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이 생겨서 청탁금지라는데 제대로 지켜질까? 몇 년 전에 아들의 중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께 고등학교로 진학한 아들 때문에 속상했던 일로 고민을 털어놓고 상담한 적이 있었다. 내 일처럼 같이 마음 아파해주셔서 감사한 마음에 식사대접을 하려고 했더니 기겁을 하신다. 결국 고마운 마음을 전달하지도 못해 아쉬웠다. 그나마 아들이 종종 선생님을 찾아봬서 고마운 마음을 대신할 수 있었다.
90년대 말즈음에 산업인력공단의 일을 맡아서 한 적이 있었다. 국가고시를 영상으로 출제하는 일이었다. 나는 출제위원이 아니었는데 영상으로 문제를 만드는 글을 써야 했었다. 명색이 국가고시인데 문제가 없었다. 문제를 영상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기출문제집 책 몇 권 주고는 거기서 문제를 추려서 영상을 만들라는 것이었다. 산업안전하고는 거리가 먼 내가 책 몇 권 읽고 산업안전에 대한 문제를 제출해야 하는 것이었다. 위험한 작업을 대비한 안전수칙을 묻는 문제여서 공단에서 받은 기출문제집을 참고하여 영상을 만들면 되는 것이었지만 전문가가 참여하지는 않았다. 산업체와 관련 교수들을 찾아다니며 자문을 받아서 산업 안전에 대한 지도를 받아가며 제대로 만들 시간도 없었다. 산업현장을 섭외할 고충이 더 컸다. 빨리빨리의 강국답게 영상을 후루룩 뚝딱 만들어서 공단에 제출해야 했기 때문이다.
1억 정도로 제작비가 꽤 컸다. 나는 계약직이라 프로덕션의 직원들과 함께 회의에 참석하곤 했었는데 같은 또래의 직원들은 고민이 많았다. 공단에 갈 때마다 압박이 점점 심해진다는 것이다. 그 회사는 제조업과 프로덕션을 겸했고 사장은 뇌물을 절대 안 주는 사람이었다. 직원들은 일이 처리가 잘 안 되자 공단에 들어가는 일이 나날이 괴로울 지경이었다. 하루는 나도 같이 갈 일이 생겼었다. 공단의 총무과 직원과 담당직원이 그날은 아예 노골적으로 뇌물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너네 회사에서 다 먹으면 어떡하냐고 좀 풀어야 되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가 답답했는지 아예 대놓고 알려줬다. 우선 받은 돈을 담당직원들한테 좀 바치고 납품을 한 후에 나보고 촬영 대본을 바탕으로 기출문제집을 써서 바로 팔라고 했다. 돈은 그렇게 버는 거라고 총무과 직원이었던 사람과 담당직원은 자기들이 이런 것까지 알려줘야 하냐고 당당하게 대놓고 얘기를 했다. 그런데 나는 앞으로 5년 동안 문제를 제출했다는 말을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그들 앞에서 계약서에 서약을 했었다. 답답해서 미치는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직원도 아닌 내가 더 미칠 노릇이었다. 우리는 아무도 그렇게 하는 걸 몰랐다. 그 말을 듣고도 그렇게 하자는 직원도 없었다. 우리는 돈 버는 방법에 대해 내내 감탄과 찬탄을 오가며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우리들의 요령 부족을 탓하며 공덕동 언덕길을 내려왔었다.
충격이 컸나 보다. 아직도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니 말이다. 뇌물은 안 주고 그대로 일을 진행했던 거 같다. 나야 글을 써주고 손을 털면 그만인 일이었지만 꽤 불려 다녔던 거 같다. 영상에 대한 감수를 끝으로 나는 빠져나왔다. 요식행위라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걱정 말라는 담당자의 말에도 전문가도 아닌 내가 출제한 영상문제라서 전문가들한테 난도질을 당할까 발발 떨었었다. 다행히도 문제에 대한 지적보다 영상으로 구현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만 몇 개 들었고 별일 없이 빠르게 끝났었다. 물론 국가고시였던 만큼 그 일에는 전문 감수자가 있었고 제대로 관심을 보이는 교수는 한 명 정도였을까? 늘 흐릿한 기억이지만 한 분 정도만 까다롭게 질문했던 거 같다. 전문가들인 그들은 감수를 했다는 도장을 찍기 위해 대부분 들러리로 참여했고 감수비도 물론 챙겼을 것이다. 출판사의 전문가 감수에 대해 믿지 않는 건 그날의 경험이 크다. 전문가 감수는 돈봉투로 끝나는 일이라는 걸 알았다.
오십 중반을 넘었지만 나는 아직도 빽도 챙길 줄 모르고 뇌물을 챙기는 것도 못한다. 소위 사바사바라는 식의 뒷거래에 아둔한 감각을 지녔다. 요령 좋고 눈치 빠른 사람들은 출세의 배지를 달았을지 모르지만 내 분수에 맞게 사는 게 마음 편하다. 요즘 세상도 그럴까? 뇌물에 목말라했던 그 직원들이 이따금 생각나고 부정 청탁이 아직도 난무하는지 가끔 궁금하다. 하긴 영부인이 받은 샤넬 가방이 파우치로 둔갑하는 마당이니 세상이 크게 바뀌지는 않은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