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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청소년, 청년들에겐 보살핌이 필요하다. 어떤?

[오늘의 심리학 #045.]

'이상 심리학 저널'의 새로운 연구는 10대 우울증이 2009년에서 2017년 사이에 60% 이상 증가했다고 주장한다. 자살, 자살 미수 등의 심리적 고통 역시 상승 추세를 보였다.



Parenting in a Digital Age: What Experts Are Saying

 New research reveals youth depression is on the rise.

 Posted Apr 09, 2019 Diana Graber M.A.


https://www.psychologytoday.com/us/blog/raising-humans-in-digital-world/201904/parenting-in-digital-age-what-experts-are-saying



* 주요 내용


- 스마트폰이 발명된 후 부모는 아이와 언제 어디서든 연결될 수 있다.

- 이 지속적인 연결성이 아이에게는 어떻게 여겨질까?

- '이상 심리학 저널'의 새로운 연구는 10대 우울증이 2009년에서 2017년 사이에 60% 이상 증가했다고 주장한다. 자살, 자살 미수 등의 심리적 고통 역시 상승 추세를 보였다.

- 저자는 30명이 넘는 전문가들에게 디지털 시대의 육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전문가들은 세 가지 광범위한 관심사에 집중했다.


1. 공감 필요

- 교육심리학자인 Michele Borba는 감정 이입을 '행복하고, 잘 적응하고, 성공한 어른이 되기 위한 초석' 이라고 말한다.

- 하지만 불행하게도 1979년과 2009년 사이에 미국 대학생들의 공감 수치 점수는 40%나 폭락했다.

- 감정 이입은 사이버 폭력의 해결책이다.


2. 빠르게 대두되는 문제. Sexting.

- Sexting이란 온라인에서 성적으로 암시되는 메시지를 주거나 받는 행위를 말한다.

- 2018년 초, 미국 의학 협회 저널에 발표된 10대 sexting에 대한 포괄적인 연구는 11세에서 17세 사이의 어린이들 중 약 15%가 sexting을 보내고 28%가 sexting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 청소년들의 이런 현상은 전두엽 피질이 완전히 발달하기 훨씬 전에 일어난다.

- 학교와 부모들은 청소년들이 Sexting을 하다가 걸릴 경우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대한 교육을 하지 못 하고 있다.


3. 오늘날의 아이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도움'이다.

- 부모들은 도움을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위치에 있으나, 문제는 여기에 있다. 부모님들이 하는 일 대부분은 아이들과 미디어 때문에 싸우는 것 뿐이다.

- 그들은 디지털 생활의 부작용에 대해 무척 겁에 질려 있다.


- 만약 아이들이 부모와 학교로부터 그들이 필요로 하는 도움을 받지 못 한다면, 증가하는 우울증 비율은 단순히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어른들의 잘못일지도 모른다.



* Bandi Thinks

© sarad1, 출처 Unsplash

 현대 사회를 설명할 수 있는 단어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저는 우울과 불안이 떠오릅니다. 특히 청소년과 청년층에게 이런 현상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본 저널은 그 이유를 디지털 시대가 접어들었다는 요소로 설명하고자 합니다. 물론 최근 저널이 발표한 현상에 집중한 나머지 그 원인을 규명하는 것까지는 하지 못 했으나,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았다는 면에서 그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니 이번에는 그 이유가 무엇일까에 초점을 맞춰서 생각을 해보도록 해요.



 사회의 다양한 면이 있고 그 다양한 면만큼의 이유가 있겠지만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생긴 변화를 중심으로 원인을 찾아보겠습니다.



 1. 청소년의 공감도가 낮아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학교폭력, 따돌림, 소외 문제 모두 공감의 문제입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감정을 공유하는 능력만 있어도 청소년 관계 문제 대부분이 해결됩니다. 공감하는 이들은 인간을 비인격화할 수 없으니까요. 그러면 왜 청소년의 공감도가 낮아지고 있을까요? 



 공감을 하기 위해 어떤 것이 필요한지 생각해봅시다. 우선 상대방에 대한 정보가 있어야 합니다. 상대가 어떤 사람이고 무슨 상황 속에 놓여 있는지 알지 못 한다면 이해하는 것도 불가능하죠. 그리고 정보를 알기 위해선 그에게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니 공감에 대한 질문은 이렇게 바꿀 수 있겠네요.



우리는 서로에게 충분히 관심을 갖고 있는가?



 애석하게도 그러지 않습니다. 간단히 그 이유를 살펴보면 첫째, 해야 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둘째, 해야 하는 일을 언제 어디서라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셋째, 애석하게도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넷째, 해야 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상황에서 하지 못 하고 있으니 자꾸만 불안함이 커집니다. 그러니 내 주변 누군가에게 오롯이 집중하는 일 또한 쉽지 않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관심을 갖지 못 하니 자신을 알아주는 이 또한 적어집니다. 다들 남을 알기 전에 나를 알리고자 발버둥 치죠. 이런 상황 속에서 점점 타인에게 공감하고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능력은 퇴화됩니다. 악순환이 계속 됩니다.



 뿐만 아니라 디지털 시대에는 비언어적 의사 소통을 감지하는 능력이 줄어듭니다. 세세한 목소리의 떨림, 표정의 변화, 신체 동작 등 상대방을 지켜보아야 알 수 있는데 우리는 앞 사람과 소통하면서 눈은 스마트폰을 쳐다봅니다. TV를 켜고 밥을 먹으며 눈은 스마트폰을 향해 있습니다. 샤워를 하면서 방수캡에 스마트폰을 넣고 실시간으로 카톡을 하고 페이스북과 유튜브를 이용합니다. 사람과 접하며 길러질 사회성이 디지털에 가로막히는 일은 이제 남의 일이 아닙니다.



 2. Sexting. 무엇이 문제인가?


 성에 대한 욕구는 자연스럽습니다. 성 욕구 자체를 금기시하던 과거의 흐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은 대중들을 성에 대한 압박과 죄책감에서 유연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무작정 성 욕구 자체를 암암리에 인정하는 환경 속에서 성 욕구를 바탕으로 하는 모든 행동이 '왜? 나만 쓰레기야? 다들 그러잖아~!' 라는 합리화를 바탕으로 정당화되었습니다. 명백한 부작용입니다. 


 최근 가장 선명하게 나타난 일례가 '정준영 단톡방 사건' 입니다. 음란물을 공유하고, 상대의 동의 없이 촬영한 몰카까지 단톡방에 무분별하게 공유된 이 사건은 음담폐설과 농담의 기준을 어디로 잡아야 하는가? 음란물을 공유하는 행위가 성적인 욕구를 가진 이들의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넘겨야 하는지, 윤리적인 문제로 여겨야 하는지 질문을 안겨준 사건입니다. 물론 할 말 참 많지만 여기선 줄이도록 하죠. 


 부작용은 부작용을 낳습니다. 성 욕구에 대한 기준 차이에서 오는 젠더 갈등이 그것입니다. 이 역시 본 글에서는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요점은 Sexting의 무엇이 문제인가? 입니다.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청소년들이 성에 대한 호기심과 욕구를 풀 수 있는 방법은 무척 쉬워졌습니다. 음란물에 대한 문턱이 낮아지고 접근성이 증대되었습니다. 섹슈얼한 컨텐츠와 광고가 즐비합니다. 아직 뇌내 전두엽의 형성이 덜 이루어진 어린 나이에 이런 원초적인 자극을 접하는 건 그릇된 가치 판단을 불러일으킬 확률이 매우 큽니다. 그렇다고 성에 대한 욕구 자체를 금기시하는 과거 회기적 방안으론 안 됩니다. 옳지도 않을 뿐더러 디지털 시대에선 불가능하기도 합니다. 



 정보와 기술의 발전과 발을 맞춰가야 하는 건 사회의 인격적 성숙입니다. 성숙을 위해선 합당한 교육과 올바른 인식 개선이 필요하죠. 허나 우리 사회가, 교육이 그러고 있는가? 음..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역사의 흐름에서 뿌리가 썩을대로 썩어 뒤집힌 사례는 차고 찰 정도로 많죠.



 3. 아이들은 어떤 도움을 필요로 하는가?


© noahbuscher, 출처 Unsplash

 아이들에게 도움(Help)이 필요하다고 얘기하고 있는 본 저널은 정작 '어떤 도움'이 필요한 지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하지 못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어떤 도움을 바라고 있을까요? 이에 대해선 모두 같이 고민을 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분명 지금의 청소년들, 청년들이 아무런 생각 없이 살고 있는 건 아니거든요. 댓글로 모두의 생각을 모아보는 건 어떨까요?



 ...사실 저는 저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지만 그걸 공유할 수 있는 다른 기회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오늘의 심리학은 계속 될 거니까요. 



 시대의 흐름을 탓하며 물살을 막으려는 시도는 어리석습니다. 막을 수 없기 때문이고, 괜히 막으려는 시도를 하는 동안 적절한 대처도 못 찾고 휩쓸릴 수 있기 때문이에요. 디지털 시대의 청소년과 청년을 설명하는 단어가 우울과 불안이라면 우리가 가장 먼저 할 일은 무엇일까요? 힌트를 드릴까요?


답을 찾으려면 일단 관심을 갖고 살펴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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