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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나영 May 15. 2024

기억

  기억만큼 엉망이고 일치하지 않는 게 또 있을까? 동생과 나는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을 완전히 다른 기억으로 살았다. 동생의 대학입학시험을 앞두고 아버지는 사업에 실패했다. 순식간에 활활 타버린 돈은 집을 옮기게 했다. 화장실이 바깥에 있던 용문동에 있던 그 집으로 이사하던 날 가구가 집에 안 들어가서 대문 밖에서 가구를 친척집으로 보냈다. 침대 서랍장에 있던 속옷이 햇볕 쨍쨍한 대낮에 낯부끄럽게 펼쳐져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반지하로 이사를 갔다. 월세를 책임지겠다는 아버지의 말은 껍데기였고 늘 고주망태로 밤새 식구들을 들볶았다. 당신은 실패를 견디지 못하여 술에 의지했다. 밤새 식구들을 들볶을 때 나는 밖에서 술을 퍼마시고 다녔다.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부녀가 술을 마셨다. 어쩌다 오래간만에 일찍 들어온 집은 밤새 술을 마시고 푸닥거리에 지친 아버지는 주무셨고 조용했다. 그건 내 기억이다. 동생은 술주사로 소리 지르는 아버지를 피해 엄마와 함께 자주 차로 도망쳤다고 했다. 동생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으로 넌더리를 쳤다. 

  매일 식구를 괴롭힌 아버지를 향해 알코올중독이라고 치료받아야 한다고 악을 썼고 결국 아버지는 나를 향해 술병을 날렸다. 술병의 파편이 손목을 스치고 피가 흐르자 겁 많은 아버지는 큰 눈이 더 커져 밖으로 나가셨다. 그리고 한동안 조용했다. 아버지의 술주사를 멈추게 하기 위해 엄마는 술 끊는 약을 국에 탔다. 그 약을 먹고 술을 마셔서는 안 되는데 그걸 알 리 없는 아버지는 술을 마셨고 뭔가 몸이 이상했는지 며칠을 누워 지냈다. 나는 기억에 없다. 동생이 고3이었을 때 아버지는 늘 누워있거나 술에 취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어떻게 그 고된 시간이 끝났는지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시간은 흘렀고 끔찍한 한밤중의 광기는 끝났다. 

  필터가 타들어갈 때까지 담배꽁초를 붙들고 하얗게 변한 담뱃재가 떨어지지 않았다. 아버지의 얼굴도 담뱃재만큼 하얗게 타들어갔다. 동생의 입시를 위해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엄마를 기다렸다. 돈을 가진 엄마가 와야 갈 수 있었다. 주머니가 빈 아버지는 초조했다. 실기시험을 치르기 위해 학교로 가야 하는데 돈 버느라 바쁜 엄마는 제시간에 오지 않았다. 아버지의 담배가 슬펐다. 손이 타들어가도록 담배꽁초를 놓지 않고 붙들고 있었다. 동생은 입시에 대한 기억에 아버지가 남아있지 않다.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매일 아침마다 눈뜨기가 고역이었다. 오늘도 살아야 한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어떻게 오늘 하루를 살지 그런 날들이었다. 

  동생이 합정동이었나 망원동이었나 그 언저리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피아노를 쳤다고 했다. 저녁시간에 배고픔을 참고 식사를 하는 사람들을 위해 피아노를 쳤다고 했다. 내가 아는 동생이 맞나 싶었다. 겁 많고 깔끔 떠는 동생이 어떻게 그 자리를 얻었는지 짐작도 안 되는 일이다. 엄마한테 용돈을 얻어 쓸 수 없었기에 피아노 개인교습을 하는 줄로만 알았다. 피아노를 전공했던 동생은 꼭두새벽에 집을 나섰고 오밤중에 들어왔다. 한동안 동생은 집에서 누워만 지냈다. 사귀던 남자친구와 사이가 점점 벌어지면서 학교도 안 가고 누워만 있었다. 등록기간조차 챙기지 않아서 학교에서 제적당했다가 재등록을 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우리는 서로 얼굴 마주칠 시간도 없이 바빴다. 동생은 돈 벌기 바쁘게 옷을 샀고 신발을 샀다. 옷차림에 관심이 많은 동생은 엄마가 사주지 않는다고 치장하기에 번 돈을 다 썼다. 나는 그것만 기억했다. 동생은 동쪽에서 서쪽까지 서울을 가로지르며 알바를 했고, 우리는 집에 살았지만 전혀 다른 세상을 살았던 같다. 

  동생이 먼저 시집을 가면서 우리는 사이가 더 나빠졌다. 우리는 원래도 성격이 달라도 너무 달라서 같은 공간에서 삼십 분 이상을 평화롭게 지낼 수 없었다. 동생은 약혼식을 하면서 온갖 짜증과 화를 부렸다. 함이 들어오던 날 동생은 폭발했고 아침부터 온 집을 청소하면서 손님 맞을 준비에 땀을 뻘뻘 흘리던 나는 황당했다. 어디 나갔다 들어온 동생은 두 눈을 부릅뜨고 화를 냈고 손님이 오기 전이라 아줌마와 음식 준비를 하던 나는 화를 삭일 새 없이 분통 터지는 마음으로 손님을 맞았다. 언니보다 먼저 시집간다고 엄마는 동생한테 싫은 소리를 많이 했던 모양이다. 언니보다 먼저 시집가면서 좋은 척하지 말라고 한 신신당부가 화살이 되어 나한테 날아왔다. 시집갈 마음이 없던 나는 별반 동생에 대한 시샘도 없었고, 동생과 헤어지는 대한 애틋한 마음조차 없었는데 그런 말을 해서 투닥거리게 만들었는지 모를 일이다. 세상 관습에 따라야 한다는 생각이 자식을 힘들게 할 때가 있다. 마음을 너무 헤아려도 힘들다. 

  동생과 지난 시절을 얘기하다 내가 기억하는 시간과 아버지가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같은 공간에서 만났던 우연들이 얼마나 다른 기억으로 남아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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