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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나영 Jul 11. 2024

정선생님을 추모하며

  "숙제 안 해오면 때린다" 맨 앞 줄에서 선생님을 빤히 쳐다보면서 나는 물었다. "몇 대요?" 반쯤 졸았나? 나도 모르겠다. 왜 그 말을 했는지 그냥 궁금했을 거다. 선생님은 잘 생긴 얼굴로 진지하게 애들한테 공부하라는 협박을 하다가 웃음이 터졌다. 몇 대인 줄 알면 숙제를 안 해올 거냐고 웃으셨고 애들도 웃는 바람에 내가 이상한 걸 물었다고 느꼈을 뿐이다. 겨울철 따뜻한 히터 옆에서 점점 노곤해져서 히터에 몸의 반을 걸쳐두고 느긋한 자세로 수업을 듣다가 선생님의 웃음 가득한 얼굴로 그러다 아예 자리 펴고 눕겠다는 말에 놀라 잠을 깬 적도 있다. 또 선생님과는 등교할 때 자주 마주쳤다. 그때마다 나 혼자 선생님과 걸음 경주를 하기도 했다. 선생님은 나보고 걸음이 빠르다는 칭찬을 했고 그럼 더 빨리 걸으려고 악착을 떨었다. 선생님과 따로 대화를 나눈 적도 없는데 정선생님을 생각하면 마음이 그냥 따뜻해진다. 선생님의 따스한 눈빛이 떠오르고 부드럽고 온화한 모습이 떠오른다.

  연합고사 보는 날 아침 나는 시험 보러 나간다고 느긋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밥 한 그릇 다 먹고 콧노래를 부르며 학교로 향했다. 학교를 들어가는 입구에서야 내가 수험표를 가져오지 못한 것을 알았다. 집까지는 버스를 타고 삼사십 분이나 가야 하는데 난감했다. 공중전화로 아빠한테 수험표 좀 가져다 달라고 얘기를 한 순간 나는 전쟁에 총 안 가져가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전쟁이야기로 욕을 한 사발 먹었다. 가져다주지도 않을 거면 네가 알아서 하라고 차분히 얘기나 해줄 것이지 얼마나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총 안 가져간 군인얘기를 해대는지 서러운 마음에 펑펑 울었다. 다행히 다니던 학교에서 고등입시를 위한 연합고사를 치르는 거라서 어깨가 들썩이도록 울면서 학교로 들어갔다. 정선생님을 거기서 만난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선생님은 내가 수험표를 안 가져왔다는 걸 들으시고 괜찮다고 나를 다독이며 교무실에 가서 임시 수험표를 작성하면 된다고 하셨다.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잔소리 안 하시고 부드럽고 따뜻한 목소리로 나를 교무실로 데리고 가셨다. 그때까지도 우느라 정신없는 나는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했고 선생님의 응원을 뒤로하고 배정받은 교실로 들어갔다. 울음기도 가시지 않았고 아빠한테 욕먹은 걸로 정신을 못 차린 나는 얼이 빠져서 첫 시험인 국어를 1번부터 줄줄이 틀렸다. 정선생님을 못 만났더라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우왕좌왕하느라 나는 혼이 나갔을 것이다.

  선생님에 대한 기억은 친한 언니 딸이 그 학교를 들어갔다는 말에 다시 떠올랐다. 아직도 계셨다. 그 선생님 정말 좋다는 내 말에 언니는 정말 못 가르친다는 말과 함께 아이들도 그 선생님 되게 싫어한다는 말을 전해줬다. 요즘 아이들과 눈높이가 맞지 않았나 보다. 내가 기억하는 선생님은 젊었지만 아이들은 꼰대에 한낱 늙은 선생님으로 대하고 있었나 보다. 성적이 현실을 좌우하는 세태에 선생님은 너무도 뒤쳐져 계셨나 보다. 마음이 아팠다. 아이들을 성적으로만 평가한다고 선생을 욕하지만 선생도 마찬가지로 가르치는 실력으로 아이들에게 난도질당했다. 아직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못 가르치는 선생으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정선생님은 스승이었다. 늘 한걸음 뒤에서 학생을 지켜봐 주었다. 손가락질하고 혼내기보다는 부드럽고 다정하게 지적하셨던 스승이었다. 중학교 시절동안 나는 정선생님이 소리 지르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늘 차분했고 깔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으셨던 멋쟁이 스승이었다. 가르치는 기술자가 아닌 스승을 나는 만났다. 정선생님의 부드러운 얼굴이 그립다. 이 세상 소풍을 끝낸 정선생님의 아름다운 영혼이 하늘에 머물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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