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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남 Apr 28. 2024

한국 남자가 주부로 산다는 것(3)

사회인의 삶을 그리워하는

사회인

社會人, member of society, member of the community

사회의 일원으로서 활동하는 개인.


주부는 사회인일까?


나는 남자 주부다. 그리고 주부가 되기 이전까지, 내가 보는 (여성) 주부는 늘 불안과 조급함을 달고 사는 듯 보였다.


빨래와 청소가 끊이질 않고, 삶은 끝없는 터널을 걷는 듯이 느껴진다. 주부의 역할과 하는 일은 남들에게 보여줄 만한 것들이 없다. 집 안에서의 일이니까.


나는 스스로를 의심한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는데, 3일만 지나도 이상해 보인다.


‘기준을 잃었다.’


집 안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주부의 시선이란 이런 거다.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잃어가는 당연한 환경에 갇힌 존재.


사람은 사회 속에서 갈등, 교류, 관찰을 통해 행동의 범위를 찾는다. 어렸을 적부터 사회적 인정의 유무로 행동의 옳고 그름의 기준을 세우지 않는가?


사람은 본능적으로 사회적 인정이 무엇인지 직감적으로 느낀다. 주부가 사회인으로서의 가사 노동에 대한 보상이 분명하다면 사회적 자존감을 지킬 수 있다. 사회적 자존감은 개인의 경험에 근거한 심리 형성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가사노동은 값을 톡톡히 쳐주지 않는 일이다. 게다가 내 시선의 기준으로 정리를 하고, 내 시선의 기준에서 살만한 공간을 꾸린다. 그렇기에 사회적 기준의 경계가 서서히 무너져 내린다. 외부세상과 교류하지 않는 삶에 익숙해지면서, 기억 왜곡과 감정의 변화에 스스로의 선택을 의심한다. 모호해진 기준은 불안과 조급함의 악순환을 초대한다.


칭찬이 있으면 된다?


칭찬은 당장의 기분을 만족시켜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아주 짧은 시간만 유효하다. 많은 여성 주부들이 아이를 낳고 우울증에 시달리거나, 여러 정신적 합병증을 달고 살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저 말 몇 마디 칭찬으로 퉁치려고 하는, 가사노동에 대한 보상이 아주 짜디짠 사회적 분위기가 한몫할 것이다.


가사노동에 대한 보수, 즉 보상이 턱 없이 부족한데 앞으로도 나아질 낌새가 없는 불공정거래와 불합리의 연속이다. 본능적으로 '내가 이러는 게 맞나?' 하는 원인이었음을 인식한다.


힘든 내 마음을 알아줄 동지를 찾아 나서지만, 그는 내 일의 경쟁자가 아니다. 내 감정을 달래줄 순 있어도, 내 안에 쌓아야 할 사회적 데이터가 될 수 없다. 그 사람도 나와 마찬가지로 마땅히 받아야 할 보상을 못 받고 있으니까. 애초에 보상이 못마땅한 두 사람이 만나, 은근히 서로를 향한 무한 비교경쟁을 한다. 마치 누가 더 나은 대감집 노예인가를 겨루는 것 마냥. 이 관계는 결국 시기와 질투로 이어져 나의 감정을 더 큰 절망과 좌절의 늪에서 헤어 나올 수 없도록 한다.


어떻게 하면 주부는 기준을 다잡을 수 있을까?


나는 본디 불안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내가 겨우겨우 생각해 낸 방법이 있다. 사회인으로 일을 하던 때를 상기해 내는 것이다.


일을 할 때 무엇을 살폈는가 떠올린다. 주변의 경쟁자를 살폈다. 이미 주변에 같은 일을 수행하는 다른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유심히 관찰한다. 내 추론과 판단을 배제하고, 사회적 데이터를 수집해서 사회적 행동의 기준을 찾는다.


기준을 찾고 나면 의외로 단순해진다. 앞으로 나는 그보다 더 잘할 것인지, 적당히 할 것인지, 하는 흉내만 낼 것인지, 그와는 다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 선택하면 된다. 정답은 없다. 내가 일을 끝마쳤을 때 받게 될 기대 보수의 양에 선택은 나뉜다.


영상을 찍어도 좋고, 글을 써도 좋다.

다만, 반드시 사람들에게 선보일 수 있는 일을 찾는다. 봐줄 대상이 선정하고, '돈이 될 수 있으려면'하는 관점도 놓치지 말자. 내가 하는 일에 대한 기준을 찾기 위함이다.


100만 유튜버처럼 할 수 없다고 좌절하는 사람은 없다. 3년 전 영상을 끝으로, 구독자가 36명을 넘지 못한 유튜버의 영상을 본다.


이러한 사고 훈련은 '기준을 세우기 위한 근거를 어디에서, 어떻게, 무엇으로 정할 것인가'의 자기 인식을 시작할 수 있게 해 준다.


사회의 격리로 잃어버린 나의 기준을 되찾고, 끝없는 불안의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는 첫 발걸음이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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