집 아래 사는 미정이네로 가서 매일 라디오로 아동 연속극을 같이 들었다. 미정이는 나보다 언니였는데 일하시는 부모님 대신 늘 동생들을 돌봐야 했다. 미정이네는 형편이 어려웠다. 오랜만에 닭을 삼는 날이면 미정이는 뼈가 바짝 마를 때까지 닭뼈를 쪽쪽 빨았다. 그 모습이 부러워서 미정이를 따라 닭뼈의 진국을 빨아먹고 미정이 동생들과 같이 미정이를 졸졸 따라다녔다. 부모님이 안 계신 건 마찬가지지만 우리 집에는 일하는 언니가 있었다. 나는 늘 심심해서 미정이네 붙어살았다. 우리 집에는 온기가 없었지만 미정이네는 동생들과 오그르르하는 따뜻함이 있었다.

  분에 넘치게 살았다. 한 번도 집주인의 눈치를 본 적도 없었고 셋방살이의 설움도 모르고 자랐다. 신문사에서 해직당한 아버지는 덩그마니 아이들만 집에 둘 수 없어 불안해하다가 재취업의 시간을 흘려보냈다. 다른 신문사에서 오라고 했지만 아버지는 원래 다니던 직장보다 수준이 낮아 안 갔다고 하셨다. 국민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실직상태였던 아버지는 내가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나서야 동네 전파상 주인의 꼬임에 빠져서 전기사업을 시작했다. 말이 전기사업이지 전기에 문외한인 아버지는 동네 전파상이 하라는 대로 물건을 샀고 달라는 대로 돈을 줬다. 장사 잘 된다는 곳마다 있던 수십 개의 상가들을 몽땅 처분해서 급하게 시작한 전기사업은 물론 몇 년도 안 돼 그 많은 재산을 홀랑 다 날렸다. 아버지는 주제를 몰랐던 거다. 당신이 알지도 못하는 것을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남의 말만 듣고 덤벼들었다. 사업을 해 본 적도 없는 사람이 잘할 수 있다는 마음만 앞서서 무모한 도전을 한 거다. 순식간에 돈은 흘러나갔고 어디에 무엇을 했는지도 모르겠지만 사채까지 끌어다 쓰는 바람에 집안에는 빚쟁이들이 찾아왔다. 숨겨둔 엄마의 패물은 순식간에 없어졌고 애꿎게 파출부 아줌마만 의심을 사고 일을 그만두셨다. 미국 유학에 대한 꿈을 못 버리던 나는 아버지를 원망했다. 박완서 님의 어느 수필집에서 아이들이 클 때 나에게 허락된 가난에 감사하다는 글귀가 마음에 박혔다. 스물이 넘어 처음 겪는 궁핍에 나는 두려웠다.

  실패를 인정하기까지 아버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당신은 그래도 일을 하지 않냐고 엄마에게 돈 버는 사람이 더 낫다고 편하게 말하기까지 아버지는 마음의 파도를 탔다. 왕년에 잘 나갔던 시절을 잊지 못하고 다 잘할 수 있으리라는 욕심을 내려놓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자기 분수를 아는 것은 쉽지 않다. 끊임없이 나를 확인하고 실패해야 한다. 도전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게 실패다. 실패하면 안다. 나한테 맞지 않는 옷이라는 것을, 다른 걸 찾아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이 다르고 하고 싶은 것과 하는 것이 다르기도 하다. 잘하는 것이 좋아하고 하는 일이 되면 참으로 다행이지만 아닐 때가 더 많은 듯하다. 나의 밥벌이로 택한 강사는 내가 하고 싶은 게 아니었다.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얼마 안 돼서 오랜만에 만난 동창이 친구의 소식을 들려줬다. 그 친구는 피아노를 전공하다가 미술로 전공을 바꿨다. 공부는 꽤 잘했지만 미술은 누가 봐도 재능과 거리가 멀었다. 도대체 왜 미술이 하고 싶을까라는 생각이 너무 자연스럽게 들 정도로 그림실력이 형편없었다. 성적이 좋았기에 더 의아했다. 최고 대학의 어느 과든 갈 수 있는 높은 성적에도 불구하고 미술대학 입시에 실패했고 그다음 해 그 친구는 다시 도전해 합격했다. 노력이 재능을 이기는구나, 하고 싶다는 열망이 꿈을 펼치게 하는구나 싶었다. 나를 잘 알고 어울리는 옷을 만들 때 가장 멋진 내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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