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보러 가야지"
한 달 전에 사정상 데구르펜션에
사랑이를 데려다 놓았다.
형제님께서 반려견을 위한 쉼터를 만들어
주셔서 편하게 맡길 수 있었다.
2016년 그 해 여름. 나의 두 번째 반려견
꼬미가 교통사고로 이 세상을 떠났다.
신랑은 자신이 잘 안고 있지 않은 죄책감에
너무나 슬퍼했고, 나는 슬픔을 삼키며 신랑을
위로할 수밖엔 없었다.
더 이상 반려견을 키우지 않겠다 다짐했지만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우린 유기견 센터로
발길을 옮겼다.
10년 전인가 화순에서 개 농장 사태의
심각성을 tv로 보도한 적이 있다.
우연찮게 그곳에서 구출한 아이들이
있는 유기견 센터였다.
우리와 눈이 마주친 깻잎이라는 아이!
그 아이가 우리 사랑이가 되었다.
새끼일 때 앞니 두 개를
바로 제거하며 몸만 들어가는 작은
창살 집에서 구출한 씨받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구출한 깻잎이는 몸 상태가 심각했고 그 와중에
임신까지 된 상태였다.
신랑은 이 아이를 안더니 집으로 데려왔고
신기하게도 첫날 배변 판 위에 소변을 누며
자기 집인 양 편하게 쉬는 걸 보고 입양 절차를
안내하시는 선생님께서 남은 생을 편하게
보내고 싶어 이리도 예쁜 짓을 한다며
입양 절차 통지문을 내밀었다.
이렇게 우리 식구가 된 사랑이
지금까지 충분히 고생했으니 남은 생
사랑만 듬뿍 받으라는 의미로 사랑이라
이름 지었다.
울 사랑이 나이 14살
사람 나이로 하면 왕 할머니가 되었다.
올해 들어 많이 아팠고 식구들과 정을 떼는
느낌이 부쩍 들었다.
눈도 귀도 피부도 심각한 상태가 되어
공기 좋은 곳으로 이동하면
더 나아지리라 생각하고
데구르 쉼터로 향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정을 준만큼 마음이 너무
아파서 보내는 것도 무척이나 힘든
나날들이었고 그 빈자리를 그림을 그리며
생각을 멈추었다.
당연히 있어야 될 그 자리에
텅 빈 사랑이 집만 보였다.
"형제님! 사랑이 어디 갔어요?"
머뭇거리며 형제님은
"어디 갔겠어?"
그 순간
내 뇌리에 전기가 온 듯 온몸이 멈추며
멍하니 그 자리에 앉아버렸다.
뭐라 말해야 될지. 가슴이 너무 답답함이.
아려오는 이 아픔...
"언제 갔는데.. 왜 말 안 했는데.. "
나는 원망에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말하면 뭐가 달라지는데..
이렇게 아파할 거면서.."
충분히 사랑받았고 편히 갔다며
날 위로했다.
이 사실을 모든 동반자들은 알고 있었고
내 아픔을 알기에 최대한 말하지 않기로
이야기했다고..
나중에 알게 되었다.
눈물이 하염없이 나왔다.
왜 이리도 인생은 아픈 걸까?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다는 걸
알았지만 세 번째 보내는 마음 또한
너무 아프다.
헤어짐에 슬픔과 아쉬움이 가득하여
맘이 아려왔지만 사랑이가 내게 준
소중한 시간과 추억이 고스란히
내 맘속에 남아있으니
그 또한 감사했다.
사랑아
나의 빈자리를 함께 채워주고
위로와 공감과 사랑을 안겨주고
떠나는 너에게 내내 미안함과 아쉬움이
가득하다.
넌 영원히 나의 사랑이야.
고생했고 편이 쉬렴.
사랑한다. 사랑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