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추석을 앞두고 대형마트에서 장을 볼 때였다. 앞에 계셨던 할머니가 물건을 짚고 가격을 말하면 영감이 지갑에서 돈을 꺼냈다. 계산대가 아닌데 물건 하나하나마다 돈을 따로 지불했다. 별 희한한 노부부를 다 보았다. 할머니가 어떤 인생을 사셨을지 안쓰럽게 느껴졌다.
어느 부부의 남편이 좁쌀이다. 사십이 넘은 나이에 꽤 늦게 결혼한 부부였다. 결혼 전에도 남자의 이기적인 모습에 갈등을 했었다. 결혼식 바로 전날에도 남자의 친구들 모임에 안 나온다고 밤새 싸우고 그들은 결혼식에서 만났었다. 결혼 전에도 여자를 집에 데려다주는 것을 혐오했다. 다리가 없냐고 왜 혼자 못 가냐고 했었다. 아내의 친구 앞에서도 아내를 폄하했다.
그는 자수성가를 했다. 아버지는 밖으로 돌았고 집에는 어쩌다 한 번 들어왔다. 공부를 잘했던 아들이 대학을 간다고 했을 때 아비는 결사반대를 했다. 공고를 가서 빨리 집안에 도움이 되길 바랐다. 아들은 대학에 진학했고 교수가 됐다.
교수는 자신한테 쓰는 돈을 빼고는 낭비라고 생각했다. 마누라가 허튼 돈을 쓸까 봐 냉장고 검사를 했다. 왜 콩나물을 사서 안 해 먹냐고 난리를 쳤고 부엌에서 낭비를 할까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자식을 학원에 보내는 일은 일절 없었다. 공부도 안 하는 자식이 학원에 돈을 갖다 바치는 일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어쩔 수 없이 아내가 아들을 가르쳤다. 남편은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다고 조롱을 했다. 집에서 가까운 전문대학은 가도 되지만 멀리 있는 대학은 결사반대를 했다. 지방 대학 행정에 도움을 주기만 할 뿐이란다. 자기가 지방 대학에 다니는 애들을 많이 봐서 안다는 것이다. 아는 게 병이다. 아들이 부모 곁을 떠나서 사는 것은 제멋대로 사는 일이라 생각했나 보다. 멀리 있는 전문대학에 합격한 아들은 진학하지 않았다. 아들은 공부라면 진저리를 쳤다. 공부를 못하니 아들의 능력은 아예 무시당했다. 교수는 자기 부인을 무시하듯 자식한테도 함부로 했다.
교수는 성실했다. 아침이면 책을 쓰고 밥때가 되면 식사준비를 하는 부인을 참견했다. 정리를 잘 못하는 부인을 위해 잔소리를 퍼부으며 그릇을 정리했고 허튼 데 낭비할까 봐 식재료를 본인이 샀다. 건강관리를 위해 운동도 열심히 했다. 아내가 유산을 해서 수술을 하는 동안 그 시간이 아까워 인라인을 타러 간다며 아내 친구한테 수술이 끝나면 알려달라고 했었다. 짧은 시간도 허투루 사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교수는 아들을 지켜보기가 쉽지 않았다. 한 달을 주기로 집안에 큰 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간을 아끼고 여러 번 보기 위해 참고서에 표시도 안 하고 아껴 가면서 공부했던 교수는 아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공부를 하기 싫으면 일을 하라고 했다. 아르바이트를 금방 그만둔 아들은 일조차 제대로 못한 실패한 사람이 됐다. 아르바이트를 했던 곳이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아르바이트를 했던 사장과 얘기를 해서 오래 다닐 수 없어서 관둔 것인데 그건 듣지도 않는다. 그냥 실패한 인생인 거다. 졸업식을 한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은 아들은 아르바이트도 제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부모의 과도한 참견과 간섭에 점점 마음을 닫았다.
교수는 아들이 밤마다 게임을 하고 늦게 일어나는 꼴이 보기 싫었다. 적어도 아침 11시에 일어나서 제대로 된 일상을 살기를 바랐다. 아침에 교수와 함께 한자공부를 하고 외국어 공부를 해야 한다고 했다. 공부하기 싫다는 아들을 데리고 아비는 공부를 하라는 게 아니고 네 앞길을 찾는 거라고 했다. 아들이 빈둥거리는 꼴을 참고 볼 수 없던 아비는 아들을 내쫓을 생각을 했다. 주변 오피스텔을 알아보고 나가라고 통보했다. 아들은 아비를 무시했다. 감히 자식이 부모한테 대든다고 좁쌀은 뜨겁게 달구어졌다. 돈을 벌 생각도 안 하고 게임만 하는 아들을 참아주려니 죽을 만큼 힘들었다. 좁쌀은 결국 터져서 펑펑 눈물을 쏟았다.
교수는 남들한테 더없이 친절하고 자상하다. 없는 사람들한테는 더 잘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식구들에게는 형편없는 말을 해도 괜찮다. 남들한테는 독설을 퍼붓지 않는다. 아내한테 퍼붓는 쌍욕은 듣지도 보지도 못한 거다. 70이 낼 모레인 은퇴한 교수는 아들을 견딜 수가 없다.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들이 아무것도 못 하고 집에서 밥이나 축낼까 봐 초조해서 죽을 지경이다. 게임만 하는 아들을 볼 수가 없었다. 자기가 죽어버리겠다고 가족에게 협박을 한다.
교수는 사랑을 더럽게 배웠다. 마음을 읽고 공감을 받은 적이 없나 보다. 공감할 줄 모른다. 악착같이 힘들게 자기의 목표를 향해 달렸던 교수는 자기만큼 못하는 아내와 아들을 한심하게 여긴다. 사랑은 공부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