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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나영 May 05. 2024

괴물

  괴물은 누구인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괴물'을 봤다. 괴물을 만들어내는 다양한 시각을 전달한다. 엄마는 자신의 아들을 괴롭히는 선생을 괴물로 만들고, 선생은 왕따인 친구를 돕는 아들을 괴물로 만들었다. 정작 친구를 왕따로 만들고 동네에 선생에 대한 나쁜 소문을 내는 아이는 부각하지 않았다. 사실이 사실인지 모를 일이다. 

  아들이 애들을 때리고 다닌다고 담임이 그랬다. 남을 때리는 애가 아닌데 도대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차분히 물어보지도 않고 다짜고짜 애를 혼냈다. 아들은 너무 황당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흥분을 가라앉히지도 않고 소리를 질렀다. 아들 친구랑 둘이 때리고 다닌다고 했다. 아들 친구도 세상에 둘도 없이 착한 아이였다. 사실을 확인하지도 않고 애를 닦달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은 그 선생은 애들을 점수로 편애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아들 친구는 공부를 못 해 그 담임한테 계속 꾸지람을 들었다. 설마 선생이 거짓말을 할 줄이야. 체육선생인 담임은 의사가 다리 부러진다고 절대 공을 차지 말랬다고 시험을 필기로 대체해 달라는 학생의 부탁을 거절했다. 어쩔 수 없이 공을 차야 했던 그 아이는 다리가 부러졌고 엄마가 결국 학교를 찾아갔다. 담임이 자기는 하지 말라고 했는데 학생이 공을 차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교장실로 찾아간 엄마는 그 체육선생한테 왜 자기 아들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냐고 꼭 그 공을 차야만 했냐고 따졌다. 

  주변에서 오해를 자주 사는 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착했고 다른 애를 때릴 줄 몰랐다. 동네 영어학원에서 다른 학생한테 폭행을 당했고, SNS 상에서 심하게 따돌림을 당했다. 아이 부모는 영어학원에서 왜 이런 일이 벌어졌냐고 차분히 따졌지만 학원장은 엄마가 극성맞다는 말로 폭행당한 아이 가족을 욕하고 다녔다. 그 아이는 자기를 방어하는 말을 할 줄 몰라서 늘 피해자가 됐다. 중3 기말시험에서 앞에 앉은 학생 의자에 누군가가 뾰족한 물건을 두었는데 다친 앞자리 친구가 뒷에 앉은 이 아이를 지목했다. 학폭으로 신고당하고 억울함을 호소하던 이 아이는 숨이 안 쉬어진다고 했다. 

  '괴물'에는 괴물 아버지가 나온다. 아들한테 돼지 뇌를 가졌다고 폭행하고 아들을 쓰레기 취급 하는 그런 쓰레기 아비다. '소년일기'라는 홍콩 영화 기사를 읽었다. 가장 잘 나가는 변호사 아버지는 아들을 공부도 못 하고 무엇 하나 잘 못 한다고 쓰레기로 취급한다. 홍콩대학에 가려면 노력해야 한다고 쓰레기처럼 가치 없는 놈이라고 두들겨 패더니 어느 날 팰 가치가 없다고 때리지 않는다. 아이는 자신이 중요한 사람이 아니며 진짜 쓰레기라고 옥상에서 뛰어내린다. 나도 자식한테 서슴지 않고 상처를 주는 말을 하는 부모다. 나 자신의 못난 모습이 떠올라 낯이 뜨거워졌다. 엄마의 폭언을 듣고 서 있던 아들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어떤 변명으로도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다.  

  경쟁은 괴물을 만든다. 내 자식이 남들보다 잘하길 바라니 쓸데없는 경쟁심에 자식을 그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자식은 부모의 모습이 담겨있는데 그건 잊고 욕을 퍼붓는다. 무한경쟁시대라는 말을 들은 지가 거의 삼십여 년이다. 남들보다 잘 나기 위해 악착스럽고 영악하게 굴어야 한다. 착하고 마음 따뜻한 아이들은 경쟁에 치여서 자리를 잃어간다. 상대가 때려도 폭력은 나쁜 것인 아는 착한 아이들은 맞고 만다. 한 명이 때리면 주변은 당연히 거기에 힘을 보탠다. 무시하고 멸시한다. 착한 아이들은 소리를 낮추고 숨을 죽이고 살아간다. 괴물은 나 보란 듯이 활보하면서 세상을 살아가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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