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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연

by 송나영

인연을 끊었다. 아니 혈연을 끊었다. 엄마를 안 만난 지가 삼 년이 넘는다. 내 이혼이 엄마와의 절연의 시작이다. 엄마에게 이혼을 했고 행복하게 사시라는 마지막 문자를 끝으로 연락을 끊어버렸다.

내가 당신의 자랑거리였던 시절에 우리의 관계는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당신의 자랑에서 점점 엇나가기 시작했다.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렸던 중고등 학교 시절은 세상이 참 단순했다. 내가 단순했으니까. 사는 게 어렵다는 생각을 못 했다. 늘 나와 함께 다니던 친구는 나에게 넌 참 단순해서 좋겠다는 욕인지 칭찬인지 모를 말을 했다. 세상 고민 모두 짊어지고 사는 것 같은 친구와 달리 나는 원하는 대학에 가고 싶다는 생각밖에는 없었다. 남자 친구에게 준다고 천 마리 학을 접는 게 신기했고 지금의 웹소설 같은 할리퀸이라는 로맨스 소설에 빠져 있던 친구들은 먼 나라 사람들 같았다. 어쩌면 내 사춘기가 늦게 왔는지도 모르겠다.

대학에 들어가서야 천 마리 학을 접던 심정이 이해가 됐다. 도대체 이해가 안 가던 아이들의 행동을 내가 뒤늦게 하고 있었다. 가세가 기울며 고민도 많아졌다. 내 이십 대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늪인 것만 같았다. 앞도 보이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한숨만 길게 나왔다. 내 삶의 푯대를 어디에 세우고 살아야 하는지 어두운 바다 한가운데 내동댕이쳐진 기분이었다.

그때부터였다. 나의 방황을 엄마는 기다리지 못했다. 끊임없는 질책과 비난이 이어졌다. 뭐 하나 진득하게 하지 못한다고 했다. 어떤 직업을 선택해야 할지 몰라 길을 헤맸다. 학교를 졸업하고도 방황은 이어졌다. 컴퓨터 그래픽을 배웠다. 세상에 이렇게 안 맞는 줄을 몇 개월의 시간과 몇 개월치 비싼 수강료를 허비한 이후에 알았다.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찾기 위해 서점을 숱하게 들락거렸다. 목표가 뚜렷할 때는 삶이 단순해진다. 그 목표가 돈이든 하고 싶은 일이든 간에 한 가지만 생각하면 되니까 머리가 복잡하지 않다. 한 번 해볼까라는 생각으로 겁 없이 달려든 일은 길이 아주 복잡해진다. 이게 진짜 맞는 건지 고민이 자꾸 늘어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나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끝없이 고민했다. 내가 우왕좌왕하는 것을 엄마는 아주 못마땅하게 지켜봤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을 글을 쓰면서 달랬다.

방송 작가가 되겠다고 글을 쓰기로 하면서 우리의 관계는 더 나빠졌다. 몇 달 동안 말을 안 하고 지내다 우연히 집으로 들어오는 좌석버스에서 엄마를 만났다. 몇 개월 만에 우리는 식탁에 마주 앉았다. 엄마는 나를 모로 뜬 눈으로 지켜보며 그나마 지금 일은 꾸준히 한다고 얘기했다. 내가 하는 모든 것이 늘 시원찮아 보였던 거 같다. 돈을 못 벌어서 그랬다. 엄마 친구들 자식들처럼 돈을 많이 벌어서 부모님께 용돈을 드려야 하는데 나는 그걸 하지 못했고 늘 비교당했다. 나이 오십이 넘어서도 엄마는 나한테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간섭을 그치지 않았다. 종교를 갖는다고 했더니 똑바로 제대로 믿으란다. 잔소리는 내가 나이를 먹을수록 줄어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 강도가 심해졌다.

자식 딸린 홀아비와 결혼을 해서 나에 대한 미움은 정점을 찍었다. 꼴 보기 싫은 맏사위와 스펙도 훌륭하고 성격도 둥글둥글한 둘째 사위에 대한 당신의 말이 다르다. 내가 한 결혼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나한테 하는 말은 비수가 되기 일쑤였다. 습관은 무섭다. 비수 같은 칼날을 내 가슴에 수없이 꽂았고 나 또한 지지 않고 엄마의 말과 행동을 비난했다. 엄마는 내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사람이라고 나 힘들 때 더 힘들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했다. 내 말은 거칠어졌다. 나에게 쏟아내는 당신의 화는 관성이 됐다. 우리는 만나기만 하면 싸웠다. 내가 싫다는 것만, 제발 하지 말라는 것만 엄마는 나한테 했다. 내가 이혼할 거라고 십여 년 전부터 얘기했지만 엄마는 같이 살기를 매일 아주 열심히 기도 했다. 엄마의 기도 소원을 적은 종이에서 남편의 이름을 보는 순간 악이 받쳤다. 결혼 직전까지 반대하던 엄마가 이제는 이혼하지 말란다. 남편의 이름을 지워버렸다. 엄마에 대한 애증도 지우기로 했다. 더 이상 욕먹지 않기로 했다.

미워하지 않기 위해서 발길을 끊었다. 마음 한 자리가 편치 않았다. 그러나 마음은 잔잔해져 갔다. 시도 때도 없이 불쑥불쑥 치밀어 오르는 화가 가라앉기 시작했다. 자식 된 도리를 못 하는 것 같은 죄의식도 점점 옅어졌다. 오랜만에 만나서 악을 쓰고 비난을 퍼붓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곱씹는 씁쓸한 마음이 더 괴로웠다.

십여 년 전부터 동생한테 네 엄마한테 잘하라는 말을 했다. 나는 도무지 엄마와 대화가 되지 않았지만 동생은 엄마와 성격이 비슷한 부분이 있다. 내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를 동생은 이해할 때가 있다. 그나마 이해하는 사람이 효도하면 되는 거다. 같은 자리에 앉기만 하면 두 눈을 부릅뜨고 싸우게 되는 관계는 더 치열해진다. 이해는커녕 선을 넘는 막말이 오간다.

명절을 앞두고 꿈에서 엄마를 보았다. 밝게 웃으며 나를 향해 오는 엄마는 공포였다. 나는 꿈에서도 필사적으로 도망을 쳤다. 다시 그 지옥 같은 마음을 겪고 싶지 않다. 만나면 괴로운 사이는 미움을 쌓는다. 말은 뾰족해지고 날이 선다. 카톡으로 엄마의 문자를 받는 순간 내 마음은 덜컥 내려앉는다. 기쁘지 않다. 나는 카톡을 확인하지 않는다. 전화는 차단한 지 오래다. 엄마는 끔찍한 기억을 불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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