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보이, 유교걸이라는 말이 간간이 보였다. 유교의 본질은 제쳐두고 꼰대 같은 행동을 말하는 건가? 주변에서 유교타령하는 사람을 보면 너그러움보다는 지적질로 가득한 일상을 보여주곤 한다.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그 이면에 저 자신에 대해서는 심하게 너그럽다. 도대체 이 유교 귀신은 왜 그렇게 요상하게 구는지 희한하다.
결혼을 하고 시댁을 가족으로 만났다. 저희 식구들끼리도 친하지 않은데 어느 날 시모는 딸처럼 나랑 살갑게 살고 싶다고 했다. 아들이나 딸이 당신하고 오손도손 마주 앉아 수다를 떠는 집도 아닌데 갑자기 나한테 딸 노릇을 하라니 이게 무슨 경우인지 수상쩍었다. 할 말 다 하는 나는 어떻게 딸이 되겠느냐고 자라온 환경이 다르고 혈연이 아닌데 서로 예의를 지켜야 되는 거 아니겠냐고 눈 똑바로 뜨고 말을 했다. 나는 시댁식구들한테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시집온 지 얼마 안 돼서 당신은 가난한 집 딸을 며느리로 삼아서 가르쳐가며 살려고 했단다. 그리고 아들이 한 명 더 있으면 어느 며느리가 더 잘하는지 보고 당신 패물을 주려고 했는데 아들이 한 명이라 아쉽다고 하셨다. 패물에 관심 없다고 잘라 말했지만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딸한테는 결혼한 첫날부터 너 뭐 할 줄 아냐고 눈을 흘기며 사람을 떠보거나 그럼 네가 앞으로 밥 다 차리라고 하지는 않는다. 당신 딸은 할 줄 모르니 본인이 하겠지만 며느리가 되면 시모는 입장이 달라진다. 가을볕에 딸 내보내고 봄볕에 며느리 내보낸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며느리는 노동력인 거 같았다. 이 집에 새로운 식구가 아니라 식모로 취급되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지난겨울 지인은 몸이 불편한 시모가 김장을 해야겠다고 해서 불려 갔다. 허리를 크게 다치신 당신이 꼼짝도 못 하는 걸 아는데 어떻게 김장을 할지 걱정이 태산이었다. 분명 입으로 시킬 것이고 혼자서 다 해야 하는데 지인은 김치를 담가 본 적이 없었다. 아무리 설득을 해도 당신은 완고했다. 당신은 절인김치를 배송시켜 달라고 부탁을 하시고 김치 하러 오라고 하시지는 않는다. 결국 시아버지가 네가 꼭 와야겠다고 며느리를 어르고 달래서 갈 수밖에 없었다. 김장하기 며칠 전 시어머니의 고집에 시아버지가 시모의 말에 따라 김치를 손수 담가 손주한테 갖다 주셔서 고생길이 훤한 걸 아시고 일찌감치 외출을 하셨다. 지인은 며칠을 앓아누웠다.
주변을 봐도 시댁과 사이가 좋은 집은 시어머니가 현명한 집이었다. 집안의 일을 아들과 상의하지 며느리까지 불러서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는다. 며느리 고마운 줄 아는 시댁은 분란이 일어날 일이 없다. 어차피 남인데 좀 너그럽게 보아줘야 하지 않을까? 아니면 차라리 자주 보지 않는 게 상책이다. 윤여정 씨가 당신은 아들과 자주 안 본다고 했다. 어느 며느리가 이쁘겠냐고 그건 자연스러운 일이지 않냐고 했다. 그래서 차라리 안 보는 게 낫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나도 괜히 섭섭할 거 같다. 언젠가 아버지가 나도 시어미가 되면 같아진다고 하셨다. 내 아들 모자란 건 생각지 않고 며느리 탓을 할 수도 있을 거다.
아들과 사이가 좋은 부모는 며느리한테도 너그러운 거 같다. 아들이 자기 부모한테 잘하니 며느리한테 주기적으로 안부전화 하라고 하지 않는다. 종종 시댁에 대한 갈등이 많은 집이 거의 다 비슷하다. 전화를 걸었네 안 걸었네,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고 입씨름을 하는 집들이다. 그런 집들은 또 비슷비슷한 갈등이 있다. 아들이 자기 부모한테 잘하는 편이 아니다. 아들과 사이가 별로 좋지 않으니 효도는 며느리 몫이 된다. 아들은 부모한테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으니 뚱한 아들한테 말을 듣기보다 자꾸 며느리를 오라 가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살갑지 않은 아들 몫은 며느리로 옮겨간다. 답답한 노릇이다. 아들도 제 부모가 편하지 않은데 며느리인 남은 편할까? 자식들과 관계가 원만한 부모는 효도를 입으로 가르치지 않는다. 부모를 공양하고 제사를 지내고 차례를 지내는 규범을 일일이 입으로 가르치는 집들이 사달이 난다. 효도를 말로 배우니 힘이 든다.
지인은 매주 남편이 본가에 같이 가기를 바라서 늘 갈등을 했다. 그 남편은 왜 자기 집을 혼자 가냐고 결혼했으니 같이 가야 한다는데 왜 자기 부모를 혼자서 못 만나고 오는지 모를 일이다. 나이 오십이 넘었는데 아직도 자기 부모를 꼭 같이 가서 만나야 하나? 그래야 효도한다는 생각이 드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가는 일이다. 부모가 자식을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을 알면 아들이 알아서 가면 되는 거 아닌가? 나는 내 아들이 효도랍시고 자기 부인을 억지로 데리고 올까 겁난다.
아들한테 언젠가 너 결혼하면 멀찍이 떨어져 살아야겠다고 했다. 며느리 부끄러워서 자주 볼 수 없겠다고. 저 먹은 밥그릇도 제대로 안 치우고 제가 쓰는 방도 잘 안 치우니 말이다. 요즘 혼자 사는 것을 보면 기특하다. 잘 치우고 살지만 남의 귀한 딸과 함께 살게 되면 엄마한테 하듯이 할까 걱정이다. 장가가면 다들 변한다는데 그러길 바란다. 도대체 무얼 보고 자랐느냐고 물어볼까 무섭다. 아들이 효자노릇을 하지 않았는데 며느리한테 효부노릇 하라고 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효도는 내 몫인 거다. 마음이 우러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