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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나영 May 23. 2024

ADHD

  "에휴" 학부모한테 대놓고 한숨을 쉬는 담임을 봤다. 골치 아픈 애를 맡았다는 싫은 티를 역력히 냈다. 담임이 피리를 담당하는 선생이라 반 아이들은 모두 피리를 불어야 한다고 했다. 주의력결핍장애라 피리를 배우기 힘들 거라고 했다. 연습하면 모두 다 잘 분다고 아니라고 박박 우기는 담임한테 아무리 설명을 해도 설득을 할 수가 없었다. 무식한 사람을 설득하는 건 계란으로 바위 치기인 것이다. 내가 입 다물고 가만히 있어야 했다.

  큰 아이는 주의력결핍장애아였다. 초등학교 입학 때부터 키우게 된 큰 아이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뭐가 달라도 다른데 식구들은 아이니까 다 그렇다고 했다. 준비물을 못 챙기는 건 당연한 일이고 아침에 애를 깨워 학교를 보내는 일도 큰 일이었다. 어쩌다 밥을 먹다 뜨거운 것을 먹게 되면 뱉지 않고 나를 노려봤다. 그냥 뱉으면 될 일인데 왜 그런지 그때는 몰랐다. 반사신경이 작동을 하지 않았다. 운동신경이 거의 없다고 할 정도로 모든 운동이 꽝이었다. 이거 하라고 했다가 중단시키면 아이는 처음에 말한 그대로 하고 있었다. 피아노 학원을 2년 넘게 다녔는데 음표를 읽지 못했다. 영어 학원을 3년 넘게 다녔는데 알파벳을 몰랐다. 하루 종일 티브를 보거나 책상에 앉아 색깔 있는 고무점토로 조몰락거리며 만드는 것만을 잘했다.

  시댁 식구들은 독특했다. 식구들은 밥상에서 아무도 맛있다는 말을 안 했다. 침묵 속에서 식사를 했다. 왜 맛있다는 말을 안 하냐고 물었더니 끔찍한 기억이 많다고 했다. 감자탕이 맛있다고 하면 몇 달에 걸쳐 감자탕만 먹어야 한다고 했다. 시모는 성인 주의력결핍이었다. 내가 냉장고에 남았던 요플레를 먹는 모습을 보고 그 이후로 요플레 4개짜리를 매일 몇 달을 걸쳐 사 왔다. 집안 곳곳에는 보온 전기장판이 여덟 개도 넘었다. 홈쇼핑 중독이라 전기장판과 세제만 나오면 사들였다. 매진 임박이라는 말은 바로 결제로 이어졌다. 시모한테 몇 번씩 무언가를 설명했더니 시부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못 알아듣는데 뭘 그렇게 설명하냐고 했다. 작은 시누이도 주의력결핍이었다. 대금결제를 안 했다는 전화를 받고 대뜸 "나와. 이 자식아." 소리를 지르며 싸웠다.

  매주 병원에서 딸 둘을 데리고 오는 엄마와 마주쳤다. 이야기를 너무 재미있게 했던 그이의 주의력 결핍 장애에 대한 이야기는 의사의 말보다 훨씬 와닿았다. 본인은 주의력결핍이라며 ADHD인 사람은 딱 한 가지만 잘한다고 했다. 자기는 요리를 잘한다면서 남편이 자신을 계속 칭찬해 줘서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자기 엄마가 아마도 주의력결핍이었을 거라면서 집안 청소를 하고는 지쳐서 아이가 학교에서 오는 것도 모르고 아이스크림 한 통을 무릎에 끼고 앉아 퍼먹으면서 넋을 놓고 티브를 보고 있었다며 그 모습이 자신은 안 잊힌다고 했다.

  왜 애들이 안 내려와? 어느 날 아침상을 치우는데 전화가 왔다고 했다. 남편의 전화에 깜짝 놀라 아이들 방에 가보니 아이들이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단다. 주의 집중이 짧아서 밥을 먹고는 방에 들어가자 학교를 가야 한다는 사실을 잊은 것이다. 자신과 친한 엄마는 아이가 바이올린을 한다며 교실에 악기를 두고 나와서 얼른 가져오라고 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안 나오길래 교실에 가봤더니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있더란다. 그 엄마는 악기를 내던졌다고 했다. 자신은 아이들이 학교 가는 것을 잊은 것에 충격을 받고 그 길로 통영에서 서울로 올라왔다고 했다. 자기처럼 주의력결핍장애가 분명하다고 신경정신과를 찾은 것이다. 그 엄마 말로는 주의력결핍은 점점 공부하기가 힘들다고 했다. 어느 순간 갑자기 이해가 안 되고 수학은 점점 더 힘들어졌다고 했다. 친구들과 쉽게 친해지는데 어느 순간 사람들의 말이 잘 안 들린다고 했다. 모임이 커지면서 사람들이 자기 흉을 보는 것처럼 느껴져서 다른 사람들 뒷담화를 해서 모임을 깨뜨린다고 했다. 새롭게 배우는 건 힘이 든다고 했다. 그러나 배운 게 틀려서 다시 고쳐야 하는 경우는 세 배는 더 힘들다고 했다. 이미 몸에 익은 습관은 더 고치기 힘들다고 했다.

  "사는 게 많이 힘들었겠네." 애아빠는 눈물을 흘렸다. 병원에서 만난 아이 엄마의 도움으로 남편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됐다. 판단이 안 된다고 했다. 신호등이 있는 사거리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늘 고민이었다고 했다. 큰 애가 먹던 주의력 결핍 약을 남편에게 줬다. 별반 효과가 없어서 남편도 아이가 다니는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하고 약을 먹었다. 신세계라고 했다. 도대체 이 약이 뭐냐고 바로 결정할 수가 있다고 했다. 그동안은 줄담배와 줄커피로 각성 효과를 봤었다. 나이 40이 넘어서 새로운 세상을 경험했다. 전두엽이 제대로 기능을 못하는 게 맞다. 판단을 하는 것이 제일 어려웠다. 다음 날 어떤 일이 생길지 몰라 늘 밤을 새웠다.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여러 가지로 상황을 미리 고려해 본다고 했다. 아이가 다니는 병원에서는 주의력 결핍 아동은 앞말만 듣거나 뒷말만 듣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말이 길어지면 다 이해하지 못한다고 했다. 충격이었다. 내 신세한탄을 너무 잘 들어줘서 그 고마움을 가슴 깊이 간직한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봤다. 내 이야기는 듣지 않았다고 했다. 들리지도 않았고 그냥 같이 있는 게 좋아서 나를 쳐다봤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하도 꾸중을 많이 들어서 그냥 눈을 쳐다보는 걸로 듣는 척을 한다고 했다. 오래된 고마움이 허무하게 무너졌다.

  주의력 결핍 아동은 부산하다. 하지만 부산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나와 같이 살던 주의력 결핍인 사람들은 모두 부산하지 않았다. 많이 특이했다. 남들한테는 싫은 소리를 한마디도 못 하는데 식구들한테는 남보다 못한 사람들이었다. 주의력 결핍 장애인 사람들이 한 가지 일을 오래 하긴 힘든가 보다. 아이 아빠는 세 달이 지나면 일을 관뒀다. 작은 시누이도 세 달 이상 같은 회사를 다니기가 힘들었다. 머릿속이 항상 정신 사납다고 했다.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가 꼬여 있는 것처럼 삶이 자꾸 엉켰다. 산만한 정신머리와 강박과 우울이 함께 했다.

  잘 알지 못하는 것은 색안경을 끼고 본다. 무식은 편견을 만들고 관심은 이해를 만들어낸다. 보지 않고 겪지 못한 세상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주의력 결핍인 사람과 살기는 쉽지 않다. 소통도 힘들고 이해도 쉽지 않다. 하지만 ADHD인 사람들은 항상 왕왕대는 산만한 머릿속을 집중시키고 살고자 애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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