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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유감

by 송나영

얼마 전에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최대규모의 성지에 다녀왔다. 봄, 가을이면 야생화가 드넓은 성지에 만발을 해서 종종 눈요기하러 다니던 곳이었다. 야생화 꽃밭이 다 뒤집히고 파헤쳐진 이후로 발걸음을 멈췄다. 성지의 건축물이 유명해서 십여 년만에 들렀다. 운동장만 한 주차장 입구에 주차 차단막이 설치돼 있었다. 아직 공사 중인지 성당까지 올라가기에 어수선한 곳도 많았다. 입구를 벗어나자마자 신도들이 초를 봉헌하는 곳이 방처럼 아늑하게 꾸며져 있다. 어느 건축가가 감탄을 했던 곳이었는데 초값이 천 원이 더 비쌌다. 계좌번호도 적어놨다. 초를 켜고 싶어도 돈을 안 가져온 신도들을 위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찜찜했다.

야외제대를 지나기 전에 같이 간 친구가 이게 신자들이 돈 낸 거 아니냐는 말에 돌아보니 비오 신부님상과 마더 테레사 수녀님상 주변으로 검은 돌들이 땅에 박혀 있었다. 그 돌들에는 가족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큰 절에 가면 대웅전으로 들어가기 전에 보이는 기왓장 같은 거였다. 기왓장이 저렴해 보이는데 비해 돈을 좀 더 많이 내야 할 듯싶다. 묵주기도를 하기 위한 둥근돌은 예전 그대로였고 이끼도 끼어 멋스럽게 변해 있었다. 예전부터 있었던 것은 오랜 시간을 산과 함께 어우러져 산 모습이었다.

예전에 미사를 드리던 성전은 폐쇄되었고 새로 공사를 할 모양이었다. 이곳을 안 다니기 시작한 것도 성전을 들어서자마자 있었던 성물을 판매하는 곳 때문이었다. 성전에 들어서자마자 도떼기시장 같은 어수선함이 영 거슬렸었다. 어쩌다 가끔 오는 곳이지만 나를 내려놓고 싶어서 왔는데 장사하느라 분주한 모습을 먼저 만나곤 했다. 봉헌에 대한 강론도 날이 갈수록 길어져갔다. 마음이 떠나기 시작했다.

스무 살을 갓 넘어 처음으로 교회를 남자친구를 따라서 다니기 시작했다. 주말마다 그곳에서 가슴 뜨거운 사람들을 만나곤 했다. 사랑이 넘치는 사람들과 달리 목이 뻣뻣한 목사와 장로들도 함께 한 곳이었다. 권위에 가득 찬 목사는 질서를 존중했고 강서구에서 꽤 큰 편이었던 그 교회의 장로는 돈을 존중했다. 그렇게 큰 교회에서 뭐가 부족한 게 그리 많은지 매주 헌금과 돈에 대한 기도가 강론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마음을 채울 수 없으면 거리가 생긴다. 결국 그곳을 떠났다.

멍하니 앉아서 나를 내려놓고 오려고 텅 빈 성당도 가고 덕수궁 옆에 있는 성공회성당도 가곤 했다. 결혼 후 세례를 받고 또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구복신앙이 먼저였다. 무슨 기도를 해야 좋다는 주술 같은 이야기도 들었다. 가톨릭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했다는 신부는 성당에 부임하고 얼마 안 돼 성당에 남아있는 건축빚을 감당할 수 없었는지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각 구역을 담당하는 지역장, 반장들의 한 달 봉헌금을 대자보로 만들어서 모든 신자가 성당에 들어서자마자 볼 수 있도록 벽에 대문짝만 하게 붙였다. 그 사제에게 가톨릭계 초등학교에 아들을 입학시키려고 추천서를 부탁했다가 망신을 당했다. 교장수녀가 보기에 봉헌도 적게 하고 남편도 신자가 아닌데 어떻게 말해주냐고 말했다. 망치로 한 대 맞은 거 같았다. 열심히 성당에서 봉사하는 것도 아니고 사제한테 알랑방귀 뀌는 신자도 아닌데 게다가 봉헌조차 조금밖에 안 하는 주제에 감히 추천서를 요청하다니 내가 분수를 너무 몰랐던 거다. 사무장이 추천서를 요청하는 나에게 머뭇거렸는데 그 눈치를 못 챈 거다. 동네 성당을 피하고 성지로 다니기 시작했다. 내 마음에 드는 데로 골라서 방랑을 했다.

이 땅의 사제와 목사는 건축가가 분명하다. 왜 그렇게 건설에 목을 매는지 이해가 안 간다. 기도에 시간을 들이고 말씀에 집중해야 하는 게 아닌가? 기도는 알맹이가 빠져있고 겉만 번드르르한 건축물에 공을 들인다. 가건물 탈출이 꿈인가 보다. 옆동네에 가건물인 성당이 있었다. 신자들은 열심히 기도했다. 새벽부터 밤까지 신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기도하는 방인 조배실에는 사람들이 빽빽이 들어앉아 열기를 내뿜었다. 가건물은 허물어졌고 멋진 성당이 새로 들어섰다. 조배실은 시간이 정해졌고 그 시간 외에는 문을 잠갔다. 사람들은 그 방에 오는 다른 사람들을 경계했고 기도방을 담당하는 자매들은 참견을 했다. 작은 방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틈을 내주며 기도하는 모습은 사라졌다.

화성에 새로 지은 대성전은 대단했다. 그 엄청난 건축물을 보면서 이 돈을 다 갚으려면 강론은 봉헌에 대한 이야기로 채우겠다는 생각을 했다. 성전 1층은 성물을 판매하기 위해 한쪽을 온전히 다 차지하고 있다. 대성전을 들어선 순간 나는 괴기스러움을 느꼈다. 오렌지빛 머리에 하얀 피부를 한 예수님 상도 꺼림칙했다. 같이 간 친구도 예수님의 만찬이 그려진 그림이 너무 기괴해서 앞에 가서 자세히 살펴봤다고 했다. 5분도 안 돼 나는 그냥 나와버렸다. 건축에 대해 문외한이 내가 보기에도 건축재는 너무 비싸보였다. 도대체 이거 짓느라 얼마나 많은 돈을 들였을지 마음이 갑갑했다. 차라리 이 돈을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을 위해 쓸 수는 없는지 나는 그게 늘 의문이다. 꼭 성전을 거창하게 지어야만 하는지 말이다. 괜히 왔다는 생각을 했다. 눈을 버렸다.

주차장에 다다랐을 때 저렇게 지었으니 당연히 주차비를 받겠지라고 친구에게 말했다. 역시 생각이 맞았다. 어느 자매님이 신용카드로만 주차비를 받는데 현금만 가져와서 나갈 수가 없다고 돈을 줄 테니 카드를 한 번만 빌려달란다. 아무리 돈이 급하다지만 이건 아니지 않나? 어느 성당에서, 어느 교회에서 기도하고 나오는 신자들한테 돈을 받는가 말이다. 하다못해 서울 한복판에 있는 백화점도 거기서 물건을 사면 주차비는 안 받는다. 경기도 화성의 넓디넓은 땅에서 무슨 차들이 그리 많이 온다고 주차비를 받는지 말이다. 전국의 어느 성지를 돌아다녀도 주차비를 받는 성지는 처음이다. 은총의 상거래 현장이다.

건축을 자랑하기 위해서 지었는지, 사제의 업적을 후세에 남기려고 한 건지, 말씀을 전하고 싶어서 세운건지 모르겠다. 기가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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