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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나영 May 07. 2024

눈치

  아들은 눈치 없는 사람을 제일 싫어한다. 나는 눈치가 없고 눈치를 보는 것을 제일 싫어한다. 아들이 식당이나 새로운 장소에 가서 주변을 훑어보면서 어떻게 행동할지 눈치를 보면 왜 눈치를 보냐고 한소리 했다. 아들은 눈치를 살피면서 자랐다. 부모의 싸움소리가 커지고 집안에 냉기가 돌면 어떻게 행동할지 고민을 많이 했을 거다.

  갑자기 하고 싶은 게 생기면 멧돼지처럼 저돌적으로 달려들었다. 무엇이 갖고 싶거나 머리에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바로 행동으로 옮겨야 했다. 뇌에 꽂힌 생각이 나를 지배해서 주변을 살피는 일은 애당초에 없었다. 문방구에서 본 물건이 갖고 싶어서 눈에 아른거리면 장롱을 열고 부모님 옷 주머니를 다 뒤졌다. 운이 좋게도 주머니에는 돈이 들어있을 때가 많아서 어떻게든 갖고 싶은 것을 순식간에 해결했다. 엄마가 모아놓은 빳빳한 천 원짜리, 오백 원짜리 신권도 다 내 입으로 들어갔다. 생각을 바로 행동으로 옮기니 아버지는 나를 불한당이라고 했다. 신중하고 꼼꼼한 아버지는 내가 불안해 보였고 당신에게 나는 늘 일을 저지르는 아이였다. 명절을 대비해서 혹시라도 넘어져서 다칠까 봐 화분 같은 물건들을 일주일 전부터 치우셨다. 당신은 모든 걸 별거 아니라고 여기는 나를 위험에 몸을 맡기는 걸로 판단하셨다.

  아버지는 생각이 많았다. 사업을 망하고 술에 기대 몇 년을 산 뒤에, 몇 년을 누워서 사업을 구상했다. 당신이 연을 만들어 파는 사업은 어떻겠냐고 구체적인 계획까지 말씀하셨다. 연이 뜬금없었지만 해보시라고 했다. 그냥 하면 되지 않냐고 했다. 실패를 몇 번 한 아버지는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고 그때부터 안 되는 이유 백 가지를 늘어놓으셨다. 생각과 동시에 움직이는 나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됐다. 왜 의논을 하자고 하는 건지, 안 되는 이유가 그렇게 많으면 관둬야지 큰소리가 오가고 끝이 났다. 몇 번의 계획은 저 자식 하고는 말이 안 통한다는 호통으로 모두 무산됐다. 나의 20대는 내 삶의 계획으로도 머리가 터질 지경이어서 당신의 두려움을 읽을 만한 여유가 없었다. 다시 시작하시라고 용기를 드릴 만한 말의 배려가 없었다. 하든지 말든지 단순하기 짝이 없는 냉정한 말만 했다.    

  눈치가 없으니 당돌하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나이를 가리지 않고 할 말은 꼭 했다. 결혼하고 얼마 안 돼 작은 시누이가 아버지가 오면 꼭 먹을거리를 드리라고 당신이 그걸 아쉬워한다고 전해줬다. 나는 늘 무엇을 드실 건지 여쭤봤고 괜찮다고 돌려서 말하는 걸 눈치를 못 채서 아무것도 드리지 않았다. 다음에 나는 드시고 싶다고 말씀을 하지 왜 안 하셨냐고 물어봤다. 가까운 곳에 살던 시부모는 매일 번갈아 우리 집에 들렀다. 원래 살던 단독 주택이었고 대문 열쇠를 갖고 있기 때문에 아무 때고 연락 없이 들어왔다. 당신들의 무례함에 지친 나도 무례함으로 맞섰다. 한여름에 옷을 제대로 챙겨 입지도 않았고 너무 피곤한 날은 현관문을 잠가버렸다. 잡상인이 많이 들어온다는 말로 대신했다. 당신들이 내 욕을 하고 다니고 점점 안 보는 사이로 변해갈 즈음 시외할머니가 나보고 무조건 잘못했다고 시부모께 찾아가서 사과하라고 했다. 당신 아들이 폭력을 휘둘렀고 사네마네 한 것을 다시 살아보자고 마음먹고 사는데, 내가 이유도 없이 욕만 잔뜩 먹고사는데 왜 내가 사죄를 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지 아래서 위로 치솟아 흐르지 않습니다."라고 시외할머니에게 대답을 대신했다. 그 이후에 당신은 나를 상대하기가 버거웠는지 작은 외삼촌을 보내셨다.

  할 말은 다 해야 직성이 풀리니 적을 만든다. 냉정하고 잔인하게 난도질하듯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되는데 나의 말이 비수가 되어 날아갈 때도 있었다. 내가 자기를 무시한다고 했다. 아이 아빠는 부모한테 늘 무시당하고 인정 못 받던 사람이라 나의 말들이 칼이 되어 날아갔다. 자식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너 때문에 어떻다는 둥 해서는 안 될 말들을 했다. 눈치 안 보고 사는 바람에 나의 말들은 참지 못하고 터져버린다. 아들의 심경을 헤아리지도 않고 생각과 동시에 말은 날아간다.

  어떻게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살 수가 있을까? 다들 그렇게 사는데 나는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살았다. 눈치도 보지 않고 하고 싶은 것도 다 하고 살았다. 돌이켜 보면 내 경솔한 행동과 말이 실패를 부르고 남에게도 나에게도 상처를 남겼다. 조심스럽지 못하다고 아버지한테 꾸지람을 들었다. 안회는 너무 신중해서 세 번 생각한다고 한 번만 생각하고 행동해도 허물이 없었다는데 나는 허물투성이로 살았다. 조급한 성격에 실수도 많고 손해도 많이 본다. 도 아니면 모로 사니 남들이 보기엔 위태위태해 보인다. 이제 조금씩 조심성이 생긴다.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는 일도 가끔 있다. 아들이 나를 제지시킨다. 어려서부터 뭐든지 느리고 천천히 생각하고 행동했던 아들은 성급하게 판단하지 않는다. 엄마, 아직 결정하지 않았어, 생각해 볼게. 나를 아는 아들은 닦달할까 봐 미리 말을 전한다. 기다릴 수밖에 없다. 아들은 외할아버지를 닮았다. 생각이 많고 신중해서 함부로 행동하지 않는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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