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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

by 송나영

한밤중에 느닷없는 계엄령 선포라니! 칠칠치 못한 계획으로 서너 시간 만에 해제된 결과라니! 윤석열이 시종일관 보여주는 모습의 연장일 뿐이다.

아는 중학생이 입만 열면 무식한 말을 하는 저 사람이 대통령으로 나오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어린 눈으로 봐도 웃긴가 보다. 손바닥에 '왕'자를 새기고 펭귄처럼 뒤뚱거리며 걷는 그가 대선주자였다. 그이의 부인은 쥴리라는 예명으로 활약했던 일로 세상이 시끄러웠다. 코미디 소재로 이만한 게 있을까? 벌이는 일마다 하는 짓마다 코미디감이다.

60년대생인 나는 비상시국이란 걸 몇 번 겪었다. 물론 전두환이 벌였던 계엄령도 겪어봤다. 육영수가 저격당하던 날 세상이 뒤집어졌었다. 박정희가 암살당했던 날은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박정희 국장을 치르던 날은 엄마가 큰 일이라며 하도 울어서 초등학생이던 나는 정말 곧 북한이 쳐들어 오는 건 아닌지 불안했었다. 박정희가 아니면 나라를 통치할 사람이 없는 것처럼 박정희의 아우라는 대단했다. 밤 12시면 통행을 금지시켰던 시절이니 통제당하는 세상이 이상하다고 생각할 나이도 아니었다. 밤늦은 시간 골목길에 호루라기 소리가 울리고 사람들을 잡으러 다니는 방범대원들의 발자국 소리에 익숙했다. 우리 집에 세 들어 살았던 대학생 오빠가 왜 밤늦게 다니는지 몰랐고 장발단속에 걸려서 왜 머리를 잘리고 왔는지 그게 잘못된 거라는 걸 느낄 수가 없었다. 그런 세상이었다.

전두환이 군복을 입고 설쳐대는 모습을 봤고 TBC 방송국이 사라지는 것도 봤다. KBS나 MBC 방송국에 비해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많았던 방송국이라 아쉬웠다. 왜 제일 재밌는 방송국만 없애는지 그걸 알 수가 없었다. 재미없는 공영방송이 하나 더 만들어졌다. 방송은 시위대가 화염병이나 돌을 던지는 폭력적인 모습만을 보여줘서 불온한 세력이라는 인상을 심어줬다. 전경이나 군인이 달려들어서 사람들을 두들겨 패는 장면은 볼 수 없었다. 카메라는 정확히 세상을 불안하게 만드는 시위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제대로 세상을 알 창구도 없었다. 중학교 때 대학가 근처로 이사를 가면서 허구한 날 공기를 타고 흐르는 매캐한 최루탄에 익숙해져 갔다.

전두환은 언론을 장악했고 해외 통신도 차단해서 국민을 속일 수 있었지만 대선 설문조사를 조작까지 했던 윤석열은 스마트폰이 일상화된 세상까지 미처 생각할 겨를이 없었나 보다. 늙어서 스마트폰의 기능을 우습게 보는 거다. 윤석열은 종북세력이 나라를 불안하게 만든다고 처단하겠다고 발악을 했다. 종북의 본향 북한은 요즘 오물을 뿌리지만 예전에는 삐라를 뿌렸다. 걔네들도 윤석열만큼이나 일관성이 있다. 우리 집 마당에도 삐라가 떨어져 있었으니까 간첩은 대단히 무서운 종류였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반공 교육을 철저히 받았던 세대다. 그 간첩을 윤석열이 살려냈다.

윤석열의 한밤중의 꿈이야기를 나는 가상시장 거래소에서 먼저 알았다. 갑자기 코인 가격이 미친 듯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비정상적으로 떨어지는 코인에 당황했다. 가뜩이나 수익률이 마이너스로 바닥에 곤두박질친 코인밖에 없는데 또 떨어질까 걱정됐다. 다른 나라의 거래소와 차이가 심하게 났다. 빗썸이나 업비트가 왜 이렇게 순식간에 하락장이 되는지 알아보려고 다른 영상을 찾았다. 빗썸은 순식간에 연결이 끊겼고 업비트는 그나마 연결됐었는데 아예 들어갈 수가 없었다. 별로 반갑지 않은 윤석열이 비장한 얼굴로 계엄을 선포했다. 민주당을 욕하는 건 늘 빠지지 않는 소재지만 국회의원들이 나라를 불안하게 만들고 안전을 위협하는 종북세력이 있다는 말에 미친 거 아냐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저 혼자 70년대에 살고 있나? 대통령 놀이를 즐겨도 어느 정도지 이젠 하다 하다 계엄령 선포까지 해보고 싶었나? 전두환처럼 순식간에 정권을 장악하고 국민들이 어리둥절해하는 사이에 정권을 교체해 버리는 모습이 꼭 망토 휘날리며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하는 스파이더맨처럼 보였나 보다. 마음에 꼭 새겨두고 해보고 싶다는 꿈을 꾸었나? 정말 가지가지한다.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거 없이 남 탓으로 일관하거나 무조건 거부로 일관해온 내로남불의 전형이다. 해외로 순방하면서 한국 성형 의술의 위상을 높여주는 일로 그나마 역할을 해온 거 아닌가?

삼척동자도 궁금할 거다. 저 머리로 어떻게 서울대를 나왔는지 말이다. 서울대에 기부를 했나? 우리나라는 기부 입학제도 아닌데 커닝을 해서 들어갔나? 그럴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도 든다. 사법고시를 9수를 했다는 말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건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서울대 입학은 의혹이 생긴다.

겪으면 불행이지만 멀리서 보면 코미디다. 전두환은 욕하면 잡아갔다. 어떻게 알았는지 제 욕을 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삼청교육대나 감옥으로 보냈다. 주도면밀한 전두환은 끝까지 자기가 나라를 구했다고 생각할 거지만 윤석열은 자기 가족을 구하기 위해 경고를 보냈다. 비상계엄령으로 말이다. 모지리가 분명하다. 윤석열은 누구나 욕한다. 태극기 부대나 비상식적인 생각을 갖거나 탐욕에 눈멀고 권력의 이해관계에 얽힌 사람들이 아니라면 그를 감쌀 수가 없다. 하는 짓마다 너무 상식밖이니 말이다. 강화도령 철종이 자꾸 겹친다. 강화도령도 사랑꾼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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