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는 꼭대기에 살았다. 제일 위층이라서 층간소음으로 인한 고통을 못 느꼈다. 내가 오히려 주책맞게 아무 시간에나 청소기를 돌리고 아무 시간에나 빨래를 해서 피해를 줬다는 것을 중간에 끼어 살면서 알게 됐다. 스무 해가 넘도록 아랫집의 은혜를 모르고 살았다.
윗집에 신혼부부가 산다. 신혼부부는 8시에 안방에서 청소기를 돌린다. 내 침대 머리맡에서 울리는 청소기 굴러가는 소리에 맞춰 잠을 깨곤 한다. 새벽 일찍 몇 번 잤다 깼다를 반복하다 잠이 들어서 그 소리에 화들짝 놀라 깬다. 8시가 정확하다. 낮에는 그래도 조용한 편이지만 누구의 발소리인지 꽤나 쿵쿵 울린다. 개를 키우는 집이라 개소리가 시끄러울 줄 알았는데 개 짖는 소리는 전혀 없고 발소리가 심하다. 이사 와서 아들도 처음 겪는 발소리에 짜증을 내다가 텅 빈 집을 버리고 카페로 갔다. 발소리는 못 참는데 음악소리는 괜찮은가 보다. 그 쿵쿵 소리를 아들이 독립해서 집을 나가고서야 알았다. 그렇게 시끄럽냐고 핀잔도 했는데 텅 빈 집을 울리는 쿵쿵 쿵쿵 뒤꿈치로 울려대는 소리는 대단했다.
우리 집에는 텔레비전이 없다. 나는 라디오도 틀지 않는다. 아무런 말소리가 없다. 하루 종일 조용하다. 그러니 윗집의 소음은 고스란히 전해질 수밖에 없다. 아들이 떠난 적막한 집에 윗집의 소음만 가득했었다. 아랫집의 소음은 들리지 않는다. 아랫집은 부인이 아침에 일을 나가고 아저씨 혼자 집을 지킬 뿐이니 조용하다. 윗집은 청소기 끌고 다니는 소리, 발걸음 소리, 책상 끄는 소리, 욕실에서 씻는 소리, 가끔 투닥거리고 싸우는 소리를 전해준다. 소리는 과거를 끌어온다. 꼭대기에 살아서 아무 생각 없이 악을 쓰고 소리를 질렀던 내가 떠오른다. 애들 혼내느라 내 감정을 못 이겨 욕을 퍼붓는 장면이 생생하다. 낯이 뜨겁다.
아이가 어릴 때 아들의 수영반 친구네에 놀러 갔었다. 그 집은 아랫집 할머니 때문에 너무 힘들다고 했다. 애들이 네댓 살인데 수시로 인터폰으로 작은 방이 시끄럽다, 몇 시에는 어느 방에서 떠들었다고 시간마다 알려주면서 주의를 준다고 했다. 그때는 그 할머니가 되게 할 일이 없다고 한심하게 생각했다. 윗집 떠드는 시간만 따지고 앉아있나 참 노인네도 별나게 군다고 아들친구 엄마한테 피곤해서 어떻게 사냐고 그랬다.
그 노인도 집에 식구가 없었던 거다. 하루 종일 텔레비전을 틀지도 않고 그저 조용히 살고 있었던 거다. 그래서 층간소음만이 집을 가득 채웠을 거다. 20년도 넘어서 아들 친구 집의 아랫집 노파가 떠오른 건 내 집이 조용해서 윗집 소음이 고스란히 들리기 때문이었다. 그 노인은 듣고 싶지 않아도 50평이 넘는 커다란 집에 울려 퍼지는 쿵쿵 소리와 씨름을 했을 거다. 아이들이 콩콩 거리고 뛰고 아이들의 장난감 자동차가 굴러다니는 소리를 들었을 거다. 자식은 다 떠나고 노부부만 남은 집은 텅 비었고 소리를 낼 게 없었다. 아마도 그 집 영감님은 거실이 떠나가게 텔레비전을 소리를 높여서 보시지도 않았나 보다.
어라! 윗집 소음이 하나도 들리지 않네. 오랜만에 예전에 가르쳤던 아이들이 놀러 왔다. 밖에 나가서 점심을 먹으려다 함박눈이 온 세상을 하얗게 물들인 날이라 집으로 불렀다. 아침부터 식사준비를 하느라 부산을 떨고 재료를 다듬고 난리를 치느라 윗집 소리를 들을 틈이 없었다. 어쩌다 하는 밥이니 정신이 없다. 동동 거리고 찌개를 앉히고 반찬 몇 개 하다 보니 어느덧 올 시간이 됐다. 이십 대 중반이 넘어가는 애들이 손에 선물을 들고 들어왔다. 밸런타인데이가 코앞이라고 초콜릿을 사 오고 진짜 맛집 케이크라고 몇 개씩이나 사들고 왔다. 그들은 직업에 대한 고민 보따리부터 풀었다. 어떻게 사는지 어쩐 삶을 살아야 할지 살아가는 얘기로 하루를 보냈다. 윗집의 쿵쿵 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수다소리가 집을 채우고 웃음소리가 넘치니 윗집의 어떤 소리도 들어올 틈이 없었다.
적막함은 소리를 부른다. 가끔 집에 소리를 채워야겠다. 윗집 소음에 짜증이 나서 인터폰을 할까 고민도 했었다. 심술 맞은 노파가 되기 전에 집안에 내가 좋아하는 노래도 채우고 예전에 듣던 시디도 먼지만 쌓이게 두지 말고 틀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