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세대의 시위현장에 익숙한 공영방송 기자가 탄핵이 부결된 뒤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 시위대와 함께 현장을 벗어나려다 울컥했다고 한다. 여의도 국회 앞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자리를 지키고 앉아 응원봉을 휘두르는 것을 본 것이다. 추운 밤 돌아가는 기성세대와 달리 그들의 열기는 밤을 지새울 기세였고 그는 다시 방송을 이어나갔다고 했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로서 딸과 같은 또래의 젊은이들을 보면서 울컥했고 희망을 보았다고 했다.
알록달록하고 울긋불긋한 응원봉은 저항에 대한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발랄하고 활기 넘치는 젊은이들은 쉽게 꺼지는 촛불이 아니라 온 밤을 밝혀줄 LED등을 찾기도 하고 집에 모셔놓은 응원봉을 새롭게 등장시켰다. 그 자리에 같이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을 저절로 만든다. 선의의 의지는 선의의 참여를 부른다.
무력에 맞서 화염병으로 짱돌로 무장했던 5-60대가 아니다. 방망이로 두들겨 패던 전경이 아니고 쉼 없이 쏟아내던 지랄탄도 없다. 내장이 밖으로 다 쏟아나올 듯이 속 뒤집히는 지랄탄은 눈물 콧물을 마구 뿜게 해서 순간적으로 사람의 형상을 아주 추하게 만든다. 마스크로 가리고 중무장을 해도 최루탄은 눈물을 줄줄 흐르게 만들고 온 얼굴이 매워서 주저앉게 만든다. 너무 맵고 쓰려서 얼굴을 닦을 수도 없다. 위력이 세계 최고라서 전 세계로 수출했다던 우리의 최루탄이다. 군대에서 겪어볼 수 있는 화생방 훈련에 사용하는 그 최루탄이 없다. 경찰은 무력으로 진압하지 않고 질서를 유지해 준다. 50대인 나는 겪어보지 못한 현장이다. 달려드는 전경을 피해 도망을 치고 날아드는 최루탄에 맞지 않기 위해 달아났다. 최루탄에 등을 맞아 화상을 입었던 친구도 있고 최루탄에 맞아 생을 마친 이한열도 있다. 극도로 치닫는 현장에서 분노를 분신으로 시도했던 이들도 있다. 자리를 지키기 위해 군대를 동원하고 경찰을 동원해 끝까지 민중을 유린한 세력에 죽을 각오로 저항했다.
시위가 달라졌다. 총천연색으로 물든 젊은이들의 응원봉은 민주주의의 꽃밭을 만들었다. 불안한 마음에 탄핵 시위현장을 영상으로 찾아보다가 웃음이 나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전국 누워있기 연합회'가 내건 "제발 누워있게 해 줘라. 우리가 집에서 나와 일어나야겠냐"는 호소와 '전국 뒤로 미루기 연합'이란 단체가 "더는 뒤로 미룰 수 없다"라며 탄핵을 촉구하는 모습에 찡그렸던 얼굴이 저절로 펴졌다. '방구석 게임 마니아 연합'도 집회에 참가했는데, '불안해서 집에서 게임도 못 하겠다'는 문구를 등에 붙인 채 집회 현장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는 젊은이를 보며 웃음이 터져 나왔다. 게임 좋아하는 아들과 늘 씨름했던 엄마로서 어찌나 그 아들이 자랑스럽던지 말이다.
전경도 돌아보면 내 아들이나 다름없는 젊은애들인데 말이다. 특전사 아들을 둔 아버지는 시민에게 총을 겨누지 말라고 당부한다. 울먹이는 아버지의 비장한 심정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무슨 명령을 받았는지도 제대로 모르는 아들에게 계엄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그 아버지의 인터뷰 내용에는 혹시나 몰라서 아들의 목소리를 녹음하려고 했다는데 전쟁 같은 계엄을 지낸 우리의 트라우마는 그렇게 만든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우리는 겪었다. 부모가 되니까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내 아들 같아서 마음이 더 아프다. 아들이 군대를 제대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지금 군대에 아들을 둔 부모들은 얼마나 애가 탈 지 걱정이 된다. 국회 앞에서 우왕좌왕했던 아들들이 안쓰럽기만 하다. 그 밤중에 국회로 달려 나가 군인을 다독거리고 자극하지 않도록 설득했던 사람들의 열정이 한없이 고맙다.
시민들에게 죄송하다고 거듭 고개를 숙인다. 잘못은 책임지지 않는 자들이 한 거다. 책임질 자리에서 책임지지 않는 지도자가 문제다. 염치없고 뻔뻔한 지도자에 분노하다가 응원봉을 흔드는 젊은이들을 보면 마음이 벅차다. 나의 이십 대는 우울했는데 지금의 젊은이들은 우울하지 않다. 밝게 빛나는 그들 때문에 탄핵에 대한 무거운 마음도 가벼워진다. 어느 젊은이 말대로 될 때까지 하면 된다.
간디가 삼일운동을 평화시위라고 민족 저항운동을 우리나라처럼 해야 한다고 했던 말이 실감이 안 났었는데 이제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