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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나영 Jun 11. 2024

공짜

  인생만큼 공짜가 하나도 없는 게 또 있을까? 내가 허송세월을 보낸 만큼 나의 인생은 힘들었고 열심히 노력한 만큼 빛이 나기도 했다. 남들이 하라고 하는 건 왜 그렇게 하기 싫은지 내 성에 차지 않았다. 꼭 내 마음에 드는 것만을 선택했다. 참 어려운 길이다.

  국민학교 때는 하루가 길었다. 아무리 놀아도 하루가 다 지나가지 않았다. 심심하고 무료해서 이 책, 저 책 뒤적거리며 많이도 읽었다. 노을이 질 때까지도 정말 길었다. 왜 그렇게 시간이 더디 가는지 그때는 모든 게 느렸다. 학교를 다녀와서 같이 놀 친구가 없을 때 심심해서 방바닥에 뒹굴거리다 단잠을 자고 일어나면 벌써 아침이 온 줄 알고 소스라치게 놀라곤 했다. 학교에 간다고 뛰어나오면 마당은 밤이 새카맣게 내려앉아 있었다. 가장인 어머니는 밤이 늦어서야 돌아왔고 실직상태가 오래였던 아버지는 직장을 구하러 다니느라 집에는 동생과 나, 일하는 언니 셋뿐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나를 과외를 시켰다. 우리 반 남자아이와 둘이 과외를 했다. 누나가 몇 명 있던 그 친구네는 깔끔한 양옥이었다. 거의 그 친구네 집에서 수업을 했는데 정갈하게 깎은 과일이 간식으로 들어왔고 나는 회전의자에 앉아 사장놀이를 즐겼다. 수업 내내 빙빙 도는 재미에 빠졌었다. 우리 집에서 수업을 할 때가 딱 한 번 있었다. 우리 집은 작은 한옥이었는데 세 칸짜리 방과 재래식 부엌이 기역자 형태로 이어졌고 마당을 돌아 뒤로 가면 장독대와 작은 방과 재래식 화장실이 같이 붙어있었다. 나는 과외하는 친구가 우리 집에 온 것이 부끄러웠다. 친구네 집은 양옥이라 깔끔한데 왠지 우리 집은 누추한 기분이 들었다. 친구네는 식탁 같은 커다란 책상에 앉아했는데 우리 집에서는 앉은뱅이책상에서 해야 했다. 그때 마침 일하는 언니도 없을 때여서 과외선생님과 친구에게 대접할 게 없었는데 아버지가 문을 살짝 열고 동네 가게에서 과자를 잔뜩 사서 드시면서 하라고 밀어 넣어주었다. 멋쩍게 웃는 아버지의 웃음에 더 부끄러웠다. 접시에 세련되게 깎은 과일도 아니고 한 다발의 과자 봉투를 보면서 어찌할 바를 몰랐었다.  

  내 인생이 술술 풀린 건 국민학교 시절이었다. 별로 공부를 하지도 않고 놀기만 했는데 생각보다 성적이 떨어지지는 않았다. 짜장면 한 그릇으로 나는 공부를 시작했다. 4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이번에 전 과목 성적을 90점 이상 맞으면 짜장면을 사주신다고 했다. 짜장면이 최고의 음식이던 그때 처음으로 공부를 했다. 매일 일일공부라는 학습지를 대충대충 했는데 짜장면이 목표가 되고 달라졌다. 담임선생님께 짜장면을 얻어먹은 후부터 공부에 재미가 들리기 시작했다. 느닷없이 어머니는 나를 예술학교에 보내는 목표가 생겼다. 원서 마감전날이었는데 동네 사립학교에 딸을 보내던 엄마친구가 원서가 한 장 남았으니 네 딸도 한 번 시험보라는 말에 덜컥 받아갖고 온 것이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로 입시를 했고 어머니의 빛나는 치맛바람 덕분에 교감선생님이 원서를 접수시키러 가셨다. 갈색 서류 봉투를 들고 가시는 교감선생님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봤으니 시험 때까지 얼마나 초조와 불안 속에 살았는지 모른다. 갑자기 보게 된 시험이었고 입시공부는 한 적도 없으니 혼자 자습서를 붙들고 울고불고하면서 공부를 했다. 종교도 없던 내가 하느님을 붙잡고 늘어졌다. 제발 창피만 안 당하길 매일 빌었다.

  실기 시험을 보기 전날 신세계 백화점에 가서 미술도구를 샀다. 전문 그림 도구를 처음 봤고 신기한 거 투성이었다. 동네 문방구에서 산 플라스틱 파렛트와 동아물감, 크레파스 정도만 알던 나는 붓도 그렇게 종류가 많은지 처음 알았다. 학교에서 사용했던 납작하고 작은 붓이 아닌 굵은 붓을 몇 종류나 샀고 커다란 철판 파렛트와 내가 썼던 물감의 다섯 배는 족히 됨직한 크기의 물감을 샀다. 투명한 튜브 물통도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집에 오자마자 튜브 물통을 불어 두고 화방에서 가르쳐 준 대로 수채화 물감을 짜서 말렸다. 처음으로 화구함이란 걸 들고 튜브 물통을 달랑달랑 흔들면서 시험장에 들어갔더니 다들 붉은 플라스틱 양동이들을 들고 온 것이다. 나의 튜브 물통은 혼자였다. 새로 짠 물감은 물컹했고 얼룩덜룩한 다른 입시생들의 파렛트랑 달리 내 파렛트는 하얗게 반짝반짝 빛이 났다.

  며칠 실기 시험을 치르면서 친해진 친구랑 수다 떠는 것만 기뻤다. 그 친구는 오랫동안 화실을 다녔고 나에게 그리는 법을 알려줬다. 실기 시험을 치르면서 나는 앞에 아이와 뒤에 앉은 새로 사귄 친구의 그림을 흉내내기 바빴다. 친구의 화실선생님이 알려줬다는 합격하는 비방을 얻어듣고 얼른 그림에 검은색 선을 그렸더니 앞에 앉은 친구는 내 그림을 슬쩍 보고 깜짝 놀랐다. 그럼 떨어진다고 빨리 지우라고 했다. 실기시험을 치르면서 우리는 함께 했다. 시험을 보는 건지 관람을 하는 건지 나는 다른 친구들 그림도 한 바퀴 휘 둘러보면서 구경을 했다. 생각해 보면 간이 큰 건지, 아무 생각이 없는 건지 시험보다 말고 왜 다른 애들 그림 감상을 했는지 모를 일이다. 애들이 그림 그리느라 열중한 동안 나는 뒷짐 지고 그림 구경하러 시험장을 둘러보았다. 다른 친구들은 어떻게 그리는지 궁금했었나 보다. 그렇게 합격을 했다.

  동생 담임이 수업시간에 걸 궤도를 부탁해서 아버지는 교과서 그대로 똑같이 밤새 그려주곤 했었다. 교과서 그림과 똑같은 데 전지 크기로 확대된 궤도 그림은 늘 놀라웠다. 아버지의 솜씨를 그대로 받아 미술을 잘하는 편이었다. 술술 그려지는 그림은 별로 하고 싶지 않았고 늘 궁금한 게 많았던 나는 공부가 하고 싶었다. 미술부장 선생님과 학교 담임 선생님이 인문계 진학을 말리는 데도 불구하고 미술을 관뒀다. 미술을 시작한 건 우연이었지만 관두는 건 나의 선택이었다. 지금까지도 무얼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드는 것을 보면 재능이 있을지 몰라도 하고 싶지 않은 건 분명하다. 책을 읽고 무언가를 알아가는 그 재미를 그림으로는 찾을 수 없었다. 책에 더 빠져들게 된 건 대학시절이었다. 공부를 하기에는 시국에 너무 마음 아팠고, 시위를 하기에는 생각이 너무 많았다. 이게 과연 옳은 일인지, 공부하고 싶어서 들어온 대학인데 공부를 뒷전으로 하는 게 과연 맞는 일인지 너무 많은 생각에 헤매었다. 도서관에 틀어박혀 책을 읽었다. 답답한 마음을 풀 수 있었다. 사람 사는 세상이 거기 있었다.

  내 이십 대는 방황의 연속이었다. 도대체 원하는 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내가 선택한 건 하나같이 꽝인 듯싶었다. 하고 싶은 것은 길이 보이지 않았다. 어영부영 학교를 졸업하고 나니 취업의 문턱에서 난 넘어지기 일쑤였다. 그렇게 원해서 선택한 전공인데 전공과 무관한 책만 실컷 읽었다. 내가 준비했던 건 다른 세상이었다. 세상살이에 지치고 친구들이 시위에서 다치던 그 시절에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책 읽기뿐이었다. 내 삶이 그것으로 새롭게 시작했다는 건 나이가 들어서 알게 됐다. 내가 읽었던 책이 직업이 되고 삶을 이어줬다. 책 읽기는 글쓰기로 이어졌고 나를 숨 쉬게 했다. 아무것도 아닌 거 같아서, 나 혼자 세상에 버려진 거 같아서 그 허공과 시간을 채우려고 허겁지겁 읽었던 책이 나를 만들었다. 덤이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살아보니 덤조차 없었다. 공짜는 바랄 수도 없이 내가 한 만큼 돌려받았다. 시간은 정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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